얼마 전 고향 친구가 이직을 위한 면접 때문에 서울에 왔었다. 첫차를 타고 온 친구는 겨울 해가 저물 때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했다. 친구의 면접용 메이크업은 뜨다 못해 지워져 있었다.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아서 일부러 얼굴이 썩었다고 농담을 던졌는데, 친구는 날 보자마자 영등포역 한가운데서 펑펑 울었다. 지방대를 나와 줄곧 지방에서 사회생활을 한 친구다. 그런 애가 서울로 면접을 올 정도면 얼마나 잘해야 하는지, 내가 더 잘 알아서 마음이 아팠다. 친구는 휴가도 반납하고 모은 연차를 써가며 준비한 면접이라고 했다. 이럴 거면 차비까지 줘가며 뭐하러 서울로 불렀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아직 떨어진 거 아니라고 달랬지만 ‘너는 면접을 안 본 지가 오래돼서 감을 잃었다’라며 오히려 나에게 불똥을 튀겼다. 겨우 진정한 친구는 속사포처럼 면접 상황을 들려줬다. 면접관이 성의가 없는 건지, 일부러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충분히 서러울 만하다고 생각했다. 딱 들어도 구리게 느껴졌다.
이 친구의 경우가 아니라도 지난 10년간 친구들의 고시나 입사시험은, 최소한 내 눈에는 별로 정직해 보이지 않았다. 학점과 스펙을 아무리 쌓아도 취직은 힘들었다. 지방이 고향인 친구들은 지방대 출신이라 ‘광탈’했고(심지어 지방에 있는 회사였다), 다른 스펙으로 학력을 메우느라 나이가 찼는데 나이가 너무 많다고 떨어졌다. 스무 살 새내기부터 주말도, 방학도 즐기지 못하고 전전긍긍 취업만 신경 쓴 그 열정을, 어른들은 ‘도전정신이 없는 세대’라고 바꿔 불렀다. 나는 이런 여러 이유로 일찌감치 첫 대학 생활을 접었었다.
그에 반해 운동은 참 정직하게 느껴졌다. 내가 먹는 것, 생활하는 것, 훈련하는 것만큼 몸은 아주 정확하게 답해왔다. 불필요한 질문도, 선입견도 없었다. 그리고 많은 운동 종목 중에 난생처음 시작한 운동이 운 좋게 나랑 잘 맞았던 것도 한몫했다. 체계적으로 운동의 세계에 발을 들인 첫 종목은 헬스였다. 나중에 다른 운동 종목을 배워보기도 했지만, 내게는 헬스만 하지 못했다. 헬스는 당장 들 수 있는 무게를 숫자로 바로 보여주고, 어제보다 오늘 나아졌는지 아닌지가 바로 드러났다. 하나 더, 1kg 무겁게 들어 올린 만큼 지방이 줄었고, 근육이 늘었다. 특별한 기술 없이 오직 신체의 관절과 근육 모양 그대로를 단련하는 헬스가 좋았다. 단순 명료했고 그래서 매력 있었다. 헬스 트레이너를 직업으로 택하면서 복잡한 사회생활, 정치, 학교에 대한 파벌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운동 기량으로 증명할 수 있으면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모든 운동이 그럴 것이라고 본다. 이런 점들이 다른 것보다 운동이 정직하게 느껴진 이유 중 하나였다.
많은 회원이 면접을 대비하기 위해서 헬스장을 등록한다. 또는 외모가 곧 스펙이라며 몸매 관리를 위해서 등록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운동이 진짜 스펙인 이유는 따로 있다. 나의 경우는 몸매가 예뻐지고 이목구비가 더욱 또렷해지자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감이 생기자 주변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또, 몸의 체력이 좋아지니까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고, 자기 효능감 역시 높아졌다. 이 정도쯤 되니 이제는 첫인상 점수까지 올라갔다.
겉으로 보이는 측면만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운동은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더 큰 스펙이 된다고 생각한다. 몸매가 이뻐지면 자신감과 자존감이 올라가면서 마음이 건강해진다. 제대로 집중한 운동은 체력뿐 아니라 신체의 전반적인 건강을 유지해준다. 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운동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트레이너로 살아온 지 8년이 되어도 자신감이 떨어지고 유독 긴장하는 수업이 있다. 그럴 때면 피곤하고 힘들어도 운동을 강행한다. 근육이 몸에 빵빵하게 차오르고 열이 올라 몸이 약간 상기되면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면서 떨어졌던 자신감이 차오른다. 운동을 한 번 할 때마다 또 한 줄 스펙을 쌓는 느낌이 든다. 몸을 쓰는 운동은 참 정직하다. 운동하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내게 최고의 스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