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성장도 '육아'의 일부다
교재와 교구를 직접 제작하고 자율 교육과정을 짜내며 밤을 지새우던 시절, 나는 종종 동료들로부터 날 선 비아냥을 듣곤 했다.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없으니 저렇게 유난을 떨지."
더 성장하고자 하는 자의 노력을 폄하하는 행위이자, 미혼 여성에 대한 경멸로 느껴져 견딜 수 없는 불쾌감을 느꼈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그들의 말이 뼈아픈 진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깊이 사유하고, 인사이트를 길어 올리고, 그것을 글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몰입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물’과도 같은 이 고독의 시간 덕분에 나는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좀 더 성장할 수 있었다.
반면, 일하는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마주하는 현실은 이러한 '물리적 시간'의 절대적 결핍을 뜻하는 것이다.
과거 동료들이 나에게 보였던 그 미묘한 적대감과 경계심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것은 단순한 시기 질투가 아니었을 것이다. 육아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자신의 시간을 모조리 저당 잡힌 채, 스스로를 돌볼 틈조차 없는 이들이 느꼈을 박탈감. 어쩌면 그들의 날 선 공격은 출구 없는 현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누군가를 타겟팅해야만 했던, ‘구조적 압박에 의한 비명’이었을지 모른다. 내게 허락된 자유가 그들에게는 자신을 옥죄는 족쇄를 상기시키는 아픈 거울이었을 테니까.
문제는 이러한 박탈감을 제도가 부추긴다는 점이다. 현재 교직 사회의 육아휴직 제도는 휴직의 목적을 오로지 '보육'으로만 한정한다. 아이를 돌보는 것 외에 대학원 진학이나 기타 영리 활동은 엄격히 금지된다. 심지어 아이를 잠깐 맡기고 공부를 하려 해도 "휴직시켜줬더니 애는 안 보고 딴짓한다"는 죄책감을 강요받는다.
하지만 출산과 육아는 여성에게 내분비학적으로 1000배의 호르몬 변화와 환각에 가까운 수면 부족을 안겨주는 극한의 경험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나'는 사라지고 '엄마'만 남는 정체성 상실을 겪는다. 이런 상황에서 제도마저 "너는 오직 아이만 봐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가혹하다. 아이를 돌봐줄 조력자가 있다 한들, 엄마의 신경은 24시간 아이에게 곤두서 있을 수밖에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은 잠시나마 육아에서 로그아웃하여 '나'로 돌아갈 수 있는 숨구멍이 아닐까.
저출산 시대, 아이를 낳으라고 장려하면서 정작 아이를 낳은 여성의 '성장'은 가로막는 것은 모순이다. 육아휴직 기간에 대학원을 가거나, 글을 쓰며 다음 인생의 무대를 준비하는 것은 결코 육아에 대한 태만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육아로 인한 우울감을 해소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며 훗날 복직했을 때 현장 감각을 잃지 않게 하는 가장 건강한 동력이 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흔한 말처럼, 엄마가 '성장하는 인간'으로서의 기쁨을 누릴 때 육아의 질도 높아질 것이다.
육아휴직이 경력의 무덤이나 인내의 시간이 아니라, 공부하고 작업하며 더 단단한 전문가가 되어 돌아올 수 있는 '도약의 시간'이 되도록 허용해야 한다.
내가 누렸던 그 소중한 '몰입의 시간'이 이제는 제도의 개선을 통해 결혼한 여성들에게도 공평하게 주어지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더 이상 스트레스에 짓눌려 서로를 할퀴는 비극 대신 서로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건강한 연대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