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발효 일지
보이차.
첫 한 모금을 들이켜고 난 뒤 입안에 머무는 미묘한 텁텁함, 식어갈수록 더 또렷해지는 은근한 비릿함, 그리고 잔 위로 천천히 피어오르는 흙냄새 혹은 땅의 향—
이 모든 것이 어느새 나에게는 일상이 된, 보이차의 아이덴티티다.
젊은 나이에 보이차를 마신다고 ‘특이하다’는 말을 듣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시작된 나의 보이차 라이프는 어느덧 16년에 접어들었다. 초임 시절, 매일 반복되던 긴장으로 몸과 마음이 예민해지던 순간에도, 임용시험을 준비하며 버텨내야 했던 시간들에도 내 곁에는 언제나 이 차가 있었다. 조용히 긴장을 풀어주고, 차갑게 굳어가는 몸을 다시 데워주는 묵묵한 존재였다.
그동안 한 번도 끊이지 않고 보이차를 마셔왔다는 사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해주는 듯하다. 빛과 어둠을 함께 품은 보이차의 온기와 향이 지난 시간의 층위마다 켜켜이 스며들어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다.
올 해 난데없는 휴직은 나를 갑작스러운 정적 속으로 밀어 넣었다. 우울은 물비늘처럼 가라앉았다가도 어느 순간 불쑥 떠올랐고, 애써 마음에 불을 지피려 해도 좀처럼 점화되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정지된 화면 안에 홀로 놓인 것 같은 그 적막함은 생각보다 깊게 나를 흔들었다.
무언가를 해보려는 마음이 들 때면
‘지금 이 시간을 이렇게 채우는 것이 맞는가, 이 빛깔이 지금의 나와 어울리는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이 되레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스멀스멀 올라오던 불안은 곧 깊고 날카로운 통증으로 변해 숨 고를 틈도 주지 않고 나를 따라잡았다. 그 무게를 설명할 말조차 찾지 못한 채 나는 숨을 죽이며 나 자신을 조금씩 소모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공연장에서 10년 전 자주 다니던 보이차집 사장님과 우연히 마주쳤다.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처음으로 보이차의 색과 향을 배우며 좋아했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이 천천히 되살아났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16년 동안 나는 보이차를 단순히 마셔온 것이 아니라,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이차의 온기와 맛, 서서히 깊어져가던 향의 결— 그 모든 순간이 나를 조금씩 숙성시켜 온 시간이었음을 그때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멈춰 있는 듯 보였던 휴직의 시간도 차가 발효하듯 천천히 익어가던 과정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차는 겉으로는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해서 후숙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숨을 고르고, 불순물을 가라앉히고, 다시 나를 우려낼 수 있는 온도를 찾는 일은 지난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었던 가장 실질적인 성장의 방식이라는 것도 말이다.
1년의 적막함은 내 안의 침전물을 가라앉히고 새로운 향을 일으킬 준비를 하던 또 다른 형태의 발효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록으로 남지 않을 일들이 점차 고유의 색을 더해가고, 흔적 없이 사라졌다고 여겼던 감정들이 어느새 깊은 향으로 떠올라 나를 감싸오는 것을 보며 나는 그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성취하지 못한 해가 아니라 깊어지는 법을 배운 해, 서둘러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도 제자리에서 익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해.
그래서 올해를 실패나 공백으로 기록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이렇게 불러보고 싶다.
2025년 후기지민청병-
올해의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청병을 기납한다. 겉보기엔 다르지 않은 해처럼 보일지라도, 올 한 해 내 마음이 어떤 향을 품었는지, 무엇을 비워내고 무엇을 품어냈는지, 어디에서 가라앉고 어디에서 다시 떠올랐는지를 조용히 기록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2025년의 이 차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효가 진행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