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누구나 꿈을 갖고 있다
초등학교 다닐 즈음에 매 년 학기 초 가 되면 "저는 커서 멋진 가수가 되는 게 꿈입니다!"
라는 자그마한 포부를 같은 반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게 새 학년의 시작이 되곤 했다.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유치원 시절 내가 말하던 직업은 새장수와 소방관이었다고 한다.
자그마한 철장에서 키우던, 아침마다 지저귀던 작은 새 두 마리를 너무 사랑해서 새 장수가 된다고 했지만
새가 죽고 나서 삼일을 대성통곡하고는 새가 죽는 게 마음이 아파 새장수는 힘들다고 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고 다녀온 소방서 견학에서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소방차'가 꿈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명절이면 나오는 귀여운 에피소드가 돼 버린 이후로,
초등학생때와는 별 다르지 않게 진로를 걱정하며 어느 대학을 나오고 어떤 차를 타고 다니고 어떤 어른이 될 지에 대해 고민하는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이 되던 해에 전국적으로 봉사의 해라는 슬로건이 생겼고
그 영향으로 전교생이 3백 명 남짓한 작은 학교에도 130명의 큰 봉사동아리가 만들어졌고
한 개조의 조장을 맡게 되어 애정하는 친구들로 조원을 꾸려 주말에 만났으며 시골이다 보니 주로 노인정과 노인복지센터를 다니며 봉사활동을 하며 돌이켜보면 별 볼일 없던 고등학생 때의 몇 안 되는 좋은 추억을 쌓았다.
봉사활동을 하던 중에 삶의 자그마한 가치관 하나를 얻게 된 것이 있다.
세상에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억만장자들이 자신이 가진 막대한 부를 사회에 환원을 한다는 이유와
유사하다면 유사할 수도 있다. (부를 가져본 적은 없다.)
내가 작게나마 하는 이 일련의 행위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큰 의미가 될 수 있고 이 행위를 통해서
나 또한 많은 위로와 이유 모를 따스함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생명을 등가교환 할 수는 없지만 내가 가지게 된 한 목숨으로 두 명의 이상의 목숨을 구하면
정말 멋지지 아니한가 라는 중2병스러운 철없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소방관을 꿈을 가지게 되었다.
저는 그렇게 스무 살의 의무소방을 거쳐 스물두 살에 소방관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