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 휴게소 外
가을이 본격적인 계절이면 좋겠다. 그것도 다른 계절을 지배하는 압도적인.
'압도적'이란 말이 애초 가을과는 어울리는 수식어가 될 수 없고, 다른 계절을 지배하는 계절이 있다는 것은 사계절을 부정하는 문장이다. 그래서 그런 가을을 포기한다 해도 '본격적인' 계절 정도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 아니지 않은가. 본격적인 계절의 지위에서 점점 내려오고 있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강력해지는 여름과 겨울 탓이다. 40도에 육박하는 무자비한 더위가 물러갔나 싶으면 어느새 시베리아의 혹한과 폭설이 몰려온다. 날씨로 인한 스트레스 없이 웃음을 지으며 산책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일장추몽(一場秋夢)이다. 잦은 가을 태풍은 안 그래도 짧은 묵상의 계절을 속절없이 단축시킨다.
조연으로 물러나고 있는 이 계절이 소중해 죽겠다. 돌아보면 조연이라 보석이 되는 존재들이 얼마나 많은지. 엉뚱하게 들리지 몰라도 내게는 도로변 휴게소가 그런 곳이다. 출발의 설렘과 도착의 안도감, 긍정적인 두 감각을 기꺼이 연결해 주는 마법의 공간. 물론 떳떳한 사계절 중 하나인 가을과는 달리 지극한 엑스트라이다. 서울에서 달려 강릉에 온다 치면 운전 시간의 10분의 1이나 머물까 싶은 한낱 경유지. 전체 여정에 비춰보면 하찮게 취급당해도 할 말이 없는 공간이다. 그런데 보석이라니. 적나라하게 건물의 쓸모가 명명된 휴게소에는 '휴게' 외의 무엇이 있음이 틀림없다. 하나씩 들춰내보려 한다. 먼저 서울 - 양양고속도로를 타고 강원도의 고속도로변 휴게소를 '여행'하자. 오늘의 휴게소들은 어깨가 으쓱하다. 경유지가 아닌 목적지로 거듭났으니까.
서울과 경기도를 지나 강원도에서 만나는 첫 휴게소, 그래봤자 서울-양양고속도로 구간에서 강원도내 휴게소는 내린천휴게소와 이곳, 홍천휴게소 둘 뿐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전형적인 휴게소. 이 고속도로가 개통된 것이 2017년이니 건물도 깔끔하게 딱 떨어진 모양새다. 역시 가장 먼저 달려가야 할 곳은 분식 코너. 열 맞춰 늘어선 핫바와 핫도그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라. 일상에선 화려한 메뉴들에 밀려 좀체 생각나는 일이 없는데 고속도로 휴게소에 내리면 얼마나 갈구하게 되는 대상인지. 몸체를 관통하고 있는 나무 막대기를 쥐는 순간 짜릿한 알파파가 정수리부터 요동치며 흘러내린다. 호두과자는 어떻고, 컵 떡볶이와 우동의 세레나데는 또 어떡할 건가. 여행 중 휴게소에서의 간식은 그 자체가 K-컬처였다. 아주 먼 옛날부터. 미국에서의 2년, 제주도에서의 19년 동안 육지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싶다던 로망은 겉치레였고, 실상은 휴게소 금단현상이었다. 여행의 중간 경유지가 아닌 또 하나의 목적지. 한국인의 DNA에는 '휴게소간식애정 리보핵산'이라는 물질이 대를 이어 전달되고 있을 것이다. 서울방향 홍천휴게소는 영화 <파묘>의 촬영지였다고도 한다. 다시 한번 봐야겠다.
처음 들른 인제 내린천휴게소는 무겁지 않은 충격이었다. 도로 위에 떠 있으면서 그렇지 않은 척 내숭을 떤다.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 서울 방향은 단출한 단층 건물, 양양 방향에선 평범한 건물 위에 다른 재질의 구조물이 얹혀있는 모습이다. 경사면에 지어진 휴게소라 그렇다. 그러나 내부로 진입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 양양 방향은 오르고 서울 방향은 내려간다 - 주변의 공간이 입체적으로 확장함을 알 수 있다. 둘러친 인제의 산들과 적당히 작아 보이는 고속도로 위 자동차들의 모습은 아이맥스의 동영상이다. 휴게소를 지나 양양 방향으로 조금만 달리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터널로 진입하게 되는데, 10,965미터라는 경이로운 길이의 터널 공사 과정과 공법을 보여주는 '백두대관 숨길관'도 휴게소 내에 있어 예사롭지 않다. 11킬로미터에 육박하는 터널이니 시속 100킬로로 달려도 거의 7분을 굴 속에 있어야 한다. 아무리 설명을 읽어봐도 이토록 두꺼운 산줄기를 어떻게 파고들어갔는지 그저 신기방기할 뿐이다. 수도권에서 강원 영동지역을 이어주는 전통의 영동고속도로는 나름의 낭만이 있고, 신참 양양고속도로는 꿈결 같다. 꿈같은 경치 때문이라기보다 터널의 연속이 만들어낸 조도의 증감 반복 탓이다. 서울에서 강릉을 가면서 고속도로 시점과 종점 사이 터널의 수를 세 본 적이 있다. 길이 10미터 정도의 짧은 터널을 포함해 총 63개. 운전 중 헤아린 거라 오차가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63개가 맞다고 한다. 오랜만에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대견스러울 게 원체 없다 보니 이런 게 다 대견스럽다. 그래서 뻘쭘할 때 묻곤 한다. "너 양양고속도로에 터널이 몇 갠 줄 알아? 모르지? 모를 거야". 아무튼 이 정도 개수면 약간 과장해서 터널 고속도로다. 경기와 강원의 산허리를 얼마나 뚫어냈을까. 구멍 난 생태가 안쓰러워 보이다가도 강원도의 방문자들을 대거 분산시켜 주었으니 도로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비겁한 이중적 사고. 다만 내린천휴게소는 독특한 공간의 기에 눌린 건지, 폐업한 식당들이 여러 곳 눈에 띈다. 더 많은 분들이 오셔서 음식에도 감탄하시길 바란다. 그러고 보니 수많은 다리로 받쳐져 높이 솟은 이 휴게소의 운영사는 (주)키다리식품이라고 한다. 키다리 말고 이토록 우뚝한 휴게소를 어느 누가 운영할 수 있겠는가. 찰떡이다.
난 참 이해가 되질 않는다. 오래전부터 그랬다.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간식거리 말고도 휴게소를 휴게소답게 만들어주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들썩이는 트로트 모음곡의 향연. 저장매체는 USB로 변신했지만 쿵짝거리는 재래식 리듬은 변함이 없다. 슈퍼스타로 등극한 트로트 가수들이 많아졌는데도 휴게소는 여전히 무명가수들의 잔치 판이다. 노래는 유명, 가수는 무명. 왠지 컴필레이션 앨범이 정규 앨범보다 한수 위 취급을 받을 것만 같다. 고속도로 휴게소니까. 심지어 '고속도로 트로트 메들리 100'은 수 십 년간 휴게소 길보드 차트 1위를 내어준 적이 없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두 번째 것이다. 무명가수의 트로트 메들리는 그 촌스러움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들썩거림이 한국인의 여행길 이미지를 대변해 준다. 그러나 휴게소 내 서점의 큐레이션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도대체 왜. 휴게소에 파는 책들은 죄다 자기계발서 아니면 부자가 되는 법, 주식 투자 성공기란 말인가. 속세의 때 다 벗기려 '놀러'가고, '쉬러'가고, '힐링'하러 가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자기 계발에, 주식 투자에 몰입하느라 지쳐버린 심신을 놓아버리려 떠나는 것 아니냐는 거다. 내가 휴게소 서점 주인장이라면 나긋나긋한 에세이를 팔거나 여행서적을 매대에 올려놓을 텐데. 자기계발서보다는 '여행'에 어울리는 장르가 매출이 높지 않을까. 문제는 당연할 것 같은 이런 생각이 오판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서점 주인이 바보인가? 긴 세월 이것저것 매대에 올려놨더니 결국 팔리는 건 실용장르였고, 여행과의 어울림 따위는 상관없이 사장님들은 가장 잘 팔리는 책들을 전시해 놨을 뿐이라는 거다. 여전히 이해가 잘 되지는 않지만 개구리의 교훈일 거라고 짐작해 본다. 복잡하고 답답한 일상, 잠시의 쉼을 재도약의 기회로 삼으려는 의지. 크게 움츠린 뒤 멀리 뛰려는 개구리의 각오. 지금의 상황은 만족스럽지 않지만 이번 여행에서 찬찬히 읽고 배워 나 자신을 한 뼘 성장시키고야 말겠다. 그래서 자기계발서에 손이 가는 여행자가 많을 수도 있겠다. 허나 난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
방향을 거슬러 양양에서 44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향한다. 초가을 변색에 가슴이 뛴다. 초록 일색이었던 강원의 산길에 불그스름한 포인트가 보석처럼 박히기 시작한다. 영원할 것 같았던 여름의 맹더위( 왜 더위 앞에는 '맹'을 붙이지 않는지 모르겠다 )가 사라지고 나니 창문을 열고 달리는 게 축복일 뿐이다. 아직은 스산함이 감돌 정도의 날씨는 아니라서 고도가 오를수록 쾌적함도 점증한다. 고속도로의 단조로움을 벗어나 기막힌 경치를 옆구리에 끼고 달릴 수 있으니 국도변 한계령휴게소에는 이동이 곧 여행인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실 이곳은 강원 영동 북부인 속초, 고성을 향하는 여행객들에겐 휴식의 성지가 된 지 오래다. 수도권에서 출발한 클래식 여행자들은 양평과 홍천을 거쳐 인제, 원통을 지나 구절양장의 정점에 있는 한계령휴게소에서 강원도 산악의 웅혼함을 먼저 흡수한 뒤 동해의 장쾌함을 맛보곤 했다. 강원도 여행길에도 명품 레트로가 있다면 고속도로 대신 44번 국도로 이동하는 여정이겠다. 휴게소에 도착하고 나서 양희은 님의 <한계령>을 흥얼거릴 참이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 둘의 대결 때문이다. 불편해 미치겠다.
오색령 표지석과 한계령 표지주다. 양양에서 인제 방향으로 오다가 들어오는 휴게소의 입구엔 오색령이, 반대 방향의 입구에는 한계령이 표시되어 있다. 즉 양양과 인제의 경계 부근인 이곳에서 양양 땅엔 오색령, 인제 땅엔 한계령이란 명칭을 굳게 박아놓은 것이다. 한 고개 두 이름. 그 연유를 알기 위해서는 이 고갯길 양쪽으로 나뉜 지명을 알아야 한다.
양양에서 오색약수가 있는 오색리를 지나면 한계령 정상으로 향하고 휴게소 부근에서 인제군과의 경계에 접한다. 한계령휴게소를 지나 서쪽으로 진입하면 곧 한계리라는 지명이 나온다. 단순하다. 휴게소의 양양군 오색리 쪽에 오색령 표지석이 있는 것이고, 인제군 한계리에 한계령 표지주가 있을 뿐이다. 굳이 둘 중 한쪽이 양보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지도를 검색하면 이 고개는 한계령이고 휴게소의 이름도 한계령이니 법정 명칭은 한계령이 맞다. 그렇다면 굳이 오색령을 내세우는 양양군의 입장은 뭘까. 과거 영동지역 사람들이 한양을 가기 위해 힘겹게 넘던 애환의 고개 이름이 오색령이었고, 당시 여러 기록과 자료에 명칭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유명 관광단지가 된 오색약수가 고개 바로 아래에 있으니 같은 지명의 고개로 시너지를 내려는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 인접한 인제군은 조선조에 만들어진 <해동지도>나 <대동지지>를 보면 한계령과 오색령이 별개로 그려져 있고, 지도를 살펴보면 한계령이 지금의 위치에 그대로 있다며 반박한다. 더불어 법정 지명도 한계령이니 두 말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한때 인제군은 양희은 님의 <한계령> 노래비를 설치하려고도 했으나 양양군의 반발로 무산된 적도 있다고. 한계령 휴게소의 대지는 대부분이 양양군의 땅이어서 허락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내 이름? 알 게 뭐야." 하는 무심한 소리가 고갯마루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기초자치단체의 경계가 아닌 국가의 경계라면 긴장감이 사뭇 높아진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서쪽 끝 국경, 북부 바스크 지방에는 애교스러울 정도로 작은 섬이 비다소아 강(Bidasoa River)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꿩섬'이다. 꿩이 많이 살아 직관적으로 이름을 붙인 건지는 모르겠다. 길이 200미터, 폭이 40미터 크기에 강변까지 엎어지면 이마 닿을 거리니 그야말로 만만한 섬이다. 대서양으로 흘러가는 강 자체가 국경선인 셈인데, 그 강 가운데 떡하니 놓여있다. 난감하다. 섬의 크기보다 누구의 소유인지가 중요하겠다. 어느 나라의 것일까?
정답은 재미있다. 6개월마다 소유권이 바뀐다. 정말이다. 매년 2월부터 7월까지는 스페인이, 8월에서 이듬해 1월까지는 프랑스가 다스린다. 그것도 무려 360여 년 동안이나. 이렇게 평화적이고도 환상적인 땅따먹기가 또 어디 있을까. 그게 말이 쉽지 실제로 가능한 걸까.
먼 옛날에도 이 섬은 누구의 소유인지 불분명했다고 한다. 불분명한 것들은 곧 분쟁의 대상이 되었던 게 범지구적 역사여서 의심 가득하지만 이곳만큼은 예외다. 폭이 좁은 강을 두 갈래로 갈라버리는 섬은 분리가 아닌 화합의 상징이었을까. 프랑스와 스페인 왕실 간의 혼인이 있을 때 신부를 상대국에게 처음으로 소개했던 곳이 이곳 꿩섬이었다. 역사는 부침을 겪는 법. 30년 전쟁으로 치열하게 맞서던 두 나라의 전후 마무리를 위한 협상의 장소도 이곳이었음이 차라리 자연스럽다. 소유에는 의무가 따른다. 2월부터 6개월간 스페인은 무인도인 꿩섬의 치안을 담담하며 불법 야영객을 단속하는 역할을 하고, 이후 반 년 동안 소유권을 갖고 있는 프랑스는 섬의 잔디와 수목을 깔끔하게 관리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내 나라도 아닌데 이렇게 흐뭇할 수가 있나. 준 것 없이 기특할 지경이다.
한쪽엔 오색령이, 반대편엔 한계령이 문제 될 것이 있겠나. 어느 하나라도 포기하기 아까운 이름이다. 발음마저 경쾌한 오색에서는 태백산맥 청정약수의 효능이, 차가운 시냇물이라고 하는 한계(寒溪)는 융기와 침강을 거듭해 마침내 냉정한 물줄기를 탄생시킨 강원도 자연의 시원(始原)이 연상된다. 스페인과 프랑스처럼 굳이 소유권을 나누어 가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덩어리로 놓인 봉우리에 칼자국의 단면이 있을 리도 없다. 인접 지자체의 매력을 인정하면 될 뿐이다. 1년에 하루 약속대련을 하자. 오색으로 한계를 물들이는 것이다. 한계령 휴게소 앞마당에서의 작은 축제. 인제와 양양의 뭉근한 연결. 자자, 오색리와 한계리에서 다들 올라오세요.
한계령휴게소는 가볍지 않다. 1979년에 지어진 이 휴게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김중업과 함께 우리나라 1세대 대표 건축가로 꼽히는 김수근의 '작품'이다. 나무의 따뜻함이 여행객을 감싸는 듯 보이지만 자비 없는 강원도의 겨울 날씨를 감안해 뼈대는 철골로 지었다고 한다. 넉넉하게 뽑은 데크는 멀리 칠형제봉을 조망하기에 완벽하다. 50년을 향해 가는 한계령휴게소는 시대에 뒤떨어졌던 적이 한 번도 없다. 명장의 고뇌가 해발 920미터, 태백산맥의 준령 위에 견고하게 박혀 있다. 김수근이 누구인가. 서울 목동의 도시계획을 그가 세웠고, IT산업의 씨앗이 되었던, 혹은 호기심 천국의 성채와 같았던 세운상가가 그의 작품이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의 성당과 대사관, 박물관을 설계했으며 서울올림픽 주 경기장이 그의 포트폴리오 중 하나라면 말 다했지 싶다. 권력층과 정부, 대기업들과 밀접한 관계였다는 비판이 있지만 적어도 한계령휴게소만큼은 소수만을 위한 작품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니 그의 좋은 변명거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산에서 급강하해 바다로 간다. 마지막이다. 태백산맥 숲의 큰 숨이 가득한 한계령휴게소는 1983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았고, 동해 파도의 야성과 맞닥뜨리는 옥계휴게소는 2005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에서 바다를 조망하기 가장 이상적인 휴게소일 가능성이 짙다. 바다 근처 모든 휴게소를 다 가 보지는 못했으므로. 동해고속도로 상행선인 속초 방향 명당에 자리 잡은 건물이다. 길 건너 하행선 쪽 휴게소는 동해휴게소다. 보통 양 방향에 있는 휴게소들은 이름이 같은데 이곳은 아니다. 이유를 알고 나면 명칭을 통일하라는 재촉을 할 수가 없다. 강릉과 동해의 경계가 이 부근을 지나는데 상행 쪽 휴게소는 강릉시에, 반대편 휴게소는 동해시 땅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사진 속 휴게소는 강릉시 '옥계면'에 놓여있다. 아슬아슬하긴 해도 추호의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강원도는 아름답다. 휴게소마저. 경유지로서가 아닌 목적지로서의 휴게소는 어떨까. 신분 상승한 휴게소들은 기뻐할 테고, 우리의 여행은 적어도 배가 고프지는 않을 것이다.
온종일 헤매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 보다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빗물 젖은 옷자락에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의 꽃으로 핀다
찬 빗속 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무서움에 도망치듯 총총이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 관광버스가 지나친다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1981년 정덕수의 시 <한계령에서> 작품의 후반부이고, 그렇다.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 가사의 근본이다. <오색령에서>라고 해도 상관없겠고 <오색령>이라고 제목을 붙여도 괜찮겠다.
여름내 폭발하던 광합성은 기세가 꺾였는지 사람의 호흡과 엽록소의 숨이 평형을 이룬다. 짙어지지 못한 안개구름은 빛을 분산시켜 몽환의 공간으로 가을의 손을 잡아끌고 간다. 쉴 곳임이 마땅하다. 거쳐가도 좋으니 내려놓으시기를. 치유력 한가득인 이런 곳에서 젖은 담배 태우면 안 될 일이다.
그러니 내려가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