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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해석들

빛과 숲, 페를라허 포르스트 공동묘지 ②

by Total Eclipse







두 사람이다.

죽음이란 무엇이고 그것이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학자들은. 내킬 것 같지 않은 '죽음학'을 저 바닥까지 파고들어, 그나마 생과 사의 비밀이 담긴 상자라도 건드려 봤음직한 우리의 인도자는 그 둘이다.

먼저 <죽음 앞의 인간(L'homme Devant la Mort)>(1977)을 쓴 필리프 아리에스(Philippe Ariès,1914~1984)가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한 죽음의 개념에 대해 설명한다. 이 변화란 것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진화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중세 초기까지의 유럽인에게 죽음은 일상이었다. 이것은 현대인과 비교해 평균수명의 턱없이 짧았다는 식의 생물학적 결론이 아니다. 부활의 신념이 상식이었던 시절에 죽음은 덤덤한 통과의례였다. 집에서 친지에 둘러싸여 맞는 죽음은 길거리에서도 들여다볼 수 있는 일상의 사건이었고, 따라서 개인의 임종은 그렇게 슬퍼할 수 없는 공동체적 이벤트이기도 했다. 아리에스는 이를 '길들여진 죽음(Tamed Death)'의 시대로 표현했다. 이 시기의 묘비에는 덤덤한 표정의 글귀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후 15세기까지의 죽음은 개인화 과정을 거쳤다. '최후의 심판'이라는 종교적 판단이 죽음에 개입하면서, 잘못 살면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경계심이 죽음을 조심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다. '너는 어디로 갈지 모르겠지만 나 정도면 천국 갈 만한 삶이었어.' 더 이상 죽음은 공동체의 일상적 이벤트가 아닌 개별적이고도 특별한 사건이 되었다. 난 도덕적인 삶을 살았으니 천국으로 보내달라는 요구가 장례의식을 통해 유언장과 묘비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나 자신의 죽음(One's Own Death)'의 시기다.

이어지는 바로크 시대의 죽음은 두 단어다. 공포와 허무. 전염병 창궐로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내 곁의 죽음은 일상적이되 가공할 공포로 들러붙는 사신의 협박이다. 삶의 덧없음에 무릎을 꿇어버린 힘없는 인간의 계절, '가깝고도 먼 죽음(Remote and Imminent Death)'의 시대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의 교훈은 이 시기의 회화 작품에서 빈번하게 드러나며, '바니타스(Vanitas)'라는 개별적인 장르마저 탄생하게 된다. 죽음 그 자체인 해골과, 죽음이 임박했음을 경고하는 모래시계를 그린 정물화의 구도는 익숙한 죽음의 공식이었다.

바니타스.jpeg 「바니타스」 필라프 드 상파뉴(Philippe de Champaigne 1602~1674)


이어서 도래한 낭만주의 경향은 타인의 죽음에 초점을 맞춰 애도와 슬픔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끔찍한 공포에서 탈피한 장례 절차는 화려한 양식으로 진행되었고, 이때부터 망자의 묘비에는 장문의 추모글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문학작품에선 먼저 떠나간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이야기가 정형화되어 나타난다. 이른바 '타인의 죽음(Thy Death)'의 시대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은 아리에스가 분류한 죽음 인식의 마지막 단계, '금지된 죽음(Forbidden Death)'의 압박에 놓여있다. 상상을 뛰어넘은 의술의 도약으로 접근하려던 죽음의 사신은 멈칫거릴 수밖에 없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죽음과의 대면도 미루어지는 끈덕진 삶. 가당치도 않은 영원불멸의 착각은 죽음을 부정하는 쪽으로 인간을 이끌었고, 그럼에도 한계에 달한 목숨줄은 병원이라는 폐쇄 공간으로 스스로를 몰아넣었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단단한 장벽이 세워졌다. 병원은 일상과 격리된 공간으로, 내부에서 벌어지는 죽음과의 사투는 그들만의 임무가 되어버렸다. 공동체 안에서의 임종이란 옛말이 된 지 오래고 죽음이란 말은 살아가는 이들 사이에서 함부로 꺼내선 안될 금기어 목록에 오른 지 한참이다. 다들 죽을지 몰라도 나는 불멸의 화신일 수도 있는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심리적 접근을 넘어 사회의 흐름을 분석해 죽음의 의미를 파악한 아리에스의 죽음론은 통시적이면서 동시에 공시적이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철저한 개별 인간으로서 보내야 할 죽음과 맞아야 할 죽음이 결국엔 무슨 의미를 갖는 과정인지 알고 싶다면 그의 통찰은 굳게 다져진 기초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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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학의 두 대가, 필리프 아리에스와 셸리 케이건


죽음을 이야기할 때 즉각 인용되는 두 번째 인물은 현대 죽음학의 명사, 셸리 케이건(Shelly Kagan, 1956~ ) 예일대 교수다. 필리프 아리에스에 의해 금지된 것으로 낙인찍힌 죽음은 그로 인해 봉인이 해제되었다. 의학과 문학, 기행문 할 것 없이 죽음이란 주제는 휘적휘적 경계를 넘나들며 다시 일상 속 화제로 싹을 틔우고 있는 중이다. 셸리 케이건의 강의와 책이 폭발적인 반향을 보였다는 얘기는, 우리가 꾹꾹 눌러온 죽음과 사후세계를 담은 원초적 고민이 한계에 달해 뻥 터졌다는 뜻이겠다. 죽음학 논의의 티핑 포인트가 된 케이건의 통찰. 그건 의외로 단순하고 명쾌하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프롤로그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죽고 나면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진다고 생각해 보자. 이 말이 옳다고 한다면 죽음은 결코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일단 내가 죽었다면 죽음은 절대 내게 나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존재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죽음이 내게 나쁜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내게 아무런 피해를 입힐 수 없는데 어떻게 죽음을 나쁜 것이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알기 쉬운 논리학과 사례 문답까지 동원하면서, 눈을 뗄 수 없는 기교로 케이건 교수는 강의를 했지만 결론은 담백 그 자체. 영혼이란 있을 수가 없고 신체야 당연히 사라지는 것이니 '이미' 죽은 나를 내가 안타까워할 수도, 억울해할 일도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환자가 안락사를 하기 좋은 시점마저 제시하면서 그는 죽음의 효용감을 면밀히 측정하기도 한다. 여전히 논란이 많은 개념이지만, 셸리 케이건 교수의 촉발로 죽음이 다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온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와중에 페를라허의 청신함에서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린다. 도리어 생명력이 넘실대는 공간이 아닌가.

거 죽음 얘기하기 딱 좋은 날씨다. 담배는 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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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_114144.jpg 페를라허 포르스트 묘지


공동묘지의 입구를 지나 느슨하게 양 옆으로 포진해 있는 묘비들과 평행으로 나아가다 보면 느닷없이 확장된 공간과 마주친다. 초록의 융단 위, 연갈색의 몸통과 청록색 지붕의 조합이 우아한 석조 건물이 독보적이다. 묘지의 개장과 동시에 건립된 이곳은 페를라허 묘지의 상징이 된 장례식장이다. 최고 품질의 응회암으로 지어진 까닭인지, 100년이 다 된 오늘날에도 세월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35미터 높이의 건물 내부에는 영적인 느낌을 담을 수 있도록 구조와 채광에도 만전을 기했다고 한다.

20240822_112732.jpg 페를라허 포르스트 묘지 내부의 장례식장


예사롭게 보아 넘길 윤곽이 아니다. 십이각형의 기둥에 뿔을 올려놓았다. 복잡하고도 난해한 다각의 건물이다. 하고많은 다각형 중 왜 하필 12각이란 말인가. 12각으로 둘러친 공간엔 영적인 기운이라도 감도는 것인가. 장례식장의 디자이너는 숫자가 품은 의미에 정통했을지도 모르겠다.

열 손가락을 가졌다는 이유로 인간은 결국 십진법에 안착했다. 사람을 중심으로 한 계산 방식이므로 인본주의가 바탕이 된 오늘날의 편리한 셈법이다. 휴먼 스케일의 증거가 십진법이라면 우주의 운행 체계를 수의 세계로 들여온 것은 십이진법이었다. 선대의 지혜를 축적한 결과 사람들은 해와 달의 운행, 그리고 지구의 자전이 만들어낸 기상과 환경은 12로 나누어 떨어지는 주기를 가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농사를 하고 자연재해를 막기 위해선 어슴프레 1년이란 길이를 반복하는 게 효과적이었고, 360일로 어림된 1년은 12로 나누어야 반복되는 조수간만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었다. 황도는 12궁이 되었고, 시간은 12로 하루를 양분했다. 수학자들에게도 12는 완전수로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2,3,4,6으로 균등하게 나누어 떨어지는 균형의 수일뿐더러 분수를 표현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으니까. 예수는 열 두 제자를 거느렸고 그리스 신화에는 열두 명의 주신(主神)이 등장한다. 심지어 동양에는 영험한 십이지신이 수 천년 동안 백성들을 호위하고 있다. 우주 스케일의 완전수 12는 망자의 빈틈없는 축복을 염원하는 기복의 기호가 아니었을지. 십이각의 장례식장은 당장이라도 천국으로 솟아오를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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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장례를 끝낸 듯한 사람들이 건물에서 나왔다.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찌르는 영안실과 육개장 풍미 일색인 병원의 장례식장이 기성품이라면 페를라허의 장례식장은 맞춤 정장이다. 어느 사회이든 나름의 여건에 들어맞는 장례 문화와 양식을 갖고 있을 것이어서 우열을 가리는 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병원에 딸려 1호실부터 12호실까지 최대한의 효율로 나뉜 정육면체의 건물은 아무리 생각해도 삭막한 애도의 현장이다.

페를라허 포르스트의 땅에 누워 안식할 수 있는 기간은 최소 10년이고 그 후의 연장은 선택하기 나름이다. 광활한 공동묘지 안에는 동부와 중부, 서부, 그리고 피싱, 오버엔징, 운터엔징 등 유가족의 취향이나 경제적 여건에 따라 고를 수 있는 다양한 구역이 있다. 연간 21유로에서 1,500유로(한화로 약 3만 4천 원에서 245만 원)로 관리비용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은 뮌헨시민 각계각층을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죽음의 해석은 언제 또 달라질지 모른다. 종교가 우월한 사회에서 국가권력이 전능한 나라로, 산업과 정보가 모든 것을 틀어쥔 세계에서 사람들은 죽음을 이웃으로, 초자연적인 것으로, 공포로, 투명인간으로 취급하며 죽어갔고 지켜보았다. 삶이 다해 스러지는 과정은 시대를 막론하고 다를 게 없는데 그걸 터득하는 방식은 이렇듯 천차만별이라니. 셸리 케이건이라면 덧없는 해석이라며 빙긋 미소를 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모든 장례의 정성은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것. 남겨진 자들이 죄책감을 덜고 호모 사피엔스 시절부터 행해 온 떠나보냄의 풍습을 유전자의 작용으로 재현하고 있는 본능에 다름 아니다. 페를라허 포르스트에 망자를 안치한 살아남은 자들은 그렇다면 그들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한 셈이 아닌가. 대지의 기운은 안온하고 완전수의 조화는 상서롭다. 그럼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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