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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an 27. 2024

과연 이방인에게만 친절한 에든버러일까

에든버러여행

도시여행보다는 산을 좋아하고 시골을 좋아하는 우리인데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남편에게 에든버러에 꼭 가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시큰둥하더니 본인도 직접 운전하고 에든버러까지 갈 생각을 하니 슬슬 신이 나는 듯해 보였다.

남편은 16살 때 동네 단짝 친구와 영국의 국토횡단을 한 적이 있다. 텐트와 배낭을 챙겨 거의 한 달 동안 국토횡단을 했고 종착지가 스코틀랜드였었다고 했다. 그때 가보곤 처음이라고 했다.


영국에 온 뒤로는 캠핑 아니면 에어비엔비로 코티지를 예약해 주로 여행을 했지 호텔에 머무른 적은 없는데 이번엔 Holiday Inn에 예약을 했다. 아침이 제공되고 시내와 가까워 굳이 운전을 하지 않고 택시를 불러 타고 시내에 도착해서 하루 종일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다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곤 했다.


에든버러는 내가 가본 도시 중에 단연 아름답기로는 으뜸이었다. 에든버러성, 그 아래로 쭉 길게 늘어선 로열마일과 식당과 가게가 즐비한 조지안양식의 건물이 즐비한 뉴타운(1800년경에 건축됨). 건물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세월의 흔적들을 따라가며 사색에 잠기기 참 좋은 곳이다.


국립스코틀랜드박물관, 로열초상화박물관, 모던아트갤러리, 국립스코트랜들 아트갤러리, 차일드후드뮤지엄 등등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훌륭한 곳들이 참 많았다.


둘째 날 B는 너무 많이 걸어 힘들다고 박물관은 가냐고 얼마나 골을 부리는지... 여행을 하면서 누구 하나 불평하기 시작하면 고난이 시작되는지라 엄마의 위엄으로 눌러버리고 기어코 아이를 끌고 박물관에 갔다. 가자마자 일층 벤치에 앉아만 있겠다고 골을 부렸고, 혼자 올라가 둘러보니 신천지가 따로 없었다. 오래된 유물만 모아놓은 박물관이 아닌 체험을 하며 새로운 기술들이 어떻게 발달되어 왔고 작동되는지를 체험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얼른 아래로 내려가 내키지 않아 하는 B를 끌고 올라왔다. 곧바로 아이의 눈빛이 변했다. 거의 박물관 닫을 때까지 있었다. 다음날 거길 가자고 졸라대서 다시 찾아갈 정도로 아주 아이들과 가기에는 훌륭한 곳이었다.


그리고 호텔과 가까운 모던아트갤러리에 애들을 데리고 갔는데 둘 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여유롭게 작품들을 감상했다. 모던아트갤러리는 1관과 2관으로 큰 대로를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우리가 간 갤러리 1은 옛날에 고아원으로 쓰던 건물을 개조했고, 건너편 갤러리 2는 옛 사립학교를 개조했다고 했다. 세상에 부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지만 오래전 그곳에 있던 아이들이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과연 아름답게만 자랐을까.....라는 생각에 미치자 내가 그동안 못된 영국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하고 생각을 접었다.


로열마일 아래쪽에 아주 작은 차일드후드뮤지엄이 있어서 들어가자고 하니 남편이 뭔 그런데를 가냐고... 어디 가서 맥주나 한잔하고 싶다는 걸 끌고 들어갔다. 영국에서 옛날부터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과 학교 교실 풍경 등등을 재현해 놓은 곳으로 그곳에서는 남편이 신이 나서 돌아다녔다. '나 이거 어릴 적에 가지고 놀았던 거야!, 맞아, 기억난다. 기억나!' 결국 그 작은 박물관에서도 우린 한 시간을 넘게 있다가 나왔다.


에든버러를 가기 전에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 있다. 잉글랜드 사람들에 비해 사람들이 아주 많이 친절하다고. 그런데 우린 사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스코틀랜드 사람을 만나본적이 없다. 그럴 정도로 에든버러 시내는 여행자들과 이방인들이 넘쳐났다. 택시 기사들이 유일한 스코틀랜드 사람들로 매우 친절하긴 했다. 그래서 잉글랜드사람인 남편이 기사분 듣기 좋으라고 립서비스로 스코틀랜드 사람은 많이 친절하단 이야기를 하니 잠시 머뭇거리며 하는 말이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이방인에게만 친절하지 자기들끼리는 그렇게 친절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물론 택시 기사분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 나온 말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대변해 주는 말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렇게 살기 좋은 곳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잠깐만 해보았다. 며칠 방문해 보고 한 분의 말만 들어보고 그곳을 섣불리 평가해 버리기는 싫었다.


어머님이 아버님과 이혼하고 새롭게 만난 분은 스코틀랜드분이셨다. 돌아가신 지 17년이 된다. 생전에 늘 스코틀랜드 땅을, 사람들을 그리워했고 어머님 하고도 같이 여러 번 다녀오셨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충분히 그리워할 만큼 살기 좋고 좋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리라.


나에게는 영국으로 이사 온 5년 동안 처음으로 하루이상 끼니를 짓지 않고 호사를 누렸고, 도시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 다시 오자고 할 정도였으며, 늘 시골로만 여행을 다녔던 큰딸은 자기는 아무래도 도시여행체질인가 보다 했고, 박물관에 홀라당 넘아간 둘째 B도 꼭 다시 오자고 할 정도로 모두에게 너무나 만족스러운 에든버러 여행이었다.


에든버러는 차를 가지고 갈 필요가 없다. 배낭을 가볍게 꾸려 기차로 가서 그리 비싸지 않은 곳에 숙박하며 온 도시를 며칠이고 걸어 다니며 여행할 수 있는 아주 멋진 도시이다. 그리고 영국음식에 질린 나의 영혼을 살찌개해준 곳 '옹기'라는 한국식당이다. 짬뽕이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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