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 Feb 03. 2024

영국이 컵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슈퍼마켓에 가면 컵라면이 통로 한 곳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일본 것으로 소바면, 미소나 간장소스가 들어간 라면들이다.


남편이 처음 한국에 와서 사발면을 먹어보고 영국의 컵라면에 비하면 너무 맛있다며 매우 놀라워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만큼 영국 컵라면은 맛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인기도 없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세상이고 또 때마침 일본 브랜드가 그럴싸한 포장으로 영국슈퍼마켓에 진출한 뒤로 학교에서도 교직원들이 휴게실에서 컵라면에 물을 부어 먹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늘 아이들 도시락 아이디어가 부족한 나는 B에게 소바면과 김치신라면을 사 와서 싸가지고 가보라고 했다. 첫날 소바면을 싸가지고 가더니... 자기 입맛에 안 맞는다고 친구에게 다 주었다고 했다.


남편은 늘 샌드위치는 자기가 만들어놓고 나는 과채주스, 커피, 삶은 계란만 아침에 준비해서 도시락을 싸주는데 샌드위치가 들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떡하니 김치신라면이 들어가 있다. 오늘 학교 가서 동료교사들에게 컵라면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며 야무지게 젓가락까지 꽂아서 갔다.


시내를 나가도 점점 아시안마트가 많이 들어서고 있고 한국음식도 꽤 많이 들어와 있다. 어느 날 늘 가던 슈퍼에 소주가 종류별로 여러 개 놓여있는 것을 보고 영국 사람들이 소주 안 먹을 텐데 왜 이렇게 많이 가져다 놓았냐고 물으니, 드라마 영향 때문인지 엄청 잘 팔린다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아저씨 얼굴이 싱글벙글이다.


며칠 전 큰아이를 픽업해서 오는 길에 차가 막혀 타임스라디오를 듣는데 김치라는 말이 들렸다. 우린 차 안에서 뭐 이런 우연이... 하면서 귀길울여 들었는데 김치에 좋은 유산균이 많아 위와 장에 좋다는 내용과 함께 한국인과 직접 전화연결까지 해서 왜 김치가 좋은지 등등을 소개하는데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 


학교에 가면 종종 한국노래를 따라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들리고... 가끔 수업시간에 나 몰래 크롬북으로 한국드라마를 유튜브로 보는 아이들도 있고, 내가 지나갈 때마다 '안녕! 선생님' 하며 상체를 과하게 숙여가며 인사하는 아이들도 있고..... 남편과 처음 영국에 왔던 2001년도 비하면 정말 한국 문화나 음식등이 너무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때는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공식처럼

"Where are you from?"

"I`m from Korea"

"South or North?"

"of course from the south"

 그럼 남편은 바로 구시렁거렸다. 얼마나 무식하면 그런 걸 묻냐... 북한이 어떤 나라인지나 알고 떠드냐 등등... 그러면서 바로 무슨 한국정부에서 홍보맨으로 파견 나온 사람처럼, 한국이 얼마나 발전된 나라인지 아느냐... 현대, 삼성, 엘지 다 한국 거다. 그리고 조선업도 세계 1위다. 등등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 신나게 떠들어 댔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다시 라면 얘기로 돌아가면, B의 단짝 친구 T가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라면을 먹어보고는 신세계를 경험한 것 같은 얼굴을 했었다. 그리고 곧 생일이 돌아오는데 짜파게티를 선물로 사달라고 B에게 부탁할 정도이다. T가 집에 놀러 오면 나는 자주 짜파게티를 끓여준다. 짜파게티 위에 계란프라이 하나 얹고, 고춧가루를 조금 뿌려주면 김치를 척척 올려 잘도 먹는다.  곧 영국의 메인 슈퍼 컵라면 코너에 한국의 컵라면이 쫘악 깔릴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채소 안 좋아하는 B의 최애 케일 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