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순서에 대해
사랑하는 아들에게
너랑 아무 생각없이 대화하다가 엄마 아빠가 울컥한 날이 있었는데 그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편지를 쓴단다. 특히, 아빠는 그 말을 듣고 중2인 너에게 지금 아빠 엄마가 어떤 존재이길래 그런 말을 했을까라고 생각도 해봤단다. 부모의 삶을 포기하고 돈과 시간을 맹목적으로 너희를 위해 투자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희가 태어나서 함께 살다가 사회 속에 좋은 사람으로 나가도록 돕는 역할을 잘 해야 하는 존재임을 잊지 않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단다.
대화 내용을 가만히 생각해봤는데 또 뭉클해서 편지를 쓰지 않으면 안 될것같더라. 도저히 말로는 아빠의 마음을 전할 수는 없을 것같단다.
"엄마 아빠가 먼저 죽는 게 마음이 힘들 것 같아서 먼저 죽고 싶어요."
"뭐?"
"엄마 아빠가 먼저 돌아가시는 걸 본다는게 너무 힘들것같아요. 차라리 제가 먼저 죽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아니야! 우리는 순리대로 살다가 먼저 죽는 거야. 그후에 너희가 어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란다. 그게 순리야! 반대로 엄마 아빠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죽음들을 접해야 한단다."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아빠는 엄마와 대화하면서 "제가 저런 생각을 하고 지내는 게 마음에 걸리네요. 아무리 부모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건 알겠지만 그 슬픔을 감당 못하겠다고 먼저 죽는 게 낫다고 말하는 게 슬프네요." 라면서 엄마 아빠는 한참을 대화했었단다.
가끔은 너가 너무 애뜻하게 구는게 너의 발목을 잡을까봐서 엄마 아빠가 오히려 등을 떠밀고도 있지. 부모와 집밥을 먹겠다고 친구들과 약속이 갑자기 잡혔는데 안 나가겠다고 하길래 얼른 밖에 나갔다오라고 등 떠밀었고, 저녁에 공부하다가 친구들이 축구시합을 하자고 연락이 오면 안 나가겠다고 하는 것을 손에 축구화 들려주면서 나가서 신나게 달리고 오라고 했었지. 친구들이 너희 부모가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진짜냐?"라면서 계속 반문한다고 했지? 다른 친구 부모들은 학원 여러 개 다니다가 끝나면 집에서 복습하고 시험 성적 잘 나오도록 미리 준비하라고 잔소리한다고 한다면서 웃었지? 우리는 공부하는 것도 중요한데 아이들과 운동하거나 축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나쁜 짓하지 않는 너라는 것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축구화 주머니를 손에 들려주면서 나갔다 오라고 하는것같아. 그럴때마다 '안 나갈래요. " "다녀와라!"라고 재밌는 실랑이를 하기도 하고 말이야.
그런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서인가? 아니면 네가 보기에 부모가 돈이 많아 보이지 않는데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가능하면 제때 제대로 사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고마워서인가? 늘 애틋하게 대해주더라. 엄마 아빠 생일은 철저히 지켜서 편지라고 한 장 쓰고 작은 선물이라도 용돈 모아서 사주고 말이야. 심지어 부모가 죽는 모습을 보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먼저 죽어야 될 것 같다고 말하는데 아무리 사랑해도 그러지 않아도 된단다.
사랑하고 애틋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우리 순리대로 살면서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자!
너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웠는데 자세히 생각해 보니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면서 '고마움'과 '사랑'이 느껴지더라.
엄아 아빠는 중2가 되면 건드리지 말고 말도 걸지 말고 잔소리는 아예 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모든 사람들의 철석 같은 조언을 마음에 새기면서 지내고 있긴해. 물론 그러면서도 실수하듯 잔소리할 때도 있긴 하지만 너랑 지내면서 생각 밖의 중2를 만나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고맙단다.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되는 '판도라 상자'같은 존재가 아니라, 가끔은 열어서 확인하고 서로 행복해하는 '보석함'같은 존재같이 느껴진단다.
한 번씩 너랑 스치듯 대화하다가도 사랑이 담기고 짠한 감정이 느껴지는 대화가 고맙더라.
아직은 어려서 너의 감정을 눌러가면서 아빠랑 지내준다고 느끼기도 한단다.
그러면서 혹여 아빠보다 키가 훨씬 크고 힘이 세졌을 때 "이제는 못 참아요."라면서 주먹을 날리지는 말아줬으면 한단다. 부탁하고 싶다. 그런 것과 더불어서 아빠도 아주 많이 노력해서 극반전이 일어나지 않도록 진정한 남자, 아빠로 너와 함께 동행할게.
사랑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너의 사랑이 느껴지는 말을 잘 기억하면서 힘내서 일하고 늘 함께 지낼게.
다시 한번,
네가 엄마 아빠를 애틋하게 생각해 줘서 고맙다. 아주 자랑스러운 아들이라고 자랑하고 싶다.
큰사람(by바람없이 연 날리는 남자Dd)
출처:사진: Unsplash의Will Gul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