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사랑하는 그대. 여보에게
나는 당신과 살면서 고마운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어요.
특별히 결혼이라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축복이자 감사이며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남자생각만 가득 찬 내가 반쪽이로 세상을 평생 살아갈 뻔했는데 당신을 만나 함께 살면서
모난 구석이 다듬어지면서 점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살게 되고 있으니까요.
당신이 세 번이나 힘들고 힘든 상황에서 낳아준 아들딸들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혜안을 얻어가고 있고요.
아들과 지내면서 남자로 커가는 모습이 어떻게 되면 세상 속에서 빛 같은 존재가 될지,
딸 둘과 지내면서 여자로 커가는 모습을 보고 있기에 당신을 이해하며 이제야 한쪽 눈을 마저 뜨고
살고 있네요. 그러니 나는 결혼한 것,
특히 당신과 결혼한 것을 감사해야 함을 점점 더 잊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요.
그런 생각들을 편안하게 차 한잔하면서 나누다가
눈물 찔끔했던 일이 생각났어요.
문득 비전과 관련해서 내가 앞으로 해나가고 싶은 것들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지요.
차 한잔을 하면서 나누기에 기분 좋아서 또 그렇듯이 내 얘기만 잔뜩 했었고요. 그러다가
결혼한 것에 대해서 고맙다는 얘기를 하게 되었고요. 그때 당신이 한 얘기에 나는 충격을 받았지요.
"다시 기회가 된다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다시 기회가 된다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듣고 또 들어도 정말 "나와 다시는 결혼하지 않는다"는 말이었어요. 충격을 받았지요. 충격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삼 남매와 살아가고 있는 시간 동안 서로의 부족한 것을 바라보고 고쳐나가기를 기다려주면서
지낸 시간들이 모두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허망하기도 했어요. 특히, 나의 부족함이 크다는 생각에서 스스로
우물쭈물하면서 "그렇지요. 그럴 거예요."라고 말했지만 당혹함을 감출 수는 없었어요.
그런 나를 보면서 당신이 또 말했지요.
"결혼하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나의 비전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결혼을 결정했었어요. 그런데, 살아보니 내 비전과는 전혀 반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어요. 이런 사람이라면 다시는 결혼하지 않아요. 다시 기회를 주어진다면 비전이 맞지 않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다행이었어요. 같이 못 살만큼의 몹쓸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라, "비전이 맞지 않다면~" 전제가 붙는 것이 내 마음에 그나마 숨구멍을 만들어주는 것 같았어요.
그런 일이 있고 며칠 후 또 대화를 하다가 나는 사실 주저앉을 만큼 허탈했어요.
얼마 전 대화하다가 '비전' '결혼'들을 진지하게 나누는 날이 생각날 만큼 대화가 심각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울림이 큰 날이었어요. 걸으면서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싶다는 말을 또 내가 꺼내게 되었어요. 그런 말을 하다 보니 당신이 왠일로 자기의 인생 비전을 꺼내게 되었어요. 내심 마음으로는 '어떤 말을 할까? '라면서 두근거리기도 하고 염려가 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말을 들어보니
'오! 내가 생각하고 준비하려고 했던 것들을 결혼전부터 하고 싶었다고?'
이런 생각이 머리에 스치면서 허탈하기도 하고 머리를 한 대 맞는 것도 같고요.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위해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이었어요. 당신은 나와 '입양'에 대해서 결혼하고 삼 남매를 낳자마자 생각을 나누는 시간도 있어서 그런 것에 대해서는 늘 형편이 낳아지면 추진하자고 했기에 그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사회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베이비박스'에 대해서 원래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이 충격이었어요. 내가 '베이비박스'관련 일들을 점검해 보고 직접 또는 간접으로 해보려고 혼자 자료를 찾아보고 준비해보려고 했던 시간들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서 '진작에 이런 대화를 했다면 예전에 벌써 시작했을 것인데 '라는 생각으로 당신에게 핀잔을 줬다가 당신의 다음 말에 놀랐어요.
"이제야 당신에게 이런 말도 할 수 있네요. 예전에는 당신과 이런 것을 대화할 정도가 아니었어요."
"나는 오늘 행복하네요. 15년이 되니까 이제 이런 대화를 할 날도 오네요."
당신이 담담한 어조로 말해주는 그 말들은 나의 눈과 마음에 눈물이 핑 돌게 했어요. 나에게 자기 삶의 비전을 왜 나누어주지 않았냐면서 핀잔을 준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웠어요. 말해도 안 들어주는 남편이었고, 들어도 이해 못 해주는 남편이었고, 들어도 안 하려고 거부하는 남편이었거든요. 그런 남편과 살면서 언젠가는 비전을 나누고 함께 손잡고 해 나갈 날을 기대하면서 기다려준 당신이 15년 만에 자기 비전에 공감하고 "나도 그런 생각하고 있어요."라는 남편의 대답까지 들었으니 얼마나 후련했겠어요.
비전이 맞지 않는 남자라서 다시 결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는 당신과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는데 공교롭게도 며칠 후 이런 '비전 일치'와 '공감'의 대화를 하다니 아이러니했지요. 그렇지만 당신의 소원이 이루어진 날이었다는 말에 그 대화때문에 나는 마음으로 많이 울었어요. 미안해서 울었고요. 자기 인생 비전을 나눌 동반자와 살고 있지 않다는 공허함을 간직하고 감내하며 기다리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짠하고 찢어질 듯 아팠어요.
오늘은 그런 것에 대해 미안함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래요. 다시 태어나서 결혼하면 나랑 결혼하지 않아도 좋아요.
대신에 지금! 이제! 우리 앞으로의 비전이 일치되어 가니까 그 비전에 대해
함께 힘을 모아볼 궁리를 하면서 지내봅시다.
그래요. 지금 살고 있는 동안 우리 함께 최선을 다해 봅시다.
그렇게 살면서 우리 둘이 연합하여 하나처럼 그 비전을 향해
힘껏 살다가 함께 죽읍시다. 다음 기회에 나랑 결혼하지 않는다고 해도 서운해하지 않을게요.
오늘! 지금!
나랑 함께 살고 있는 자체로 고마워할게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나의 여보!
아내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15년 동안 자기 비전을 말해도 들어줄 귀가 없는 남편, 들어도 함께 해주지 않는 남편과 살면서 얼마나 희망 없이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에 미안하고 미안했습니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랑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이 서운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사는 것이 아니라 비전이 일치해서 함께 힘써 살아갈 이유가 없다면 그런 말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제야 서로 비전을 교환하고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 나누는 기회들이 생긴다는 것에 대해서 고마움을 전하고도 싶었고요. 저는 그저 감사하며 서로 합력하여 살아가보려고 합니다.
발행 날짜를 바꿔 보았습니다.
늘 화요일이면 가족에게 편지를 쓰면서 지냈습니다. 늘 화요일에 편지가 올라오는 것을 기다리는 분들도 있으시겠고요. 혹여 늘 똑같은 편지를 화요일에 올리는 것이 실증나시는 분도 있으실 것 같아서 화요일은 저를 돌아보는 '감정 163 기회'의 글로 발행날을 변경하고요. 목요일에 아내와 삼 남매에게 편지 쓰는 날로 변경해 봤습니다. 미리 알림을 하고 변경하지 않은 것에 대한 무례함에 대해 사과드리고요. 계속 차근차근 편지를 쓰면서 고치기도 하고 감사하거나 미안하기도 하면서 성숙해지는 남편, 아빠가 되도록 노력을 이어가겠습니다.
아내는 소중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아내라는 존재의 다양한 모델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삶에서 아내의 실질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150% 말도 안 되는 멀티 슈퍼우먼의 삶으로 살아가는 기혼자 분들도 있으십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내 아내는 왜 이런 것도 못하냐!'라며 불평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정말 불필요한 생각이자 불평찌꺼기였습니다. 제 아내는 '저런 것'은 못하지만 '이런 것들'을 잘 해내고 부족한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천사 같은 아내였습니다. 특히, 작은 것에 불평하느라 더 큰 것들을 감당해 내는 아내의 아름다운 면을 간과하고 있었던 저를 이제야 발견하곤 합니다. 아내는 소중한 존재였고 지금도 소중합니다.
조금 어색하지만 한 주를 살아가면서 느낀 것들이 가득한 마음을 잘 표현하는 편지를 쓰는 목요일로 지내보려고 합니다. 갑작스럽게 목요일로 옮겨서 편지를 쓰는 것에 대해 어색하시지만 또 기특하게 읽어주실 분들에게 미리 감사를 전하면서 용기내고 힘을 내서 적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늘 감사하고 황송한 마음으로 편지 쓰고 있는 것을 아시지요? 늘 감사드립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Alan Bow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