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랑하는 딸에게. +44

후폭풍

사랑하는 둘째에게


너와의 대화는 점점 더 속상하게 하고 아빠의 참을성을 포기하고 화를 내게 한다는 생각에서 조심스럽게 대화하고 있기는 해. 이제는 더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최선을 다하다가도 화가 난다면서 아빠 앞에서 삐죽거리면서 화를 내고 그럴 때면 아빠가 너무너무 속상하단다.


또, 아빠의 부족한 면을 드러낼까 봐.


그런 날만 있는 것은 아니라서 너와의 시간을 늘 감사하면서 지내고 있단다. 그런데, 언젠가 네가 한 말에 아빠는 그냥 웃었지만 마음으로 울었단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어서 말이야.


너와 막내를 데리고 병원에 예방접종을 맞으러 가는 날이었단다. 기억나지? 좋으면서 황당한 날!

막내는 매월 주사 맞는 날이라서 당연한 것을 아빠랑 함께 한다는 생각에서 낮잠 자다가 묵묵히 따라나섰는데 너는 다른 친구들처럼 주사를 맞아야 할 것 같다고 했지만 당장 오늘 맞아야 한다는 것도 싫었고, 아빠랑 가는 것도 싫었고, 그냥 싫은 것을 꼭 오늘 해야 한다는 것이 "싫어! 싫단 말이야!"라는 느낌으로 한없이 속상한 마음에 억지로 끌려간 날이었지.



병원을 갔더니 막내 예방접종이 한 달 전에 예약이 되어있음에도 1시간을 기다려야 할 만큼 아픈 아이들이 많아서 한참을 기다리고 기다렸지. 그러다가 맞을 주사를 점검하면서 막내는 주사 한 방, 너는 맞을 주사와 이미 맞았어야 할 것을 못 맞은 것까지 두 방을 맞아야 할 상황이 되었지. 너의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일그러지고 가려진 머리카락사이에서 숨겨지지 못할 만큼의 증오가 올라오고 있었어.



네가 더 이상 화가 나지 않도록 너를 달래주기로 했고 기다리다 치친 막내는 아빠 팔에 기대어 자기 시작했지.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면서 쉬라고도했고 아빠 등에 기대어 자라고도 했지. 어떻게 해서든지 너의 마음이 잔잔한 상태로 주사 두 방을 맞고 집에 갈 수 있도록!! 아빠가 혹여나 화내거나 혼내지 않도록!! 조마조마하면서 너와 함께 있었지.


그러다가 순서가 되어 잠자고 있던 막내를 깨워서 얼른 의사 선생님 방으로 들어갔었지.

자다 깬 막내는 자기는 왼손잡이라서 주사를 오른쪽에 맞아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왼쪽팔을 걷어서 주사 맞고 잠이 덜 깬 채로 옆에 앉았고 너는 이제 주사 두 방을 맞기 위해서 두 팔을 걷으면서 앉았지. 혹여나 네가 옷을 반쯤 걸친 것이 창피할까 봐 아빠는 잠시 뒤돌아 서 있기도 하면서 말이야.


주사를 무사히 다 맞고 두 팔 모두 아픈 네가 아무렇지 않게 의사 선생님 방을 나오는 것이 기특해서 아빠는 생각했었단다. '너네가 하고 싶다는 것들을 해주는 시간이 되자!' 사실 딸 둘과의 오랜만의 데이트라고 생각해서 차로 병원을 가는 것이 아니라, 걸어서 가는 것을 택한 이유이기도 했단다. 차가 없으면 병원을 나선다음에 걸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너희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으니까.


일단 아무 말없이 배스킨라빈스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원하든대로 2개씩 골라서 먹도록 해줬더니 이게 웬일이라면서 당황하지만 즐기면서 5분 만에 먹어버리더라. 너네가 즐기면서 놀고먹으면 오래 걸릴까 봐서 커피 한잔 시켰는데 마실 시간도 안 되더라. 어쩔 수 없이 일회용 컵에 담아서 나왔지. 또, 걷다가 인생 네 컷 사진관을 들어가게 해 줬더니 너는 친구들이랑 많이 찍기 때문에 별로라고 하길래 막내는 할 기회가 없어서 같이 해주라고 하면서 사진 찍고 즐기도록 제안했지. 사진을 찍고 나서 제일 기분 좋은 것은 역시 너더라. 그렇게 하고 나오면서 "또 동네 길거리 간식을 먹을까? 또 다른 걸 해볼까?"라고 말했더니 네가 한 대답에 아빠는 무릎이 부러질 만큼 땅에 주저앉을뻔했단다.


"이렇게 해주고 집에 가면 후폭풍 있는 건 아니죠?"

"뭐? 아니지! 그냥 같이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그럼 다행이고요. 내 친구는 아니더라고요."

"무슨 말인데?"

"내 친구는 잘해주고 집에 갔더니 휴대폰 많이 쓴다고 뺐고, 혼나고 난리였대요."

"........................................................................."

"........................................................................."


아빠는 네가 해준 말을 듣고 너무 속상하고 속상했단다. 너와 오랜만에 시간을 가지기에 잠깐이라도 이 틈을 타서 특별한 시간을 만들고 싶어서 한꺼번에 이것저것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억했다가 했는데 네가 갑자기 확인하면서 한 말은 정말 충격이었단다. 다른 친구들의 삶이 너에게 영향을 많이 주는 것은 알겠는데 아빠가 노력하느라 애쓰는 진심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고 아팠단다.


어쩌면 그동안 여차하면 혼냈던 아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바이올린을 하면서 손톱을 기르고 싶다고 길게 기른 채로 연주연습을 한다고 혼냈고, 네가 원하는 대로 좋은 휴대폰을 사주고는 한없이 휴대폰 붙잡고 있다고 엄마와 케어를 하기 시작했고, 엄마가 빨래해서 침대맡에 잘 정리해서 놓아줬는데 그 위에 누워서 놀고 서랍에 넣지 않는 것에 대해서 엄마를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고 혼냈고 말이야. 엄마가 아침을 조금이라도 먹도록 간식을 준비했는데 안 먹고 나가는 등 엄마 속을 썩이는 초등 6학년이라면서 늘 혼내고 잔소리했던 아빠를 반성했단다.


친구집의 예를 들어서 아빠의 진심을 점검했지만 여차하면 또 벌어질 일이라는 생각에서 아빠를 점검한 것에 대해서 아빠가 반성하기로 했단다. 아빠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것이 지모. 친구들 집은 그렇지만 '아빠도 그럴 수 있어! 오늘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지. 이상한데?'라고 생각하면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모.

아빠가 더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밖에 없더라.


누군가 그러더라.

나이가 들수록,

아이가 커갈수록,

입은 닫고 지갑만 여는 것이 지혜다.


아빠는 지갑에 돈은 없고 입은 수시로 열려 있어서 여전히

잔소리만 해대는구나.


줄이고 줄일게.

잘해주면 아빠가 오늘 나를 사랑해 주는구나.

라고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날까지

아빠가 잘할게.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랑해.

나의 사랑하는 딸.


오늘도 너는 제일 이쁘고

제일 아름다운 마음씨 딸이야.

고맙다.




초등 6 딸은 이미 중학생입니다.

6학년이 되자마자 '곧 중학생'이라면서 중학생인 오빠의 취향과 오빠또래의 언니들의 감성에 맞춰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각과 행동 그리고 옷차림도 벌써 중학생 언니와 다를 바 없이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쪼그만 게 어디서 그런 말을, 어디서 그런 행동을 하냐?"라는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나이입니다. 딸의 존재와 생각을 존중해 주면서 지내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딸 덕분에 어른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아빠가 되어가고 있기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아이를 달라지게 합니다.

아무 조건 없는 사랑을 받고 자란 제가 아무 조건 없는 사랑을 아이에게 베푸는 것을 이제 연습하고 있는 셈입니다. 아이가 옆에 있는 자체가 사랑스럽고 아이와 손 잡고 걷는 게 고맙고요. 아이와 어쩌다가 둘이서 밥 먹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요. 아이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어서 칭얼거리는 것을 아직 받아주고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요. 물론 거의 못해주는 부모라서 늘 미안하긴 합니다. 아이에게 조건부적인 사랑으로 "이번에 90점을 맞으면, 네가 말 잘 들으면, 네가 속 썩이지 않으면" 제안하고 달성하면 뭔가를 해주는 것보다, 아이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 가지고 싶었던 것, 먹고 싶었던 것을 기억했다가 진짜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아무 말없이 해줄 때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그냥 베풀어주는 아빠가 조건 없이 사랑해 준다는 것을 알고 알면서도 받아줍니다. 그러면서 손을 잡아줍니다. 그 순간이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아들과 살아가는 시간과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아들, 딸과 살고 있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들과 지내면서는 "마! 이게 추위라도 견딜 수 있다!" "해보자! 이 정도는!!"이라고 말하고 지나가는 가로수, 햇살, 자동차 색깔, 음료수잔 속 음료수의 영롱한 빛깔들을 논하면서 즐거운 이 세상을 말하고 지내고 있다면 딸과는 다릅니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즐거움, 감사, 외로움, 힘겨움, 슬픔, 속상함, 억울함, 불편함, 불안함, 욕구, 서운함등등 수만 가지 감정에 대한 느낌과 그 느낌을 즐기는 방법 또는 극복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섬세하게 대화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여자가 되어가는 딸들의 감성에 맞는 대화를 아무리 맞추려고 해도 맞춰주지 못하지만 듣는 귀라도 열어서 들어줌으로써 "아빠랑 이런 대화를 하다니.."라는 대답만으로도 성공적입니다.


그렇게 아들과 딸 둘과 살아가면서 외눈박이 안경이 아니라 양안 안경을 낀 것처럼 세상을 두 가지 시선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 대한 이해,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한결 부드럽고 편안해지고 있습니다.

"왜 저럴까?"가 아니라 "저렇게 생각하고 저럴 수 있군!"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둘 둘 집안의 장남인 제가 딸 둘과 살아가는 시간은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그런 마음에서 오늘도 둘째 딸에게 감사와 고마움을 담아서 편지를 썼습니다. 이런 감사와 행복을 나눌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늘 읽어주셔서 저도 진심을 꺼내서 편지를 쓰고 나누는 일을 이어가게 됩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CDC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