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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막내에게.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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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막내딸에게


시간이 흐르면서 두 딸이 있는데 어느 딸이 이쁘고 잘한다를 따질 수 없고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두 딸은 각자가 각각의 아름다움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이쁘더라. 통통하다거나 말랐다고 아름다움이 더 커지는 것이 아니고 말이야.



아빠가 너에게 편지를 쓰면서 너를 더 신경 쓰고 싶고 너만의 아름다움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면서 너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더 깊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아빠는 요즘 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시간도 만든단다.


왜일까?

이런 이쁜 딸을 왜? 말 안 듣고 멋대로 한다고 혼내고 혼냈을까? 아가가 무엇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가가 어떻게 언니같이 말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기준으로 멋대로 행동한다고 막내를 혼냈던 것을 후회하면서 지낸단다. 그렇게 지내면서 요즘 아빠 스스로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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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공감을 잘 못하는 남 자였었단다. 그런데, 엄마를 만나고 너희와 살면서 '공감'이라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했단다. 공감이 무엇일까?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지. 네가 아플 때, 속상할 때, 미안할 때 등등의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고 속상해하면서 위로해 줄 줄 아는 것이지.


막내가 어릴 때는 그런 마음이 아빠 마음속에 거의 없어서 너를 이해해 줄 수 없었는데 요즘 '깨알'처럼 조금 생긴 것 같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단다. 그 마음이 정확히 생긴 것을 알게 해 준 것이 요 며칠 사건이란다. 아빠가 너의 말을 들어줄 분위기인 게 확실할 때 아빠 옆에 다가와서 너의 일상을 말해주는 날이었지.


"아빠! 급식 먹고 학교에서 토했어요. 아이들 앞이었고 선생님이 치워주셨어요. 입안에 침이 고이길래 얼른 나가려고 했는데 늦었어요....."

"침 고였을 때 얼른 달려 나가야지!!"

"그럴라고 했는데 이미..."


이런 대화를 하면서 갑자기 마음이 찡해지고 아빠 마음이 울컥했단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말했을 거야. 너도 기억하지?


"그럼 얼른 달려 나갔어야지! 뭘 먹었길래. 얼마나 급히 먹었길래! 이그!!!"

"...................................................."


기억나지? 아빠는 늘 그런 사람이었지. 상황이 생겼을 때 너희들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그 상황에 대한 너희들의 행동을 먼저 지적하고 그 결과에 따라 또 혼내는 것만 우선으로 하던 아빠였지.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더라고. 그 상황이 발생하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주춤했을 너의 상황, 그 상황을 겪고서 반 친구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는 것을 느꼈을 때의 너의 마음, 선생님이 치워줄 테니 보건실 다녀오라는 말 듣고 나갈 때 너의 마음, 보건실에서 선생님께 점검받고 있을 때 너의 마음, 다시 반으로 돌아오는 길에 느꼈던 불안감, 불편감, 창피함, 교실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갈 때 모든 아이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을 때 너의 마음...


그런 마음들이 속속들이 느껴지면서 아빠 마음이 울컥하고 눈물이 쑤욱 밀려오더라. 엄마는 "막내 좀 안아줘요."라고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 퇴근하고 와서 앉아 있다가 너의 말을 듣고 있는데 피곤해서 너를 안아주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런 너의 마음이 느껴져서 너무 속상하고 아프고 힘들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단다. 초등 4학년인 네가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너를 안아주면 아빠가 왈칵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단다.


그 순간, 아빠는 반성했단다.

'아고, 늘 막내가 아빠 표정 보고 들어줄 것 같으면 옆에 와서 칭얼거리면서 말할 때 뭐든지 잘 들어주고 공감해 줄걸, 네가 12년을 살면서 이제야 그렇게 말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고 위로해 줄 수 있을 만큼의 공감을 해주는 아빠가 되었다니. 참 오래 걸렸다. 참 미안하다. 참 못난 아빠였네. '라고 반성 반성했단다.


모두 자도록 하고선 침대에 누웠는데 생각나더라. 네가 가끔 토했던 것들을.

잘 생각해 보면 어색한 곳에서 억지로 뭔가를 먹어야 했을 때, 급하게 먹어야만 했을 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뭔가를 억지로 했을 때 먹었던 것을 토했더라. 학교에서도 뭔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있었을 것이야. 요즘 아이들이 말과 행동으로 괴롭히고 심한 장난을 쳐서 매일 운다는 너의 말을 들었던 것도 생각나더라.


집에서 많이 위로해 주고 더 사랑해 줄게.

아빠가 더 많이 너의 말을 들어주고 안아줄게.


너를 사랑해

너는 우리 집에 막내이고

가장 작은 자이지만

가장 빛나는 별이야.


너는 우리 집에 마지막으로 온 아가이지만,

너는 우리 집에 최고의 보석이란다.

너를 사랑해.

아빠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중2 아들과 잘 지내느라 서로 평행선을 타고 있고요. 초6 딸 사춘기 딸과 여차하면 스파크 일으키는 일상을 지내면서 막내딸을 챙길 여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막내딸의 얼굴, 가늘고 여린 손, 초4이지만 초2 수준의 발육상태의 빼빼 마른 몸들이 생각나면서 아빠가 많이 사랑해 주고 공감해줘야 한다는 것이 머리에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생각에 따라서 막내를 바라보니까 점점 더 막내딸이 원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다 알아요. 그냥 모른척하는 거예요."라는 말을 듣고 엉엉 울었던 날이 생각나면서 점점 더 막내딸을 챙기고 있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막내딸은 자석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자석놀이가 생각납니다. 그냥 책상 위에 놔두면 N극은 S극에 붙지 않습니다. 슬쩍 가져가면 갑자기 '찰싹'달라붙습니다. 조그만 자석을 가져가면 한참 후에 붙습니다. 큰 자석을 가져가면 순식간에 '찰싹'달라붙습니다. 막내딸이 그렇습니다. 그냥 두면 학교 다녀와서 친구 만나러 바로 나가고 저녁에 와서 밥 먹고 언니랑 방에 있다가 잠을 잡니다. 아빠가 "오늘 하루 잘 놀았어?"라고 말하면 "응.. 오늘은요..."라면서 말하고요. 말하다 보면 좋았던 것과 속상했던 것 그리고 원하는 것도 술술술 말하기 시작합니다. 제가 자주 사랑이라는 큰 자석으로 막내딸을 자주 끌어당겨야 함을 절실히 알아가고 있습니다. 뒤늦게 말입니다. 다행입니다.



아이들은 음식만을 먹고살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음식을 먹고살긴 합니다만, 그냥 음식을 먹으면 속 빈 뻥튀기처럼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는 어른들과 같은 문화를 함께 즐기면서 아무것이나 보이는 것을 다 담다가 나중에 혼란스러워하기도 하고요. 그런 아이들에게 부모, 특히 아빠가 해줄 것은 아이들 빈 마음에 사랑을 잔뜩 담아줘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아무리 더러운 옷일지라도 세제 한 덩어리를 넣고 돌리면 새 옷처럼 깨끗하게 되어 나오듯이 아무것이나 정제 없이 마음에 담아도 사랑을 잔뜩 넣어놓아 주면 잘 고르고 골라서 늘 마음을 잘 다스려서 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이들은 음식만을 먹기보다는 반찬처럼 사랑도 잔뜩 먹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것이 아빠가 할 일 같습니다. 아내와 대화하다가 결혼초부터 입양을 꿈꾸던 우리 두 사람의 비전을 오랜만에 또 나누다가 "당신의 그런 마음과 행동으로는 입양은 안 돼요!!!"라고 또 꼬집길래 한마디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브런치에 공개적으로 반성문 쓰고 고치고 있잖아요. 입양을 할만한 아빠가 되도록요!"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막내를 통해 공감의 마음이 생겨나고 있음을 확인했기에 더 노력해보려고 합니다.



삼 남매를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삼 남매 덕분에 아빠가 성숙한 어른, 아이들을 품을 줄 아는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전까지는 어른이 아니었음도 고백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은 이 글들을 매주 읽어주시는 분들 덕분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감사하면서 발행합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Anita Jankov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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