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남
무심히 쓰던 한국어 단어들을 찾아보면서 지내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시작했었습니다. 더불어서 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도 발견하고 그러면서 감정에 관계된 단어들에 대해서도 짚어보게 되었습니다.
감정에 관계된 단어들을 찾아봤더니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으로 나뉘고 무려 163가지나 되었습니다. 그런 감정과 관계된 단어들의 뜻을 알아보고 그 단어들에 해당하는 일상 속 제 감정을 적으면서 제대로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 타인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의 괴리감도 느낄 수 있고요. 제 자신에 대해서도 더 깊이 알아보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대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남자, 남편, 아빠로 가정 안에서 세워지는 날을 기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감정은 부정적인 감정중에서 스트레스와 불안을 유발하는 분노 중에서 단어를 정했습니다.
화남
한문으로는
火 (불 화): 불, 노여움을 뜻하는 한자입니다.
영어로는
일반적 화 to be angry /ˈæŋɡri/ I am angry at him. (나는 그에게 화가 났어.)
약간 짜증 to be upset /ˌʌpˈsɛt/ She seems a little upset today. (그녀는 오늘 좀 속상해/화난 것 같아.)
화가 남 to get mad /ɡɛt mæd/ Don't get mad at me! (나한테 화내지 마!)
짜증/화남 to be annoyed /əˈnɔɪd/ I was annoyed by the noise. (나는 그 소음 때문에 짜증/화가 났어.) 격노/분노 to be furious /ˈfjʊriəs/ He was furious when he found out. (그는 그것을 알았을 때 격노했다.)
태국어로는
분노 โกรธ gròot (끄롯) 화나다, 분노하다
단어의 뜻을 살펴보니 화남이라는 것은 특이하고 신기합니다. 한문이나 태국어를 읽는 자체만으로도 '화가 나 있는' 느낌이 충분히 느껴집니다. 전 세계가 감정에 대해서는 그 뜻을 내포하면서도 감정까지 전달하려고 애쓴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 단어들을 발음하면서 느낀 것들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성장하면서 느꼈던 화난 느낌과 결혼하고 지내면서 느꼈던 화난 상황에 대해 적으면서 저의 감정이 어땠는지와 그 감정 표현을 잘했었는지도 돌아보려고 합니다.
먼저 학창 시절의 저입니다.
저는 가장 싫어하고 화를 내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이유 없이 여학생들을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화를 냈고요. 대학교 때 교양과목시험을 치러 강의실에 들어가서도 종종 화를 내곤 했습니다. 시험 전날 술을 잔뜩 먹고 놀다가 시험장에 들어와서 후배들이 준비해 준 커닝페이퍼를 들고 열심히 문제의 답을 적으면서 의기양양하게 시험지를 조기제출한 동기들에게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옳지 못한 것을 당당히 하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런 모습을 후배가 배우면 사회에 나가서 온통 그렇게 요령만 부리는 사람으로 살 것 아니냐면서 버럭 화를 내기도 했고요.
결혼해서는
아내를 보면서 종종 화를 냈습니다. 아내가 제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거나 제 의도와 집안일을 처리해 둔 것을 퇴근하고 보다가 버럭버럭 화를 냈었습니다. 또, 아내가 실수한 아이들을 다음에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따끔하게 혼내지 않는 것을 보다가 아내의 마음을 생각해주지 않고 버럭 화를 내곤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종종 벌어지는 게 저희 집 일상사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내에게 화를 내면서 지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내가 늘 화를 내야만 집안일들이 일사불란하게 처리된다는 착각도 하고요.
모든 게 착각이었습니다. 화를 내야 일이 신속정확하게 처리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꾸 화를 내니까 화내는 말과 행동을 보고 듣고 느끼고 싶지 않아서 얼른 말한 대로 처리해 주고 평안을 얻고 싶은 아내의 불편한 일상생활이었습니다. 거기다가 그런 상황도 참아주다 보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놓지 않고 기도하면서 기다려주는 아내가 있었기에 그 생활들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간들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이제는 화내는 것이 선을 넘어서 착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늘 점검하고 화를 내야만 일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넘어서서 하나하나 짚어줘야만 된다는 일상생활 자체가 너무 피곤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에 대해서 가끔 화를 내는 것을 넘어서 자꾸 불만을 끄집어내는 지경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화를 내기까지 불만과 불안과 스트레스와 다양한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서 순간적으로 감정이 치우쳐지는 것이 이유가 되곤 했던 것입니다. 늘 뾰족한 감정으로 매시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점점 피곤해지면서 저로 인해서 피곤함을 떠나서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를 느끼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면서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고요.
화를 내는 사람은 피곤하지 않은데 화를 내는 사람의 상대방은 그 피로감이 상당하고 그 후유증이 크다는 것을 알아갈 즈음에 부부상담을 받게 되어서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상담의 결과 중 하나는 이것이었습니다.
"당신이 바뀌면 됩니다."
제 자신이 바뀌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나 아이들이 바뀌어야 화를 낼 일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제 생각의 기준대로 바꾸려고 자꾸 흔드는 것을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비행기 조종사가 수동 운전하느라 많은 버튼과 스위치를 누르면서 조종하는 것처럼 가정의 다른 구성원을 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조종사는 책같이 두꺼운 매뉴얼을 수시로 100% 암기하고 눈을 감고도 할 만큼 몸에 숙련되도록 노력해서 조종하고 있지만 아무런 매뉴얼도 가지도 있지 않고 배우지도 않은 저는 제 마음대로 아내와 아이들을 흔들고 제멋대로 화를 내고 살았던 것이었습니다.
화를 내기 이전에 왜 화가 나며 화를 낸다고 해결될 문제인지 생각해 보자.
화를 내기 전에 3초만 카운트하고 화를 내자.
등등 수많은 조언멘트들을 읽으면서 제 자신을 다스리려고 노력해 봤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잘 보이지 않아서 안경도수를 바꿔서 안경을 새로 장만하는 것처럼 반대로 안경을 벗고 세상을 바라봤더니 보고 싶지 않거나 굳이 안 봐도 되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제 시선을 달리하면서 가정생활,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점점 제 말과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런 걸로
아내가 품고 지내는 말 중의 하나인데 어느 순간부터 제 마음에도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되뇌면서 살다 보니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무조건 화를 버럭버럭 내면서 아내의 행동을 지적하는 것보다는 아내가 했던 행동, 일처리들이 어떤 의미로 그렇게 했는지가 이해되었고요. 제 생각과 다르지만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었다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아내 의견을 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화'를 내는 순간들이 적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화남'이라는 감정은 어느 순간부터 적어지면서 스트레스와 불만, 불안으로 이어지는 부작용들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대신에 이해와 만족하는 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요. 그러니까 '감사'와 '감동'도 늘어가면서 가정생활, 사회생활들이 뾰족한 시간들보다는 둥글둥글한 시간들이 늘어나서 이전보다 훨씬 행복한 날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화가 난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화가 나는 것은 내 생각대로 나 외의 모든 것을 바라보고 생각하기 때문일 때가 많았습니다. 제 자신이 대단하고 완벽한 존재가 아니면서도 제가 경험한 것이 전부인양 제가 세운 기준대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고 평가하고 만족하지 못하면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의 중심축을 제 자신으로 두고 살다 보니 일어나는 부작용이었습니다. 사실 '저의 잣대로 세상 들여다보니'는 어느 날 안경 쓰고 길을 걷다가 더워서 안경을 벗고 잠시 걷다 보니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안경을 벗고 길을 걷다 보니 신호를 위반하는 버스, 제멋대로 운전하는 차, 위험하게 옆을 스치는 자전거, 귀가 터질 듯 소음을 내며 달리는 오토바이, 제 신호가 아닌데 마구잡이로 건너가는 아줌마 등등 모든 것들이 눈에 가시처럼 보여서 불만 섞인 한마디를 내뱉고 화를 내며 걷는 날들이 많았는데 안경을 벗고 나니까 상황들이 대수롭지 않게 보이고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고 화도 나지 않았습니다.(사실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발밑의 보도블록 외에는 거의 안 보일 정도로 눈이 나쁘기에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만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실수를 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화가 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을 알았던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말했던 '그럴 수도 있지요. 남편'이라는 말도 이해가 되고요.
화를 낸다는 것은 상대를 죽이는 것입니다.
좋은 말을 해주는 화분과 나쁜 말을 해주는 화분의 성장결과를 실험한 EBS 방송이 생각났습니다. 맨날 버럭버럭 화를 내는 남편과 사는 아내가 건강하게 지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화병으로 암을 얻어서 아프고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공을 던지는 투수의 글러브가 낡아가는 속도보다는 공을 받아주는 포수의 글러브가 낡아가는 속도가 훨씬 빠릅니다. 수시로 화를 내는 남편을 받아주고 사는 아내들이 건강하고 기분 좋게 매일을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볼멘소리로 "우리 남편과는 대화가 안돼요. 무슨 말만 하면 버럭 화를 내니까 대화를 하기 싫어요. 그런 남편과 사는 자체가 스트레스입니다."라는 말을 중년여성으로부터 수시로 듣습니다. 아름답고 보기만 하면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어쩌지 못하던 신혼 초를 지나 아이가 제 몫을 하는 나이로 커가도록 돕다 보니 나이를 먹어버린 중년 부부의 삶에서 흔히 듣는 말들이라서 조금은 가슴 먹먹했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살다가 노력하면서 고치고 있지만 여전히 그런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동년배 부부, 선배급 부부들의 얘기는 너무도 마음 아팠습니다. 화를 내는 사람보다 화내는 것을 받아주고 사는 사람이 언젠가는 아플 것이기 때문입니다.
화를 줄이고 화를 주고받는 삶을 지향해 봅니다.
화를 버럭버럭 내면서 상대방을 잡아 흔드는 생활습관을 고치고 있습니다. 제 생각만으로 만든 '잣대'와 '안경'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면서 불만가지는 습관도 버리고 있습니다. 연필을 깎아가듯이 없애가고 있습니다. 대얼마 전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빠듯한 경제적 형편과 카드내역이 모두 아내에게 공개되어 있기에 깜짝 선물을 주거나 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퇴근 후 막차가 가까워오는 시간에 집을 향해 가다가 지하철역에 아직 문을 열고 있는 꽃집을 발견했습니다. 하늘이 주신 기회로 알고 가을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시점에 가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꽃다발을 샀습니다. 아내가 카드사용내역을 알더라도 꼭 전하고 싶어서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는 동안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건네줬더니 받으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어줬습니다. 감사하고 고마워해줬습니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이해해 주고 고마워해주는 아내가 저보다 승자였습니다. 화를 내서 아내 마음에 화병을 만들어주는 것보다 화를 건넸더니 아내의 마음에 꽃밭이 생기고 아내 얼굴에 꽃같이 이쁜 미소가 채워지는 것을 보면서 이제야 '아내와 같이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1편을 읽어주시는 덕분에 2편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긍정적이지 않고 부정적인 감정이지만 이런 감정을 가지고 지냈던 일상생활의 실수를 되짚어보니까 매우 창피하지만 꺼내놓고 고치려고 용기를 내봅니다. 이번 시리즈를 통해서 저의 성장과정과 결혼생활 간의 내면의 감정을 솔직하게 꺼내놓고 고칠 생각입니다. 읽어주시는 자체만으로도 용기를 주시는 것이므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 unsplash의 Europe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