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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게요. 먹어요.. 아빠

현금

요즘에는 현금을 가지고 다닐 일이 거의 없습니다. 카드나 삼성페이를 통해서 결제하면서 구매합니다. 그 이면에는 저희 가정의 수입 대비 빚값기와 지출의 불균형에 따라 현금이 남아 있을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 일상을 지내면서 요즘 들어 종종 생기는 일이 있습니다. 



어느 날, 아이들과 길거리를 걸으며 이것저것 보다가 타코야끼 푸드트럭을 보게 되었습니다.  

타코야키라는 음식은 저희 부부에게도 사연 깊은 음식입니다. 신혼여행으로 도쿄도를 여행하면서 하루종일 지하철을 타고 걷고를 반복하다 보니 배고픈 정도는 상상초월입니다. 시장조사를 다닌 덕분에 그런 여정은 어렵지 않았는데 아내는 엄청 힘들어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녁때 도착한 도쿄타워에서 푸드트럭을 만납니다. 제일교포가 하는 타코야끼트럭이었는데 날도 쌀쌀하고 허기진 상태라서 막 구운 타코야끼는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그런 사연도 깃든 타코야끼를 언제부터인지 아이들이 엄청 즐겨 먹습니다. 보기만 하면 먹고 싶어 하고요. 그 안에 있는 큼직한 문어조각을 씹을 때면 표정이 하늘을 날아갈 듯이 눈이 감기면서 흥분합니다. 그런 타코야끼가 쇼핑몰에서는 카드결제가 되는데 길거리 푸드트럭에서는 거의 현금을 요구해서 늘 난감합니다. 



그런 상황을 모르는 아들, 딸들이 계속 먹고 싶다고 조릅니다.  


"저거 먹고 싶어요." " 먹고 싶어요...." 

"오늘 현금 안 가지고 왔어. 엄마가 현금이 많고 아빠는 지금 없어."

"현금이체도 된대요." "응. 알아" --이체도 가능한 것을 알지만 이체할 현금이 통장에 없었습니다.  


"제가 살게요. 먹어요."



"길거리 돌아다니면 혹시 이런 상황 생길까 봐 (여차하면 신기한 푸드트럭 음식 먹을까 봐) 현금 챙겨 왔어요. 먹어요." 둘째 딸이 말하면서 자기 손바닥보다 작은 키티지갑을 들어 보입니다. 

"아... 그래? 준비가 철저하네....... 그래. 먹어라.. 그럼." 


아이는 금세 표정이 밝아지더니 쪼그만 키티지갑에서 꼬깃 접힌 현금 만원을 꺼냅니다. 그러라고 허락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요. 사실 현금을 만져본 일이 가물가물합니다. 결혼 전 총각들의 유행을 따라 차키홀더, 지갑, 머니클립을 세트로 사서 들고 다녔었습니다. 결혼 후 불필요해서 아이들 소꿉놀이에 사용하라고 물려줬습니다. 그 지갑은  한때 터닝메가드카드지갑으로 유용하게 사용되었었고요. 



아이는 의기양양하게 타코야끼 한 팩을 주문하고 현금 만원을 내밉니다. 나머지 두 아이들은 이내 침을 흘리면서 한 팩을 받을 시간을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둘째 딸은 주기적으로 받은 용돈과 어른들께 특별한 날 받은 현금들을 잘 챙겨놨다가 이럴 때 유용하게 사용합니다. 본인이 매우 흐뭇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야무지게 돈을 모아서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위해 지출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합니다. 준비성이 있다면서 칭찬해주기도 하고요. 이런 상황을 자주 마주치게 되면서 현금이 수중에도 없고 통장에도 없는 저의 모습을 자책하며 혼자 멍하니 서 있던 찰나, 


"아빠도 한 개 먹어봐요. 생각보다 개수가 많아요."

"난 안 먹을래."

"맛이라도 봐요. 아빠~~~"

"아이고, 알겠다. 한 개만 먹어볼게!" 



못 사주고 자기들 돈으로 사 먹게 했기에 멍하니 서 있는 아빠를 신경 쓰는 아이의 손길에 민망했습니다. 그런 마음씨를 베푸는 아이의 마음 씀씀이가 기특하기도 하고요. 이런 날이 점점 많아지니까 아이들은 언제부터인가 아빠랑 산책을 가거나 어딘가 새로운 곳을 가면 혹시 모를 푸드트럭, 인생 네 컷, 솜사탕, 현금 내고 노는 놀이들을 대비해서 꼭 돈지갑을 챙긴다고 합니다. 저는 휴대폰만 챙깁니다. 더 챙길 것이 없기도 합니다.

 


타코야키를 다 먹고 나서 아이들은 기분 좋게 흥얼거리면서 " 또 뭐 없나? 신기한 거? 맛있는 거?"라면서 앞서가기 시작합니다. 먹고 싶은 것을 먹은 두 아이, 먹고 싶은 것을 준비해 온 돈으로 샀기에 자랑스러운 아이, 세 명이서 서로 장난치면서 또 재미있는 게 없는지 두리번거립니다. 이제는 점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수는 있지만 뭔가를 호기롭게 사주거나 해줄 수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걱정도 앞섭니다. 



일은 하는데 현금은 없다. 현금은 없는데 쓸 돈은 많아진다. 요즘 들어 더 깊어진 고민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제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일반회사 과장으로서 여력도 없으면서 아이 셋을 낳아서 고생한다고요. 거의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서 아이 한 명을 낳은 가족들은 한 명에게 올인하며 투자를 합니다.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학원들을 보내고 좋은 학교를 찾아서 다니게 하고요. 때가 되면 멋진 곳을 여행하고 사진을 올립니다. 저희는 그런 여력이 없습니다. 벌어오는 돈도 적지만 뭐든지 세 등분으로 나눠서 해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뭐든지 세 아이가 함께 어울리며 부족하면 조금씩 배려하며 나누고 조금 넉넉하면 기분 좋게 나누는 모습이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 셋을 낳은 것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습니다. 점점 돈 버는 능력이 사라지는 저의 모습을 탓하는 횟수는 늘어가긴 합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실물경제에 사용할 현금을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온라인 신용거래를 통해 생활하고 있고요. 이런 시간들을 겪으면서 근로소득, 불로소득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고민 속에서 아이들을 보며 놀라는 것은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하고 행동방법을 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로서 "이래라저래라"할 일이 없어지는 게 많긴 합니다만,  수시로 습관처럼 아직도  "하지 마라."라면서 말하는 제 모습을 보면 아직은 멀었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수중에 현금이 없어서 아이들 앞에서 당황하거나 민망한 일들이 많이 생기지만 반대로 아이들이 어느새 커서 자기 용돈으로 사 먹고 웃는 날이 왔다는 것도 신기합니다. 꼬맹이때는 현금을 손에 쥐어주고 "저기 아저씨한테 가서 돈 드리면서 주세요 해봐"라고 시키는 걸 했었는데 어느샌가 "자기 돈으로 사서 먹고 아빠도 맛 좀 보세요? 네?"로 바뀌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이 성장하는 속도는 배로 빨라지고 있습니다.

 


늘 고민하는 것이지만 아이들의 성장속도에 발맞추지 못하는 부모의 속도에 흠칫 놀라는 일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운전을 처음 배우고 아버지 차를 제가 운전해서 아버지를 모신다고 했더니 "네가 무슨 운전을 하니, 내가 운전할게."라고 했다가 "나보다 더 안정감 있게 운전하는구먼. 어느새"라고 말하신 것이 생각납니다. 



먹고 싶은 타코야끼를 미리 챙겨 온 현금으로 사 먹고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면서 여려가지 생각이 드는 날이었습니다. 아이들 크는 속도가 너무 빨라집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능력자가 되어갈수록 "아! 그때 아빠가 능력이 없어서 그랬구나..."라며 무시하는 날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마음으로 소원하기도 합니다. 벌써 슈퍼맨 아빠는 끝났고, 그저 지금은 곁에 있는 "하지 마 아빠"입니다. 해줄 것도 별로 없는데 하지 말라는 것만 많으니까요. 얼른 고쳐야겠습니다. 타코야끼!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미리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 Markus Wink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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