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자맹 : 프로방스에서 온 댄디보이> 展 리뷰
그림은 나를 둘러싼, 미치게 멀미나는 이 육아와 살림에 대해 거리를 두게 해줬다. 엄마로서의 정체성은 나의 '전부'가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일부'라는 사실도 일깨워줬다. '엄마됨', '엄마의 자격', '엄마의 책임', '엄마의 한계' 모성의 세계에 들어서면 지독하리만치 듣는 이야기들 속에 스스로를 파묻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해줬다.
_ 브런치북 『우리 사이 그림이 있어 다행이야』 中
미술관에서였다.
아이와 나 사이 적정 거리에 대해 끊임 없이 생각하게 하고 엄마 정체성을 벗고 오로지 나, '청하'로서 호흡하고 '청하'로서 존재하게 해준 곳. 미술 교양, 미술사 지식 하나 없어도 작품 앞에 꼿꼿이 서면 피로한 내 두 눈에, 돌 같은 내 마음에, 그림이 걸어 들어왔다.
적당히 개방되어 있으면서 또 부분적으로 폐쇄적인 공간감을 갖춘 미술관에서 천천히 한두 시간을 걷다 하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가면 기분이 딱 좋았다. 나도 괜찮은 엄마, 너도 사랑스러운 아이. 출산 직후 인생의 큰 재미ㅡ이를테면 독서모임 참여, 독서노트 쓰기, 자유 글쓰기 등ㅡ를 잃어버린 터에, '미술관이 내 육아 메이트, 오티움이 될 수 있겠다.' 생각하며 씨익 웃었던 기억이 난다. (미술관은 내 친구. ^^)
지난 가을 구축 아파트로의 이사를 마치고 반년간 아이 손 잡고 미술관 나들이 한 번 갈 여유 없이 이사 뒷정리와 살림 정돈을 했다. 진부한 살림과 육아, 쉼 없이 운영하며 달려온 시즌 글쓰기 모임, 아이 유치원 이동, 지칠대로 지쳐 전시회 티켓 예매도 버거울 무렵 '다비드 자맹'의 개인전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아, 자맹, 이사하기 전 그집의 아이방 벽에 마지막까지 붙어있던 그림이 자맹의 그림 아니었던가. 목이 쉬어라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저녁 시간이 훌쩍 흘러 깊은 밤이 될 때 아이 방의 자맹 그림을 보면서 수없이 되뇌었던 이야기.
하나, 온정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따뜻할 것
2년 전 예술의전당에서 다비드 자맹의 국내 최초 개인전이 열렸을 때, 아이를 어린이라운지(예술의전당 아이 돌봄 미술 공간)에 떼어내고 홀로 전시를 관람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오지 못한 걸 후회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에게 자맹의 그림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후회와 안타까움을 부를만큼, 평화롭고 온화했던 작품들. (물론 아이는 어린이라운지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며 작품활동에 매진했다는;;)
이제 일곱 살이 되어 어엿한 어린이가 된 딸 아이 손을 꼭 잡고 다비드 자맹의 두 번째 개인전(한국에서)을 보러 다녀왔다. 캄캄한 전시실에 들어설 때 내 뒤로 바짝 붙어 조심히 발걸음을 내디뎠던 아기가 아니라, 이제 보고 싶은 그림 앞으로 먼저 저만치 걸어가는 어린이와 함께.
2년 전 아이 없이 혼자 자맹의 그림을 봤을 땐,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스스로에게 따뜻한 존재가 되라'는 자맹의 메시지를 많이 느꼈다. 이후로도 줄곧 자맹이 떠오를 때면 겉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일과들 속에 파묻힌 나의 마음, 폐허가 된 공허한 내면을 돌아보곤 했다. (자맹의 그림을 보며 감사일기를 썼던 기억) 자맹은 이렇게 2년간, 내가 마음 돌봄을 성실히 하지 못할 때마다 내 안의 작은 인도자가 되어준 것이다.
두울, 자유
타인의 시선에 갇히지 말고
'댄디한 나' 되기
그런데 아이와 함께 감상했던 이번 전시회에서는, 분명 2년 전의 그림들과 화풍이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새로운 느낌을 경험했다. (한 작가의 책을 여러 번 보며 감동하는 것과 같이, 한 작가의 그림은 인생의 계절마다 달리 보이고 달리 받아들여진다)
자맹의 그림 속 '댄디보이들'이 하나 같이 '강렬한 색감의 얼굴'과 '꼭 감은 두 눈'을 하며 입을 모아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자유로우라고.
안 그래도 올해 들어 '초등입학 준비'라는 무거운 과업을 의식하던 차였다. 더불어, 아이가 크며 조금씩 내 손 가는 일이 적어지자 몇 년간 사이드프로젝트로만 이끌던 일들을 브랜딩과 비즈니스 관점에서 고민할 일이 많아져 부담감이 컸다.
엄마로서, 또 스스로에게 듬직하고 싶은 나로서, 선택한 길들을 걸으며 '이게 맞는 길일까', '누군가 실패했던 길 아니었을까', '요즘은 이게 필수라던데 내 아이는 아직 준비가 안된 것 같고..', '내가 이 일을 시작할 때 비웃거나 싫어할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시덥잖은, 이라고 말하기에는 거대한 골리앗 같은, 잡념들이 내 머릿속에 한가득이라는 걸.
자맹의 그림 속 얼굴들은 아는 것일까.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내게 아이가 다가와 자맹의 그림마다 있는 '별' 표시와 그의 서명 'jamin'을 가리켰다. 어린 시절 자신의 뮤즈였던,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한다는 의미로써 그림마다 '별'을 담았다는 자맹의 인터뷰 속에서도, 자맹은 자유로워 보였다.
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누구도 관심두지 않지만, 돌아가신 어머니를 작은 표식으로 남겨 자유롭게 그녀를 기억하고 자신의 세계관을 표현했으니 말이다.
마흔 전후의 여자는 이래야 한다, 밀레니얼 엄마라면 이건 당연히 해야지, 인스타에 그 집 애는 그것도 하던데.. , 글쓰기 모임 리더라면 이 정도는 갖춰야 하지 않을까? 인스타와 블로그에도 얼른 글을 써야지! 하는 외부의 시선ㅡ어쩌면 내가 만들었을 Ruleㅡ에 갇혀 자유는커녕 스스로를 억압 중인 나와 다르게 자맹은 '따뜻한 자유' 속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것 같다.
세엣, 쉼
온정과 자유, 그 다음엔 안식
다비드 자맹展의 마지막 섹션은 [내 마음 속 안식처]였다.
앞선 전시실에서 '따뜻함'과 '자유'를 이야기하던 자맹은 이제 '가족', '안식', '쉼'이라는 주제로 관람객들을 이끈다.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댄디보이와 사랑스러운 여인, 그리고 원을 그리며 순수하게 웃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그린 그림이 있었다. 아마도 댄디보이가 되고 싶은 자맹 자신, 그리고 자신을 화가의 세계로 이끌어 준 아내 세브린, 성인이 된 자녀들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그린 어린이 그림인 듯하다.
[온기] 가득한 것들이 담긴 삶,
타인의 시선과 룰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움,
그 뒤엔 진정한 [쉼]과 안식이 깃든다는
이 이야기를 자맹은 하고 싶었던 걸까?
전시회를 나오며 내 가족의 안녕과 안식, 행복을 위해 무엇을 더할 게 아니라 잡념을 거두고 그 자리에 온기를 채우는 게 우선이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 다른 엄마, 가족, 사람 이야기로부터 자유로워져야겠다. 그것들을 덮어놓고 무시하는 게 아니라 가볍게 받아들이며 '응, 너는 그렇구나~ 나는 이래!' 라고 표현할 수 있는 당당함 말이다.
내가 누리고 싶어했던 자아존중감이니 엄마효능감이니, 선한 영향력이니 하는 것들도 모두 그 다음에 나올 이야기 아닐까?
엊그제 끝난 전시를 리뷰했습니다.ㅠㅜ
다음엔 리뷰 읽으시고
전시회도 관람하실 수 있도록
전시기간 체크할께요!!
전시 : 다비드 자맹, 프로방스에서 온 댄디보이
기간 : '23.2.4(토)~'23.4.27(목)
휴관 : 더현대 서울 휴점일
주최 : 한국경제신문, 비아캔버스
장소 : 더현대 서울 ALT.1
시간 : 10:30am~20:00pm (주말은 20:30pm)
내용 : 내면자화상 20여 점, 댄디 20여 점 등 오리지널 아크릴 원화 130여 점
전시실 소개 :
_ 첫 번째 여정 / 프로방스의 작업실
_ 두 번째 여정 / 자유로운 멋쟁이
_ 세 번째 여정 / 너와 나의 소우주
_ 네 번째 여정 / 경의를 바치며
_ 다섯 번째 여정 / 한국의 별
_ 여섯 번째 여정 / 내 마음속 안식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