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너조이 Jun 21. 2023

아, 사람아.

어른이의 사람 생각



이 사람아
이 사람아



오늘은 사람에 관해 생각이 많아졌던 날입니다. 지난 주의 아이 열감기, 그 이후 몰아친 숨막히는 일정들 뒤에 갑자기 텅 비어 버린 오늘의 시간들을 '사람에 대한 생각들'로 채웠다 이 말입니다.


사실, 올해 나로서는 조금 아니, 상당한 폭으로 온오프 활동을 해오며 보냈습니다. 내게 너무 중요한 취미생활이나 혼자 오롯이 노는 시간들을 여러 사람들에게 내어 주었어요. 그렇게 해도 될 만큼 소중한 사람들이었으니까. 내가 미술관에 갈 시간을 부러 내려놓고 한 사람을 향해 지하철을 타고 어느 역 근처의 어느 카페로 들어가는 건 참 의미있었습니다. 상반기의 플래너를 다시 살펴보니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아, 나의 어여쁜 사람들. 






그렇게 어여쁜 사람을 많이 만나 그 사람들의 호감을 산 만큼, 사람도 많이 잃었습니다.


대외 활동을 많이 한다는 건, 내게 그런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나와 기꺼이 멀어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앞으로, 밖으로, 밖으로 나가는 아주 용기있는 행동이었던 것 같아요. 좋아해 주는 사람도 많았지만 내게 정중하게 선을 긋는 이들도 꽤 많았습니다. 워낙 내향적인 사람이라 먼저 다가가는 일도 없이 멀리서 바라보았을 뿐인데 날 적극적으로 의심하거나 경계하는 이들의 감정을 나의 마음으로 끌고 들어와 많이 아파했습니다.


한참을 아파하고 정신이 들어서야 '날 싫어하는 감정'은 그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니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끼곤 했지요. 그렇게 이성이 돌아올 때 감정을 놓아주었습니다. 







무례한 사람, 다정한 사람
이성적이지만 배려하는 사람
마냥 차갑기만 한 사람
그렇게 네 사람..




오늘,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두 사람의 전화 그리고 또 다른 두 사람과의 카톡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은 올 상반기 내내 무례함과 막 되어먹음으로 내 잠도 앗아간 열 살 위의 여자였어요. 자기 때문에 힘들었을 거라며 사죄한다고, 미안하다고. 평소와 다른 정중한 목소리에 놀라서 사과를 받고 말고 할 것 없이, '네, 네, 네'만 하다 전화를 끊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그녀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려할 때ㅡ난 싸우거나, 해결하려 하지 않습니다. 벗어납니다. ㅡ 그녀는 깊은 자기성찰을 한듯 싶었어요. 밤 11시에 전화해 지시형 언어로 여러 말을 쏟아놓고 전화를 끊는다든지, 하루에도 수차례를 전화해 기분 나쁜 이야기를 쏟는다든지 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세 시간 뒤 나와 함께 공저 작업을 했던 분께 전화가 왔어요. 안부 물으려고 전화 했다고. 몇 주 전에 나도 이 분이 생각나서 전화를 하려다 빌어먹을, 분주함에 굴복하느라 전화를 못 드린 터였기에 반가웠어요. 나의 현재에 대해 늘 호기심 가득 물어보는 그 분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다른 두 사람과의 카톡.


두 분 다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차가운 분들이지만 한 사람은 지적인 따뜻함(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서 해석하길 바랍니다)으로 간단히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고, 다른 한 사람은 얼음장 같은 뉘앙스로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말라는 느낌의 톡을 보내 왔습니다 (내가 혹시 뭘 잘못했습니까)






참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나는 어떤 사람들을 이렇게 힘들어 하는 걸까, 왜 난 사람이 어려운 걸까, 아주 오래도록, 개켜야할 빨래더미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늘 진정 어린 마음으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나를 의심하고 재고 따져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원래 인간관계의 시작을 그렇게 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런 유형이 있대요. 그들 눈엔 내가 의심도 없이 함부로 사람들 손을 덥썩 잡는 멍청한 여자겠습니다. 그러나 나도 나름 내밀한 관계를 위한 전략적 친밀함이라는 게 있습니다.  


대화의 앞, 중간, 뒤를 칼로 스윽 베어내듯 구분하여 말하는 사람도 힘들다 말하겠습니다. 앞, 중간, 뒤가 정해진 대화를 왜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이 대화의 끝에 지금보다 더 멋진 의외의 연결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시작된 대화는 조금 엉뚱한 구석이 있을 수도 있고, 남들이 보기에 '쟤네 왜 저래' 하는 모습이 있을 수도 있는 겁니다. 이게 제가 지향하는 커뮤니티의 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싫어 내 커뮤니티를 떠난 이들도 많다고 자평합니다.






맞습니다. 이런 글들의 끝자락은 아주 진부한 내용으로 비슷하게들 결론을 내립니다.


세상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어디 있냐, 내 결에 맞는 사람, 아닌 사람이 있을 뿐이지, 예민하게 굴 것 없이 마이웨이가 답이다, 나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신경끄고 옆사람한테나 잘해라, 뭐 이런 것들 아니겠습니까.


요즈음 코칭을 공부하고 있어 우연히 들어가게 된 한 코치님의 블로그에 '제게 코칭을 받으면 좋을 분들만 코칭해 드립니다.'고 쓴 문구가 눈에 훤히 들어 왔습니다. 커뮤니티를 오래 운영해 온 내 입장에선 '나랑 같이 놀면 좋을 분들만 초대할께요.'와 같은 말 아닌가. 난 여태 이 말을 못해서 늘 어려워 하고, 엉뚱한 사람들이 내 모임에 왔을 때 얼마나 힘들어 했던지.


나는 이제 잡니다.

사실, 아까부터 많이 졸려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왜인지 이 생각들은 오늘로 마치고 내일 일들을 해내고 싶었습니다. 내일은 세 사람과 대화를 합니다. 놀랍게도, 사람에 대해 이렇게 절망스럽도록 실망한 직후인데도 내일의 대화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잠듭니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어떤 호흡을 나누다 서로에게 기둥이 되어줄지, 손수건이 되어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2023.06.21.수

심야 글쓰기를 안 한다 다짐하는데

글쓰려 앉는 시간이 꼭..



 



매거진의 이전글 햇빛 일기 : 빛 아래서 걷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