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기 Nov 22. 2020

나도 한 때는 천사 소리 듣는 선생님이었다

쓰고 나니 변명 같지만 선생도 사람인지라

그때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자 롤 모델이었다.

걸어 들어오는 것부터 무서웠단다. 간단한 오티를 진행했을 뿐인데도 계속 무서웠단다. 1년간 수업하면서도 무서웠다고 했다. 회화, 일반 영어, 일반 독일어 그리고 일반 고등학생들 영어를 과외할 때도 수업할 땐 바짝 긴장을 하게 된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한 학생의 50점짜리 영어 점수를 90점으로 만들었다. 영어가 합격의 관건인 순경 시험에서 아주 안전하게 1차 합격을 만들어 낸 것이다. 본인이 공부하지 않으면 단호하게 응하는 내 모습을 보고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나는 직업 선생이 되고 나서는부터 늘 학생들에게 무섭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다.     

 

그러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돈을 받지 않고 선생님 소리를 듣던 교생 시절이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기는커녕 더욱이 선명한 추억이다. 교생 실습실의 출입문이 닫힐 새가 없을 정도로 학생들이 찾아왔다. 잠시 자리를 비우면 자리에 온갖 선물이 가득했다. 실습을 마칠 때쯤엔 얼굴을 모르는 학생들이 내가 곧 떠나서 슬프다며 페이스북에 내 이름을 태그 했다. 짧은 인연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았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더 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상담을 시작했다. 일정이 어려운 학생들을 제외하고 학반 모든 학생들이 나와 상담을 했고, 나를 지켜보던 다른 교생 선생님들도 상담에 박차를 가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 어두운 밤과 교실의 빛 사이에서 교내 벤치는 상담 열기로 가득했다.      


자랑 맞다. 믿기 어려운 기적 같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처럼 그때 그 시절은 내 인생의 기적이자 자랑이었다. 당시에도 이런 추억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을 알았다.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학생들은 나에게 천사라고 불렀다. 앞으로도 그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사는 선생이 되고 싶었다. 들끓는 시간이 지나고 강단에 섰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나는 소리를 낼 수 없는 목을 만지며 이비인후과에 갔다. 그리고 나와 같은 이유로 약을 처방받던 고등학교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 저 매일 소리 질러서 목이 다 상했어요. 교생 때는 천사 소리 들었는데 이젠 애들이 제가 무섭다고 하네요.”      


교문, 교실, 복도, 교무실. 어디서든 환하게 웃던 사람은 오간데 없다. 천사는커녕 면전에 대고 악마라고 불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가끔 교생 때 만난 학생들이 안부를 묻는다. 주로 ‘선생님 보고 싶다. 잘 지내시냐. 어디 계시냐. 결혼은 하셨냐. 근처로 가면 연락드리겠다. 갑자기 생각났다. 밥 한 번 사달라.’와 같은 연락이다. 벌써 7년이나 지났다. 5월 한 달. 잠시 왔다간 교생 선생 한 명에게 7년이 지나도 안부를 묻는 걸 보니 그 당시에 너희도 행복하긴 했나 보다. 한 번은 한 학생과 밥을 먹다가 선생님은 여전히 학생들에게 천사처럼 대하시냐는 질문을 들었다.      


“아니. 애들이 선생님 지나가기만 해도 하던 말을 멈춰. 그나마 좀 친한 애들은 살짝 애교 부리면서 순위 매겨서 선생님이 젤 무섭다고 말해. 너희처럼 나한테 안기고 그런 건 상상도 못 하고, 가까이 와서 검사받을 때 손 떨린다고 말한다더라.”  

   

“에이~ 선생님 거짓말하지 마요. 선생님이 뭐가 무서워요~ 말도 안 돼.”


못 믿는 소리를 하는 내가 웃겼는지 학생은 자꾸 거짓말을 하지 말라며 큭큭 웃었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 친구는 상상하지 못할 모습이라 설명을 멈췄다.      


오지랖이 없으면 선생 노릇이 어렵다

나도 한 때는 천사 소리 듣는 선생님이었다. 멋진 사람이 되어 프러포즈하겠다던 남학생도 있었고 본인 장래 희망이 국어 교사인데 나중에 선생님이 되면 나와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고백한 여학생도 있었다. 한 때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자 롤 모델이었다. 그리고 이런 호의를 받는 내 마음에 감사를 느낄 여유가 있었다. 그 지점이 가장 행복했다.     

 

출처 : 네이트 판 / 지인이 카톡으로 보내주신 사진.. 너무 공감돼서 같이 올림 ㅜㅜ


교생 실습 실에서 교장선생님의 오티를 듣던 날, 딱 두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그중 하나가 선생 X 은 개도 근처에 안 온다는 것이다. 새카맣게 타들어간 썩은 속에서 만들어졌으니 고약하기 그지없다며 본인 속이 완전히 까매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새파란 희망과 기대를 갖고 실습에 온 교생들에게 시커먼 현실을 전하던 그 마음이 자꾸 이해가 간다. 행복은 바라지 않고 그저 무탈하기를 바라는 하루가 잦아진다.      


왜 무섭게 대하는지 생각했을 때 성적과 예의 때문이다. 현장에 계신 모든 분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초기 기싸움에 실패하면 애들이 공부를 안 한다. 발달 단계상 성인들처럼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숙제를 하라고 알려주는 것도 본인에게 씨알이 먹히는 사람이 말해야 하게 된다. (물론 씨알이 먹혀도 안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부분에서 학생의 예의와도 연결된다. 아주 솔직히는 내가 여자 선생님이라는 부분에 풀리지 않는 긴장이 있다. 단지 여자 선생이라는 이유로 만만한 관계를 만들려는 학생들을 수도 없이 봤다. 체구로는 승부가 불가능하니 엄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건강한 관계가 유지된다. 이 관계를 성공해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적 관계와 성적이라는 결과물을 함께 만들 수 있다. 못하는 것을 혼내지는 않지만 학생들이 대충 하는 자세는 매우 날카롭게 지적한다. 본인 딴에는 많은 숙제를 한 척하여 글씨를 갈겨쓰며 대충 넘어가려고 했던 것들을 내가 예리하게 지적하니 무섭다는 반응이다. 웃기게도 너희 잘 되라고 무섭게 대한다. 쓰고 나니 변명 같지만 오지랖이 없으면 선생 노릇이 어렵다.      


학생들에게 전혀 바라는 것이 없다. 선생님들끼리는 학생들의 인기를 얻고자 온갖 질투와 영업이 이루어진다는데 어떻게 해야 이런 부분에 욕심이 없다는 것을 말할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정말 일절 바라는 게 없다. 기대를 내려놓은 게 아니라, 학생들을 안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인기에 관심이 없다.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다만 나도 사람인지라 내가 먼저 구애하지 않고도 나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예뻐 보일 수밖에 없다.  내가 아끼는 학생들은 함께 하는 시간보단 세월이 지나서 나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아서 안부를 묻기 민망하겠지만 그리운 마음을 참지 않고 용기 있게 내 이름을 부른다. 시간이 지나서 그때 정말 감사했다고 말해주는 학생들이 참 애틋하다.


싫은 게 아니라 무서운 거예요-라고 말해준 학생이 있었다. 고마웠고 한편으론 미안했다. 매번 무섭다는 소리만 들어서 마음 한편엔 미안함이 있다. 그러나 미안한 마음에 마음이 약해지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때 그 선생 완전히 나쁘지는 않았다는 그 정도만 바랄 뿐이다.


어떠한 계기로 내 생각이 나서 이내 온 마음이 그리움으로 끓게 되면 결국 너희는 내 이름을 부를 것이고, 나는 어제 본 것처럼 너희를 반길 것이다. 내가 더는 오지랖이 없는 사람이 된다면 그땐 선생님 소리를 안 듣고 살겠지. 선생 소리 듣고 살 때까지는 무섭게, 그리고 미안하게 살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어 발음에 자신이 있다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