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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May 19. 2019

영원하지 않음을 알게 된 나이의 연애

K의 명함을 받고 훑어내리던 시작을 생각하면 아득하다. 그토록 먼발치에 있던 그와 꽤 빠르게 함께 내딛는 사이가 되었다. K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불현듯 좋아함과 동시에 두려움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마주했다. 설렘, 두근거림, 따뜻함, 행복함, 기대감이란 봄날의 벚꽃 같은 행복에 어째서 두려움, 불안함, 당황스러움, 걱정이란 초가을 비오기 전날 불어오는 찬 바람과 같은 느낌을 동행하는 것일까.


내가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다는 K. 어제 데이트를 했으면서 다음날이면 다시 보고 싶다고 보채는 K. 벌써 세 쌍둥이를 기르는 먼 미래를 즐거운 듯 노래하는 K. 그런데 나는 그토록 행복하게 재잘대는 K의 이야기에 선뜻 편승할 수가 없었다. 편승은커녕 찬물을 부어주었다, 정신 차려 K. 분위기 깨는 게 취미인 나와 연애를 하는 그가 가련할 때가 있기도 했지만, 나의 자기 보호본능 그 비슷한 무언가로 반문하고 싶었다. 나도 미래를 함께 공유하는 상상으로 기쁨을 더 진하게 만들고 싶고, 그의 볼따구를 비비며 사랑한다고 호들갑을 떨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우리도 결국 끝까지 가 보아야 안다는 회의적인 마음이 훅 들어왔다. 내게 영원한 연애는 없었고, 이별의 무게를 미리부터 덜고 싶어 그리 뒷걸음을 쳤는지도 모르겠다.


K와도 여느 다른 연애처럼 결국 헤어졌다. 그렇다, 그토록 열심히 사랑하고 최고의 친구였어도 헤어지니 힘없는 추억만 남을 뿐 끝이었다. 두근거림에 몸버둥이 쳐지던 연애도, 끊임없이 영원한 사랑을 속삭이던 연애도, 한 손을 뒷 목 위에 다른 한 손은 어깨품에 올려두는 키스도 결국 헤어지면 끝이고 두 사람은 또다시 헤져갔다. 나는 또 그렇게 연애의 종지부를 짓고 다시 씩씩하게 일어서고 있었다. 헤어짐의 통증이 무뎌져 갈 때쯤에 당시 세 쌍둥이 상상을 하던 K에게 '봐 내가 뭐랬어'라며 핀잔을 주는 상상이 들어 미소가 지어졌다. 그와 동시에 한창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은 친구들을 돌아보며 한탄 섞인 한숨이 짧게 튀어나왔다. 영원하고도 완벽한 이성관계는 가정을 꾸려도 없다는 회의적인 마음이 지배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안했던 것이다.



그러다 다가온 주말의 정오, 완벽한 날씨에 평화로운 햇살. 2년 전 헤어진 W로부터 연락이 왔다. 기쁘지도 싫지도 않은 마음이었지만 왠지 호기심스러운 마음에 선뜻 집을 나서게 되었다. W는 그대로였다, 처음 만난 날의 모습 그대로. 여전히 멀끔한 셔츠 차림이었고, 동안인 그의 얼굴은 아직도 늙지 않았다. 늙어버린 내 피부가 무색할 정도로. 그를 만나자 스무몇의 내가 불 같이 그를 사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 그를 다시 만나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그의 모습은 내가 사랑했던 모습 그대로였는데, 나는 더 이상 그가 사랑스럽지 않았다. 불편했다.


그러다 문득 W의 재회로 잊었던 이별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그와 헤어지면서 가장 컸던 두려움은 다시는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어쩌나 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니 나는 그 없이도 잘 살았고, 잘 살고 있는 것이다. W와의 이별에 바둥대고 상처에 너덜거리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지만, 그 이후 K와 사랑에 빠지고 행복에 배부르다는 형용에 복받쳐 오르던 자신도 떠올라 이내 웃음이 났다. 그 간사함이 귀엽기 그지없다. 그러자 K와의 연애를 막 끝나고 불안했던 내게 희망이 슬쩍했다. 여전히 영원한 사랑은 믿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절망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적을 수도 혹은 많을 수도 있는 나이, 조금 모자란 혹은 조금 넘치는 나이. 이제 그런 나에게 있어 연애는 투명하고 돌진하는 첫사랑과는 분명 다르다. 장염에 걸렸을 때처럼 지끈 끈적하게 힘들었던 두세 번의 진지한 연애 그리고 새벽녘에 가벼운 몸살감기 기운에 내저리는 두세 번의 가벼운 연애 전력. 이에 깨달은 바는 목 멜만큼 사랑해도 헤어지면 끝이라는 것. 관계의 영원함에 매달리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는 것. 뭐, 그렇다고 그 부질없음을 완강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 또 있을 테니까. 이제 그러한 관계에 빠져들어도 터무니없는 마음은 아니겠다는 것이다. 온몸을 던져 풍덩 빠져드는 것이 스무몇의 연애였다면, 발목부터 무릎을 지나 허리로 천천히 담그는 연애가 지금이라 해보겠다. 온도의 차이라기 보단, 한 발치 더 조심스러운 모양이 조금 바뀌었달까.



5월. 어쨌거나 오늘의 나는 또다시 뜨거운 이야기가 전개될 초여름의 도입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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