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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우산 Jan 08. 2024

욕구의 요망함

20240108

요즘 숏폼 영상들이 대유행이다. 각종 댄스 챌린지부터 방송 프로그램의 결정적 짤들, 일반인들의 일상과 에피소드까지 그 유형도 다채롭다. 그리고 숏폼 영상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소재가 바로 음식. 각종 맛집 추천과 쉽고 간단하지만 맛있는 레시피 소개, 아니면 그저 맛나게 먹는 먹방 영상까지. 패스트푸드부터 처음 보는 낯선 재료까지, 전 세계 각지의 산해진미가 30초짜리 짧은 영상에 무한정 펼쳐진다. 가만히 나를 놔두다 보면 넋 나간 듯 계속 보게 된다. 그리고는 그 끝에 반드시 밀려오는 느낌이 있으니 그것은 허기다. 하지만 그 허기는 위와 장이 비는데서 느껴지는 물리적 허기가 아니다. 방금 밥을 먹었어도, 디저트까지 해치웠어도, 허기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이건 뭔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느낌이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러다 보니 '뭔가 먹고 싶어'라는 말을 자꾸 되뇌이게 된다. 배가 고프다기보다는 그 '뭔가'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도 참아 본다. 참을 수 있다. 그런 허위의 허기에 속아 본 적이 한두 번이던가.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면 조금씩 잦아드는 것도 같다. 무언가 다른 것에 집중해 본다면 더 쉽게 잊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참았던 그 허기들은 비록 허위였을지언정 차곡차곡 쌓인다. 물리적으로는 아니어도 심리적으로. '심리적'이라는 말보다는 뭔가 더 원초적 본능의 영역인 것 같다. '욕구적'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듯하다. 그러니까 욕구적으로 허기가 쌓인다. 그리고 언젠가 어떤 음식을 만나, 혹은 어떤 다른 쾌락적인 무언가를 만나 폭발하고 만다.


시골에서 건강하게 소식하며 살고 있는 나에게도 그런 음식이 있다. 건강하게 소식하며 살고 있다지만 건강과 소식으로 그 욕구가 다 채워질리는 만무하다. 어느 정도는 그런 욕구들을 참거나 흘려보내는 식으로 나를 다스려간다. 잘 다스려질수록 내 몸과 마음은 평화와 균형을 유지하고 환희에 찬 기쁨은 아니어도 고요하고 잔잔한 만족을 준다. 하지만 그래도 어딘가에는 그 흘려보냈던 욕구들이 조금씩 쌓이는 걸 지속적으로 느낀다.(도대체 어디에 쌓이는 걸까. 분명 위나 장은 아니다. 뇌도 아닌 것 같은데. 글쎄..) 그래서 가끔은 그 쌓인 욕구들을 달래주기 위해 어떤 음식들을 나에게 선물처럼 주곤 하는데 보통 그 음식은 3가지로 압축된다.


라면과 과자와 떡볶이. 역시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국민 간식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라면과 과자는 얼마나 맛있게 만들어 놓았는지, 이게 공산품인가 싶을 정도이다. 떡볶이는 말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나는 떡볶이를 잘 만든다. 거의 시장에서 파는 맛에 가깝다. 비결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조미료'다)


하지만 문제는 욕구라는 놈의 성질에 있다. 욕구를 오래 참다 보면 욕구라기보다는 '욕망'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그 참았던 대상을 향한 갈증과 원망의 긴장이 팽팽해지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마침내 그 대상을 만났을 때는 평소의 자제력과 통제력을 유지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상과도 같은 마음으로 그 대상을 향한 욕망의 문을 마음껏 열다 보면 어느새 선을 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정신을 차려보면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다.


오늘은 그런 돌이킬 수 없는 날들 가운데 하루였고 그 대상은 떡볶이였다. 얼마 만에 먹는 떡볶이던가. 한 달은 된 듯하다. 그런 날에는 양 조절부터 실패하고 만다. 떡과 오뎅부터 김말이와 라면사리까지. 조리할 때부터 정신은 이미 욕구에 저당 잡혀 있어 감당할 수 없는 양이란 것을 짐작하지 못다. 그리고 첫 입을 뜨는 순간 달리기는 멈출 수 없다. 그 많은 양을 싹 비우고 난 뒤에는 포만감과 만족일시적으로 스쳐 지나가고, 그 후로는 버거움과 후회의 시간이 길고 지루하게 계속된다.


건강하게 먹을수록 건강하지 않은 음식은 그만큼 더 부담스러워진다. 술을 먹지 않을수록 조금만 먹어도 숙취가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건강할수록 건강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저항감 또한 세진다. 속은 불편하고 미식거리며, 정신은 흐려지고 몸도 무거워진다. 그까짓 떡볶이 한 그릇 먹었다고?라는 생각이 든다면 모든 인스턴트와 외식을 멈추고 집에서 만든 건강식으로만 한 달을 보내보라. 인간의 몸은 생각보다 적응력이 강한 생체여서 한 달이면 건강식에 적응이 될 것이고, 그렇게 적응된 몸에 떡볶이나 라면은 매우 큰 충격과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렇게 불편한 속과 무거운 몸, 흐릿한 정신을 붙들며 후회가 시작된다.


욕구의 문제는 그것이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욕구는 앞으로만 전진하며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것은 한계를 모른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으니 조절과 통제 또한 전혀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욕구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데 그것은 바로 불만족의 양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욕구가 강하면 강할수록 만족의 수준은 낮아진다. 기대가 높으면 실망 또한 커지는 원리와 유사하다. 강한 욕구는 만족의 기대치를 높이고 결과적으로 실제의 만족감을 낮춘다. 그렇다 보니 욕구는 그 불만족으로 인해 더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 들고, 그래서 욕구는 더욱 강하게 자신의 몸을 불린다. 욕구의 불만족은 강한 욕구를 부추기고 부추겨진 욕구는 만족의 가능성을 더 낮춘다. 이것은 밑 빠진 독의 물 붙기가 악순환을 만나는 원리다. 그러니까 물을 더 많이 부을수록 밑은 더욱 넓어져 물이 더 많이 빠져나가는 난감하고 걷잡을 수 없는 악순환.


그러니 한 달에 한 번 떡볶이를 먹고 이토록이나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경험이라면 차라리 긍정적인 징후일지도 모른다. 불만족이 아니라 부정적 경험이니 다음에는 욕구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는 교훈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떡볶이를 먹었는데 내일 햄버거를 먹고 싶고, 내일 먹은 햄버거로도 만족이 되지 않아 라면과 아이스크림으로 그 불만족의 허기를 달래 보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또 다음엔 뭘 먹을지 고민하 숏폼 영상을 돌려보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욕구라는 독의 밑이 크게 빠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감지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욕구의 독을 점점 키우는 데는 요즘의 숏폼 영상들이 꽤나 큰 기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경각심도 함께.


현대인에게는 여러 가지 짐들이 어깨에 지워져 있지만 내 욕구를 다스려야 하는 것도 그 짐들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짐들을 짊어지고 균형 있게 잘 걸어가기에는 주변의 자극과 유혹이 끊임없이 나를 흔들어댄다. 그야말로 가시밭길이다. 십자가라도 짊어져야 할 것 같은 심정이지만 그렇게 짊어진 십자가가 고작 '핸드폰 안하기', '식욕 참기'라니. 이 또한 허탈하구나..


그래서 나는 오늘도 떡볶이를 위와 장에 가득 채우고는 지키지 못할 다짐을 다시 해본다. 다음에는 결코 먹지 않으리.. 아니, 차라리 먹는 횟수와 양을 제한하는 것이 현명하고 현실적인 방법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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