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g by yangpa
'비운의 가수'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가슴 아프게도 양파는 그 말에 어울리는 가수일지도 모르겠다. 소속사 문제로 한창 날개를 펼쳐야 할 20대 중반을 긴- 공백기로 보내야 했고, 어렵게 다시 복귀한 이후에도 소속사 문제는 끊임없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삶을 살아냈고 여전히 자신의 길을 개척해가고 있다. 그리곤 이토록 아름다운 노래와 가사말을 만들고 들려주고 있다. 이 험한 세상에 그녀의 목소리와 음악은, 그 존재만으로도 큰 위로와 힘이 된다.
일본에 우타다 히카루가 있다면, 한국에는 양파가 있다. 항상 일본 음악의 뒤를 밟기 바빴던 80-90년대 한국의 대중가요였지만, R&B의 본격적인 대중적 확산은 한국이 한 발을 앞섰다. 그건 모두 양파의 등장 덕분.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이라면, 그녀의 데뷔곡 '애송이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양파는 발라드와 댄스로 양분되어 있었던 당시의 대중가요계에 그야말로 충격적인 보이스와 새로운 사운드로 혜성같이 나타났다.('양파'라는 이름 또한 충격적이었던...) 국내 가요와는 너무도 이질적이었던, 미국 본토의 R&B를 방불케 하는 이국적인 창법과 편곡은 대중들을 새로운 신세계로 인도하는 마법처럼 다가왔고, 그 당사자가 아직 고등학생밖에 되지 않은 소녀라는 것은,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실제로 양파 1집은 대부분의 작곡과 편곡을 외국인에게 맡겼고, 녹음도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일본 대중음악계에 아주 유사한 충격(본토의 R&B 사운드, 어린 소녀의 농익은 보컬)을 가져다주었던 우타다 히카루의 등장이 99년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무려 3년이나 앞선 양파의 등장은 한국 대중음악이 일본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시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그녀의 등장을 기폭제로 하여 이후 한국의 가요계는 한국형 R&B와 Soul의 바람이 몰아치게 되며, 박정현, 박화요비, 박효신, 브라운아이드소울, SG워너비 등등 굵직한 뮤지션들의 인기는 모두 그녀가 닦아둔 길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자신의 개척한 길 한가운데서 길을 잃게 되는 비운을 겪게 되고 만다. (다시 생각해 봐도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긴 터널을 통과해 자신의 길을 계속 걸어갔으며, '나는 가수다', '복면가왕'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드러내며, 이제는 원숙해진 디바의 모습으로,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작사, 작곡가로서도 꾸준히 뮤지션으로서의 길을 이어가고 있다. (얼마 전 '복면가왕'에서 가왕 5연승을 하며 보여준 무대들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특히 '시든 꽃에 물을 주듯'을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원숙해진 소울도 그렇고 경이로운 가창도 가창이지만, 사실 그녀는 꾸준히 자신의 곡을 발표해오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자신의 6집(가제: Seoul Romantique)을 준비하며 싱글들을 발표하고 있다. (그녀의 정규앨범은 2007년 5집에서 멈춘 상태) 오늘 소개하는 노래 '5:55'는 그녀가 작사하고 공동작곡한 곡으로 6집의 두 번째 싱글로 얼마 전 발표한 노래다. 짙은 블루지한 감성이 돋보이는 노래로 90년대 분위기가 떠오르는 곡인데, 노래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쓸쓸한 가사를 음미하고 들으면 더더욱 깊이 빠져들 수 있다.
특히 가사 중,
있잖아 나, 뭘 원했던 건지
어째서 그게 너였었는지
네 얼굴에도 붉은 노을이 비추었을 뿐
사는 건 덧없는 게임
이라고 읊조리는 부분은 가사가 가슴에 콕 박혀서 응어리가 지는 느낌이다. 마치 그녀가 음악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혹은 나 자신의 인생에 대입해 보면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라는 심정이 되기도 한다. 쓸쓸하면서도 아픈 가사인데, 이상하게 위로가 되는 건 역시나 그녀의 목소리와 가사, 그리고 음악의 힘 덕분이 아닐까.. 비 오는 가을밤에 쓸쓸한 기분이 들면, 헤드폰을 끼고 가사를 음미하며 들어보기를 권한다.
Lyrics by 양파 / Composed by 양파, 구름 / Song by 양파
있잖아 나 같은 시간에 늘
하늘을 올려다보네
5:55 now
너 좋아한 긴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고
그랬어 그랬어 그랬어
어디선가 지나는 사람들
사이로, 마주칠까?
함께 보던 강 위를 달리는
저 노을도 왠지 슬퍼져
있잖아 나, 뭘 위해 사는지
아직도 살아있기는 한지
Oh, tell me why
저 붉은 노을에 물어볼 뿐
이제 난 어디로
밤이면 그림잘 빼앗긴
도시의 고독은 달아나 멀리
사는 건 덧없는 게임
네 곁에 누군가가 있다 해도
나는 괜찮아
있잖아 나, 뭘 원했던 건지
어째서 그게 너였었는지
네 얼굴에도 붉은 노을이 비추었을 뿐
이제 난 over you
you always come and go
Let me in, Let me out
your selfish ways
cuz you know I can never let you go
있잖아, 넌 계속 걸어가 줘
가끔씩 나를 떠올려줘
슬픈 노래도 언젠간 그리운 노래가 되겠지
내 이름 불러줘
https://youtu.be/SL4-OX-iazY?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