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 청소>, 그리고 '인생은 아름다워'
아무렇지 않아 보였던 그녀
연락이 안 돼서 집으로 찾아가니
욕실은 온통 검붉게 물들고
그녀는 외롭게 놓여있었네
마음을 적은 짧은 유서 한 장 없이
그렇게 서둘러 이곳을 떠나야 했나
단정히 정돈된 그녀의 살림살이도
그녀와 함께 쉽게 버려지네
붉게 물든 피가 말하네
붉게 굳은 피가 말하네
난 살아 있었다고 난 사람이라고
난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고
(오소영, '살아 있었다' 中)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속 가장 슬픈 장면은 누가 뭐래도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아버지인 귀도가 군인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장면이다. 자신을 지켜보는 아들이 상처받을세라 전쟁놀이를 하는 척하며 마지막까지 익살맞은 모습을 보인 후, 결국 아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리는 총성으로 죽음을 짐작케 하는 그 장면은 귀도의 밝은 표정 탓에 마음이 아팠다. 때론 안타까운 이야기를 해맑게 이야기하는 것이 더 슬플 때가 있다. 바로 '살아 있었다'라는 이 노래가 그렇다.
인트로의 하모니카 소리와 컨트리풍의 어쿠스틱 기타가 어우러진 반주를 들을 때만 해도 흥겨워졌던 기분이, 가사 네 소절을 듣고 나면 이내 차갑게 굳어 버리고 만다. 생각할수록 너무나 참담하고 안타까운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그런 장면을 맑은 하모니카와 기타 소리에 실어 담담히 노래로 부르는 목소리를 들으며 내색하지 않는 깊은 슬픔이란 게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노래를 들으며 예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건물 청소를 하는 이가 전하는 그녀는 너무나 착한 사람이었다. 그 착한 여인은 어쩌면 스스로에게는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죽인 사람이 되어 생을 마쳤다. 억울함과 비통함이 쌓이고 쌓여도 타인에게는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남에겐 화살 하나 겨누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 자신을 향해 과녁을 되돌려 쏘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죽일 도구마저 끝내 분리해서 버린 그 착하고 바른 심성을 왜 자기 자신에겐 돌려주지 못했을까? 왜 자신에게만은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오히려 그 바른 마음이 날카로운 바늘이자 강박이 되어 그녀를 부단히 찔러온 것은 아닐까?
- 김완, <죽은 자의 집 청소> 中
특수 청소를 직업으로 하는 작가가 쓴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으면, 외로운 죽음이 남긴 자리가 얼마나 처절하고, 고독의 흔적이 얼마나 눈물겨운지를 아프게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한 호흡에 다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심장이 엄청나게 단단한 사람이리라. 읽고 나면 온몸이 욱신거리고, 끊었던 담배가 저절로 생각이 날 정도로 심란해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애도를 받으며 생을 마감하는 것도 그토록 무서운데, 심지어 혼자 외로워하며 스스로 준비하는 죽음은 도대체 어느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었을까.
위에 인용한 책의 내용은 자신의 죽음의 수단으로 사용한 물건들을 말끔하게 분리수거함에 넣어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어느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죽음을 목전에 둔 너무나 공포스러웠을 그 순간에도, 자신의 흔적을 정리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졌던 것일까. 남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는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결국 자신에게 피해를 주고야 마는, 이런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정말 신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싶다.
언젠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안타까운 선택을 한 일가족이, 마지막 남은 돈을 월세와 공과금이라며 메모와 함께 남기고 갔다는 뉴스를 보고 한동안 머리가 멍해졌던 기억이 있다. 생의 마지막 시간에도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은 마음을 가졌던 이들이 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을 리 없고, 그런 분들이 결국 삶의 끈은 놓아버릴 정도로 이 사회는 여전히 비정하다. 이런 종류의 비극이 끊이지 않고 뉴스 기사에 오르는 것을 보면, 아직 우리는 참 잔혹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에 숨이 막힌다.
'죽음'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작품을 접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그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된다.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다가 잠들듯이 생을 마치는 누구나 바라는 그런 죽음이면 좋겠지만, 설령 그런 호사를 누리지 못하더라도 외롭고 고통스럽게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는 바램은 있다. 그리고 부디 '살아 있었다'나 <죽은 자의 집 청소> 속 이야기처럼 고독하고 처절하게 삶을 마치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마 전 또 한 번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며 나도 모르게 이 노래가 떠올랐다. 내가 정말 아끼고 좋아하는 노래인데도, 이런 일이 생기면 생각이 난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미안했다. '난 살아 있었다고, 난 사람이라고'라는 가사를 생각하면, 생의 막다른 곳까지 몰려버린 누군가의 처절한 마음이 떠올라서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세상은 점점 살기 좋아지고 있다는데, 왜 정작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챙겨주지 못하고 각자 외로워하다가 슬프게 생을 마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살아 있었다'가 수록된 오소영 3집은 음원으로 이미 수없이 들었지만, 얼마 전 턴테이블을 마련한 뒤 망설임 없이 LP를 주문했다. 한 곡 한 곡 천천히 들으면서, 이 음반이 정말 다채롭고 매력적인 노래들로 꽉꽉 채워져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음원이 아닌 음반을 들을 때 느낄 수 있는 희열이다. 애견인이 아닌 나도 개를 사랑하게 될 것만 같은 '멍멍멍'도, 뽕끼가 좔좔 흐르는 '난 바보가 되었습니다'도, 제목과 노래 모두 멋짐이 가득한 '당신의 모서리'도 다 좋아서 어떤 노래가 아닌, 부디 앨범 전체를 꼭 들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은 음반이다.
https://youtu.be/UF3XZZuZSWg?si=93OXq6bpHjgey32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