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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도 못하면서(by 민서)

나는 나를 알고 있긴 한 걸까

by radioholic
눈뜨면 매일 오는 아침이 다 이별이란 걸
나는 정말 몰랐어
봄 다음에 여름 가을 건너뛰고 겨울인 거야
요즘 내 맘을 말하자면
(민서, '알지도 못하면서' 中)


난 얼마 전까지도 내 MBTI에 대해 알지 못했다. 아주 예전 혈액형으로 사람의 유형을 가르고 평가하던, 그런 얄팍하고 진절머리 나는 선입견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몇 번의 테스트를 해본 뒤 알게 된 나의 MBTI는 날 꽤 많이 놀라게 했다. 결과가 예상과 달라서라기보다는, 내가 이런 면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계기였기 때문이다. 난 나에 대해서 꽤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마흔이 넘어서야 새삼스레 알게 된 셈이다.


난 내가 꽤나 사교적이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인 줄 알았다. 나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대개 그런 방향이었으니까. 생각해보면 내가 사람들 앞에서 그런 연기를 꽤나 잘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의 나는 성격이 그렇게 긍정적이지도 않고,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편할 때가 많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즐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나를 타인들이 평가하는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같은 몸에 있음에도 머리와 가슴은 늘 따로 놀고 있었던 게 아닐까.



오롯이 나를 돌이켜 볼 시간을 가지며 살고 있는 것일까(다낭, 2017)


요즘 들어 부쩍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많아지고, 정신과 상담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나와 실제의 내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살다가 겪게 되는 괴리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실 아주 예민하고 스트레스 내구성이 취약한 사람인데, 스스로를 무엇이든 긍정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는 성격이라 믿고 좌충우돌하다가 누적된 대미지에 주저앉는 사람들을 꽤 많이 봤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직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인정하는 건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난 내가 그리 특별하지도 않고, 되려 결핍이 너무나 많은 그저 그런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을 아주 최근에서야 인정할 수 있게 됐다. 철이 늦어도 너무 늦게 든 셈이다. 덕분에 내가 남보다 뭔가 낫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얻는 인생의 즐거움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 대신에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무리하는 짓은 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아닌 모습을 연기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 노래 제목처럼 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시간들에 대해 새삼스레 후회와 반성을 하고 있는 중이다.


민서의 '알지도 못하면서'는 쓰리핑거로 추측되는 담백한 기타 반주와 쓸쓸한 민서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빛을 발하는 곡이다. 난 중성적인 매력이 듬뿍 담긴 민서의 음성을 정말 좋아한다. 굳이 고음을 내지 않더라도 깊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젊은 가수가 참 귀하기 때문이다. 요즘 음악 활동보다는 '골 때리는 그녀들'이란 프로그램 속 열정 넘치는 풋살 선수로 대중들에게 각인되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깝지만, 소리를 지르며 공을 차는 그녀가 아닌 노래하는 그녀의 본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음악에 쏟아야 할 그녀의 에너지가 혹여 다른데서 소진될까 걱정하는 팬으로서의 노파심이다. 무대에 서서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를 부르는 민서의 모습을 다른 것 때문에 볼 수 없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니까. 몇 해 전 언젠가 우연히 보고 그녀의 음색과 감성에 완전히 반해버렸던, 제휘의 'Dear Moon'을 부르던 커버 영상을 오랜만에 다시 틀어 보았다.



https://youtu.be/fwetVfkOBuE?si=gr4yO7Fdqn_maKhH

민서의 목소리라서 더 빛이 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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