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을 외워보자. 파면의 주문을.
덩크슛 한 번 할 수 있다면
내 평생 단 한 번만이라도
얼마나 짜릿한 그 기분을 느낄까
주문을 외워보자
야발라바히기야 야발라바히기야
(이승환, '덩크슛' 中)
어제 안국역 집회에 나갔다. 마침 외부 교육을 경복궁에서 듣고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승환이 집회에 온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와이프에게 연락해 만날 시간을 잡고, 현장에 조금 일찍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바람이 꽤나 많이 불었음에도 일찍 도착한 사람들은 추운 기색 없이 웃으며 자리를 지켰고, 난 그곳에서 너무나 오랜만에 군대 후임을 우연히 만나 더 기분 좋은 자리가 되었다. 내 옷차림이 추워 보인다며 일부러 내가 앉은 곳까지 찾아와 핫팩과 과자를 챙겨준 그 친구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집회 시작 전부터 그냥 마음이 흐뭇하고 즐거웠다.
집회의 분위기는 뜨거웠고 날씨는 차가웠다. 왜 우리가 모이면 날은 이토록 차가워지는 것인지. 그런 와중에도 거리에 모여 앉아 '탄핵'과 '파면'을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대체 언제까지 시민들이 이 고된 여정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 생각하는 사이에 집회는 계속 진행이 되었고, 마침내 그가 무대에 올랐다. 자신의 공연을 취소하고 나이를 들먹이며 주제넘은 훈계를 했던 꼰대 구미시장보다 네 살이 많은 이승환의 모습은 여전히 어린왕자였다. 네 곡의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내려간 뒤 앵콜 요청으로 다시 올라와 부른 곡은 바로 '덩크슛'이었다.
어제 무대 위에서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꿋꿋하게 서서 청년처럼 뜨겁게 노래를 부르는 이승환을 보면서 문득 신해철이 떠올랐다. 지금 신해철이 살아 있었다면 저 무대에 같이 올라 야만과 함께 싸우며 힘든 짐을 같이 져주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이승환만 홀로 분투하는듯한 모습이 너무 외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동지가 떠난 자리에 혼자 남아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묵묵히 무대에 올라 힘든 우리들 곁을 지켜주는 이승환의 투혼을 보며, 어제 이 노래를 소리 높여 따라 부르다가 살짝 목이 메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그의 '크리스마스에는'을 소개하며 썼던 말이지만... 난 이승환이란 사람이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그가 우리를 지켜주었듯 앞으로는 우리가 그를 지켜주며 정말 함께 늙어가고 싶은 것이 나를 비롯한 이승환 팬들의 진심이다. 같은 세월을 겪고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서로 지켜주고 싶은 관계라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그리고 어제 지치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무대를 활보하는 그를 보며, 저렇게 나이를 먹을 수 있도록 지금부터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다잡았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낡고 누추해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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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와 농구대잔치에 미쳐 있던 중학생 시절, 이승환의 '덩크슛'은 내겐 찬송가와도 같았다. 당시 샀던 이승환 3집 테이프가 정말 다 늘어나서 너덜거릴 때까지 돌려가며 들었던 그 노래를, 이 혼돈한 시대에 광장에서 전혀 다른 메시지로 듣게 될 줄 그땐 상상이나 했을까. 헌법재판관들과 동년배인 이승환이 더 이상 노구를 이끌고 추운 거리에 나오지 않도록, 언제 이런 미친 시절이 있었냐는 듯 공연장에서 미친 듯이 다 같이 즐기는 날이 오도록 주문을 외워보자.
주문. 피청구인 윤석열을 파면한다.
https://youtu.be/WyoVsC8Rk6s?si=9iXMeo-gDd5J7bI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