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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Jun 25. 2024

겸손은 진정 힘든 건가요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를 읽었다

당신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자기도취자를 상사로 모시고 싶지 않다. 그들이 어떤 미래상을 갖고 있든 무관하게 말이다. 나는 존중받고 싶은 존재이지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이고 싶지 않다. 나는 자신이 이끌고 나가야 하는 직원들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사람을 좋은 관리자라고 인정할 수가 없다. 카리스마가 아무리 넘친다고 해도 말이다.(152p)


회사 또는 어느 조직마다 저런 사람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윗선에 '일을 한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무의미한 일을 만들어 자기 부하들에게 내리는 사람. 자신의 판단에 설령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내가 이끄는 조직원들은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하며, 그것을 따르지 못하면(또는 '않으면') 낙오자로 낙인찍고 배제해 버리는 사람. 자기 지시에 의해 진행한 일이 실패하거나 흐지부지 되어도 어찌 되었든 일은 한 거 아니냐며 합리화하고, 그 과정에서 허비된 부하들의 시간과 노력은 당연히 소요되어야 하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사람, 하지만 서글픈 건 저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집약되어 있는 사람이 대부분의 조직에서 소위 '출세가도' 를 달린다는 사실이다.


직원들을 장기판 위의 말, 혹은 자신이 하는 게임의 캐릭터로 간주하고 제 마음대로 굴리는 행태가 '리더십' 혹은 '카리스마' 로 포장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린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의 엄청난 성과에 주목하며 그들의 성공을 칭송하지만, 그 성공 뒤에는 그들의 독특한(폭력적인) 성향으로 인해 모욕을 당하고, 혹사당하고, 어이없는 사유로 해고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사실 그런 기행들 하나하나가 개인이 가진 하나의 세계를 산산조각 내는 엄청난 폭력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례들이 혁신과 성공을 위해 불가피한 과정으로 치부되는 것은 정말 참담한 일이 아닐까.


저 사무실마다 얼마나 많은 폭군들이 횡포를 부리고 있을까...


앞에 언급한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는 그래도 천재적인 능력으로 일가를 이루고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만든 무언가를 창조한 미덕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저런 생산적인 일도 하지 않는, 그저 조직의 인정을 받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함께 있는 조직원들을 도구 삼아 그 인정욕구를 채우는 데 있다. 소위 '광'을 팔기 위해 부하들을 비합리적이고, 때론 다른 구성원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서슴지 않고 지시하는 폭군들이 존재하는 사무실에서 많은 이들이 하루하루를 버텨 나간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하루하루 나를 갉아먹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그 폭군들이 내 미래의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애써 부정하면서.


그래서 이 책의 작가는 말한다. 이런 비극적인 현상들을 막기 위해선 '겸손'이 미덕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자기도취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끄러운 사람들의 반대편에서, 조용히 자신의 존재감을 빛내며 능력을 발휘하고 신뢰를 얻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뻔한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그런 겸손한 사람들이 존중받는 풍토가 번져나갈 때, 우리가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터가 조금이나마 살만한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부하를 내 마음대로 조립할 수 있는 레고로 취급하는 인간들은 설 자리가 줄어드는 그런 행복한 상상을 하며 이 책을 읽었다.



물론 세상이 우리가 원하는 그런 이상적인 모습으로 당장 바뀌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살아가면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방향으로 살기 위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내 마음에 가장 와닿은 구절을 말미에 남겨본다.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까먹긴 하겠지만, 그래도 내 머리나 마음 한구석에 아주 조그맣게나마 자리 잡을 것이라 믿어보면서.


겸손은 허공이 아니라 현실에 발을 붙인 채 스스로 중심을 잡고 단단히 서 있으려는 노력이다. 겸손은 성공을 큰 소리로 떠들지 않는 것이며 성공에 함몰되는 부류에 속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그들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 위에 두드러지게 솟아 있는 것도, 위에 올라서기 위해 두드러지는 것도 좋지 않다.(1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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