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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Nov 10. 2024

더덕구이를 만들 줄은 몰랐지만

엄마한테 밥을 해드린다는 것

와이프는 일을 하러 나갔고(고생이 많소ㅠ), 난 별다른 약속도 없던 토요일. 날씨가 좋으니 혼자 산책하다가 카페에 가서 책이나 읽을까, 아니면 요즘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가는 레슨곡 연습도 할 겸 학원 연습실을 갈까 고민하다가 본가에 가기로 결정했다. 지난주 엄마의 팔순을 맞아 가족들이 모여 저녁도 먹고 조촐한 파티도 했지만, 그 주 주말에 엄마를 모시고 바람 쐬러 나가려던 일정이 어그러져 마음에 걸리던 참이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우리 집 근처 식당의 육개장이나 갈비탕을 사서 포장해 갈까 하다가, 문득 내가 만든 음식을 가져가보자고 마음먹었다. 생각해 보니 요리를 배우고 엄마한테 뭔가를 해드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 이번 주에 학원에서 더덕구이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해서, 비록 한 주 늦었지만 엄마 생일밥을 차려드려야지 생각하며 장을 봤다. 더덕이 제철이 아니라 마트에서 도무지 찾지를 못하다가, 마트 맞은편 작은 과일가게에서 귀한 더덕을 영접할 수 있었다. 물론 좀 비싸게.


영롱하기도 하지...


더덕구이의 요체는 손질이다. 더덕을 포장해 주시던 과일가게 아주머님의 "이거 손질은 누가 할라구?"라는 날카로운 질문에 "제가요!"라고 답하던 순간 아주머님의 그 의구심에 찬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 마치 '니가?'라고 묻는듯한 그 눈빛. 하지만 학원 수업시간에 이미 더덕껍질과의 싸움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한번 겪었기에, 경험자로서의 자신감으로 말을 이어갔다. "감자 깎는 칼로 하면 되자나요?" 왜 필러라는 말은 떠오르질 않았을까...




더덕구이 만드는 법은 어렵지 않다. 앞에서 말한 대로 손질이 70%다. 필러로 더덕껍질을 '살짝(!)' 벗겨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소금에 10분 정도 절여 부드럽게 만든다. 약 10분 후 절여진 더덕을 두드려 표면이 조금씩 벌어지도록 한 뒤(이게 또 은근히 귀찮다) 약한 불에 양념과 함께 볶은 뒤 깨소금 정도 뿌려주면 완성이다. (양념은 고추장과 들(참)기름, 간장, 다진 마늘을 섞어서 만든다.)


(집밥네컷) 껍질을 벗기고, 두드리고, 굽고 또 굽는다


더덕구이의 또 하나의 난점이 있다면, 다듬는 과정에서 나오는 더덕의 진액 때문에 손이 찐득찐득해진다는 것. 물로 씻어도 잘 안 닦여져서 깔끔한 성격이신 분들에겐 신경 쓰이는 부분일 수 있겠다. 만약 그런 느낌을 겪기 싫으시다면 더덕 손질할 땐 비닐장갑을 끼고 하시는 게 어떨까 싶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더덕구이는 더덕 특유의 아삭한 식감에 양념도 잘 배어 꽤 그럴듯했다.(뿌듯) 어린 시절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더덕구이를 이렇게 정성스레 만드는 날이 올 줄은 나도 몰랐다. 이렇게 나이를 먹어간다.


더덕구이가 완성되었습니다




더덕구이와 함께 그동안 배운 요리 중 취나물밥과 고추장찌개를 만들어 포장을 하고 차에 실었다. 아직 서툰 솜씨에 토요일 오후 시간을 꼬박 들여 만들었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워낙 요리 솜씨가 좋은 엄마의 입맛에 맞을지에 대한 걱정만 있었을 뿐. 엄마는 이런 거 할 줄 모를 것 같았던 무뚝뚝한 아들내미가 가져온 요리에 매우 놀라시며 이게 무슨 일이냐고 하셨고, 맛을 본 결과 더덕구이와 고추장찌개는 꽤 잘 만들었고 취나물밥은 살짝 설익었다는 평가를 내리셨다.(역시 백미가 아닌 잡곡으로 냄비밥을 하는 것은 내 역량 밖의 일이었다)


약 35년을 엄마가 만들어 주신 밥을 먹기만 한 아들이, 결혼을 하고 중년이 되어 배워온 솜씨로 우당퉁탕 만든 요리가 엄마의 입엔 어떻게 느껴졌을까. 설익은 취나물밥을 씹으시며 웃음이 나오셨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아들 기 안 죽게 맛있다는 말을 잊지 않은 엄마의 마음이 고마웠다. 엄마를 위해 한 끼 요리하는 것도 이렇게 쉽지 않았는데, 엄마는 어떻게 우리 3남매의 삼시세끼를 쉬지 않고 챙길 수 있었던 걸까. 내 국민학교 시절에  도시락을 하루에 다섯 개씩 싸시던 엄마는 분명 초인이었을꺼다. 그때 엄마의 아침이 너무나도 고단했을 거라는 것을 참 늦게서야 깨닫는다. 앞으론 좀 더 그럴듯한 음식 만들어 드릴 테니, 앞으로도 건강하세요 엄마. 팔순 축하드립니다.


엄마를 위한 아들의 첫 밥상 메뉴


* 취나물밥 만들기 : https://brunch.co.kr/@radioholic3/71

*고추장찌개 만들기 : https://brunch.co.kr/@radioholic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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