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한테 밥을 해드린다는 것
더덕구이의 또 하나의 난점이 있다면, 다듬는 과정에서 나오는 더덕의 진액 때문에 손이 찐득찐득해진다는 것. 물로 씻어도 잘 안 닦여져서 깔끔한 성격이신 분들에겐 신경 쓰이는 부분일 수 있겠다. 만약 그런 느낌을 겪기 싫으시다면 더덕 손질할 땐 비닐장갑을 끼고 하시는 게 어떨까 싶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더덕구이는 더덕 특유의 아삭한 식감에 양념도 잘 배어 꽤 그럴듯했다.(뿌듯) 어린 시절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더덕구이를 이렇게 정성스레 만드는 날이 올 줄은 나도 몰랐다. 이렇게 나이를 먹어간다.
더덕구이와 함께 그동안 배운 요리 중 취나물밥과 고추장찌개를 만들어 포장을 하고 차에 실었다. 아직 서툰 솜씨에 토요일 오후 시간을 꼬박 들여 만들었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워낙 요리 솜씨가 좋은 엄마의 입맛에 맞을지에 대한 걱정만 있었을 뿐. 엄마는 이런 거 할 줄 모를 것 같았던 무뚝뚝한 아들내미가 가져온 요리에 매우 놀라시며 이게 무슨 일이냐고 하셨고, 맛을 본 결과 더덕구이와 고추장찌개는 꽤 잘 만들었고 취나물밥은 살짝 설익었다는 평가를 내리셨다.(역시 백미가 아닌 잡곡으로 냄비밥을 하는 것은 내 역량 밖의 일이었다)
약 35년을 엄마가 만들어 주신 밥을 먹기만 한 아들이, 결혼을 하고 중년이 되어 배워온 솜씨로 우당퉁탕 만든 요리가 엄마의 입엔 어떻게 느껴졌을까. 설익은 취나물밥을 씹으시며 웃음이 나오셨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아들 기 안 죽게 맛있다는 말을 잊지 않은 엄마의 마음이 고마웠다. 엄마를 위해 한 끼 요리하는 것도 이렇게 쉽지 않았는데, 엄마는 어떻게 우리 3남매의 삼시세끼를 쉬지 않고 챙길 수 있었던 걸까. 내 국민학교 시절에 도시락을 하루에 다섯 개씩 싸시던 엄마는 분명 초인이었을꺼다. 그때 엄마의 아침이 너무나도 고단했을 거라는 것을 참 늦게서야 깨닫는다. 앞으론 좀 더 그럴듯한 음식 만들어 드릴 테니, 앞으로도 건강하세요 엄마. 팔순 축하드립니다.
* 취나물밥 만들기 : https://brunch.co.kr/@radioholic3/71
*고추장찌개 만들기 : https://brunch.co.kr/@radioholic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