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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Nov 16. 2024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는 법

답은 그저 멋쩍게 웃으며 이어나가는 뻔뻔함이었다

아... 어떡하지...


거짓말처럼 손이 사악 굳어지면서 뒷목이 저려온다. 이제 곧 기타를 쳐야 하는데 손이 굳으면 어쩌란 말인가. 손을 아무리 주물러도 오히려 손바닥에 진땀만 난다. 사람들 앞에 선 그때부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어떡하지'란 네 글자가 머릿속을 채우며 패닉상태로 빠진다. 그렇게 난 첫 공연 리허설을 완전히 실패했다. 그때 그 절망감은 고스란히 트라우마로 남아 꽤 오랫동안 날 괴롭혔다.


연습 땐 그렇게 잘 돌아가던 손가락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 뻣뻣하게 굳어질 때의 감정은 단 하나, 공포다. 이 사람들 앞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울면서 뛰쳐나가고 싶은 그 공포는 두 번째 공연 리허설 때까지 이어졌다. 리허설을 정말 오지게 말아먹어서 액땜을 한 탓인지 다행히 실제 공연에서는 큰일이 나진 않았지만.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기타로 쳐보고 싶어서 기타 레슨을 받기 시작했지만, 무엇에 홀린 듯 네 번의 학원 공연을 치렀다. 한 명이든 백 명이든 상관없이, 누군가의 앞에서 연주를 한다는 것은 정말 무시무시한 긴장감을 주는 행위라는 것을 저 작은 공연들을 나가면서 알게 되었다.


두려움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힘을 빼앗아 간다. 음이 틀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우리는 몸이 공기를 더 요구하는 것을 느끼게 되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자세를 취하게 될 것이다. 피아니스트가 두려움을 느끼면 어깨가 올라가고 목이 뻣뻣해지며 마음은 긴장한다. 그는 팔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연주가 엉망이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빈약한 소리와 리듬이다...
...
당신이 다른 음을 연주했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케니 워너, <완전한 연주> 中)


작곡가 케니 워너는 <완전한 연주>라는 책에서 프로 연주자들도 무대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과 그것을 극복하는 방향을 아주 세심하게 이야기해 준다. 막연한 두려움은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뭐 어쩌라고'라는 일종의 '무대뽀' 정신이라는 것. 내가 이 책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첫 번째 리허설을 끝까지 진행할 수 있었을까. 물론 이 책을 읽은 이유가 그 실패의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였지만.


네 번째 공연을 마치고 나서 느낀 게 있다. 실수를 하면 그냥 관객들에게 멋쩍게 웃으며 계속 연주를 이어 나가면 된다는 것. 나는 직업 음악인도 아니고 그저 음악을 즐기는 아마추어이기에, 내가 설령 실수했더라도 이해해 달라는 그런 어색한 웃음 하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참 늦게 알았다. 저 책에 쓰인 대로... 내가 틀린 음을 쳤더라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으니까. 머리로는 쉬워도 막상 하기는 어려운 이 방법은 결국 시행착오 경험이 준 교훈이었다.


어떤 무대든... 긴장되는 건 똑같다


악기 연주도 스포츠와 같아서 수없는 반복 속에 만들어진 머슬 브레인이 나도 모르게 자동반사적인 퍼포먼스를 가능하게 한다. 무대 공포가 나를 짓눌러도, 내 연습량과 그것을 통해 발달한 머슬 브레인의 힘을 믿으면 어떻게든 주저앉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곡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공연에서의 내 연주는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삐뚤빼뚤한 선의 연속이다. 나중에 녹화된 영상을 보면 진행이 매끄럽지 않고 음의 강약이나 톤이 일정하지 않은 게 보이고 들리지만... 그래도 난 나의 그 서툰 연주가 좋다. 어찌 되었든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으니까. 실수가 있었던들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이런 뻔뻔함이 많이 늘어난 것만으로도 무대에 많이 선 보람이 있었다. 앞으로는 좀 더 잘할 테니까.


내년 봄에 또 공연에 참가한다. 참가자 명단에 이름을 적으며 다시 마음이 두근대는 게 잠시 느껴졌지만, 그건 두려움이 아닌 설렘이라고 믿는다. 낯선 사람들과 합주를 하며 무대를 만들어가는 흥겨움, 그리고 나만의 세트 리스트를 차곡차곡 쌓아 간다는 재미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기타가 나에게 가르쳐 준 가장 중요한 진리, 하다 보면 된다는 그 마법 같은 순간이 이번에도 찾아와 주길 바라며.


다음 공연의 나는 또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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