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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씨 Apr 22. 2024

[학폭변호사]10년후는 모르겠지만 재계약은 하고싶습니다

교육청 학교폭력 변호사의 첫 출근 이야기

신정 다음날인 2020년 1월, 교육지원청으로 첫 출근했다.

첫날답게 정장도 차려입고,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처음 보는 내 쪽으로 일제히 시선을 주었다.


오늘부터 출근하는 '학폭 변호사'라며 인사하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인사한 뒤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꽤 넓은 책상, 새 컴퓨터, 미리 준비해 둔 책상 위 명패. 생각보다 좋은걸?


면접 때 받았던 인상처럼 따뜻한 느낌이었다.


하나를 보면 열 가지를 알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섯 개쯤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학폭팀 소속 과장님도, 교육국장님도, 기관장인 교육장님까지도 모두 입을 모아 '훌륭하신 분이라고 들었다', '이렇게 좋은 분이 와 주셔서 감사하다'며 나를 대단한 인재처럼 여겨주고 반겨주셨다. 내가 그 정도의 능력자든 아니든, 이 정도로 따뜻하게 맞아주는 곳이라면 적어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은 해야겠다 싶을 정도였다.


점심시간, 나를 포함한 서너 명의 전입자들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과장님은 이런저런 질문 끝에 나에게 '10년 후 목표가 뭐냐'라고 물으셨다.


관리자다운 스케일이 큰 질문에 조금은 당황했다. 당시 나는 4년 차 변호사였고, 그동안의 생활은 그저 매일 주어진 일을 숙제처럼 해내기 바빴기에 10년은커녕 그보다 훨씬 더 가까운 미래의 일도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생각한 뒤 질문보다 조금은 가볍게 답했다.


“10년 뒤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1년 뒤에 재계약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냥 재미있게 넘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 답변이었을 뿐, 1년 뒤에도 이곳에서 계속 일하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오래 일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앞일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니까.


하지만 과장님은 이 답변이 꽤 맘에 드신 모양이었는지, 이후에도 나를 만날 때마다 '변호사님이 그때 재계약이 목표라고 했었던 것 기억나냐'며 첫날의 다짐 아닌 다짐을 계속 상기시켜 주셨다.


그 때문이었을까. 이후 나는 재계약을 4번이나 더 한, 5년 차 교육청 학교폭력 변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나에게 무게감 있는 질문을 던지셨던 과장님은 시간이 흘러 교육장님이 되신 지금도 여전히 ‘그때 재계약이 목표라고 하지 않았었냐’며 반겨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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