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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요람 Mar 11. 2022

2. 일상

기억되지 못한 나날들 - 전염병 시대를 위한 즉흥곡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나와 극단 동료들은 로맹 가리의 단편 두 편을 연극으로 각색하여 무대 위에 올렸다. 그중 한 작품은 ‘지상의 주민들’로 로맹 가리의 특유의 절망으로 얼룩졌지만 희망을 향해 비틀거리며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아프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난 이 작품에 시작 부분의 배경으로 쓰기 위해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자료 영상을 서칭 하던 중 아주 흥미로운 풍경을 보았다. 자료 영상은 1945년 7월의 베를린 풍경을 담고 있는 영상으로, 스탈린의 모습과 러시아어 간판들이 여기저기 보이는 것을 보면 아마도 소련의 한 군인이 이 영상을 찍지 않았나 싶어진다. 영상에선 서류가방을 짊어지고 어딘가로 향하는 신사복을 입은 남자, 트램을 기다리는 사람들,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풍경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 현장에서 양동이를 나르며 카메라를 향해 장난을 치는 소녀가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풍경 중 하나는 세 명의 사내아이들이 빤히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들의 눈에서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거친 냉소가 느껴지는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눈빛으로 그들은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시대를 향한 시니컬한 반항의 눈빛인지, 아니면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지친 자들만이 낼 수 있는 체념의 눈빛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단지 그들의 눈빛은 카메라와 필름을 통해 지금 시대의 나와 조우할 수 있었고, 나는 여전히 그들이 눈빛으로 던진 무수한 순간의 의미를 전달받는다.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진 도시의 흔적들을 치워나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재건과 동시에 폭격 이전부터 유지되던 일상들이 혼재되어 있는 45년 7월의 베를린 풍경들은 언뜻 보기엔 절망의 풍경이었다. 모든 것이 전쟁이라는 재난이 휩쓸고 간 적나라한 폐허의 풍경이었다. 성한 건물은 없었고, 건물과 포장도로의 파편이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다. 하지만 동시에 희망의 풍경이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전쟁은 끝났고 이 상처를 추스르며 사람들은 이전과 다르지만 비슷하게 거리로 나와 일상을 살아갔고, 사람들은 다시 힘을 모아 또 다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이 두 형언할 수 없는 풍경의 대비는 내게는 매우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과거에 대한 절망과 동시에 절망을 매듭짓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공존하고 있는 이 오묘한 풍경을 설명하기란 쉽지가 않다.


✳︎


 공연이 취소될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극단은 첫 공연을 준비했다. 그리고 확진자 증가로 공연을 취소하고 몇 주일이 밀린 상태에서 카메라만이 응시하고 있는 텅 빈 객석을 두고 첫 공연이 올라갔다. 이날 나는 다시 스크린을 통해 지나가는 1945년의 베를린의 풍경을 보았다. 그리고 내가 이 영상에서 느꼈던 그 대비가 내가 일하고 있는 극장에서도 느껴지고 있음을 느꼈다. 어찌 되었든 공연이 올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공연의 목적성은 사라져 있었다. 단지 했어야 했던 공연을 했을 뿐이고, 우리는 약속했던 그 무언가를 최대한 성심성의껏 했을 뿐이다. 다만 이 공연에 의미라곤 없었다. 무언가가 행위 되어지고 있었을 뿐.


관객 없는 극장…. 그리고 대상 없는 무대 속에서의 배우들의 움직임들…. 공연을 마치고 분장실이 아닌 무대로 나와 자신이 땀 흘리며 연기한 텅 빈 무대를 바라보는 배우들의 시선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카메라 사이에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설사 영상을 통해 관객을 만난다고 한들 우린 단지 공연을 대처할 무언가를 하고 극장을 빠져나왔을 뿐이었다.


 이렇게 20년도의 절반은 어떻게 흘러 간지도 모르게 흘러갔다. 6월까진 공연을 전혀 하지 못했고, 시간은 이전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이 도시라는 공간, 그리고 문명 속에서의 지속이라는 조건 속에서, 완전하게 새로운 조건이 출몰한 것이다. 이전과 같을 수 없음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우린 이 흐름을 결코 따라갈 수가 없다. 이건 인간이 만들어낸 변수가 아닌 우리의 손을 한참 벗어나 있는 미지의 영역에서 만들어진-전혀 다른 종류의 결과물이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으로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의무적으로 펼치는 방어전이 전부였다.


처음엔 이 변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상황의 본질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하루하루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있음에도 나는 도무지 이런 재난 속의 삶이라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풀 수 없을 만큼 복잡해져 가고 있다. 그렇게 조금은 알 것 같았던 일들이, 또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더욱 복잡하게 재생산되어 우리의 앞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런것들을 해결하고 또 다른 문제점들을 수용한다.


 이런 모습은 비단 개인의 모습뿐 아니라 인류 문명 전체로 볼 때에 있어서도 언제나 인류는 이러한 긴장상태를 마주해왔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려 치면 새로운 문제가 덮쳐오고, 이를 막기 위해 인류는 끊임없이 달려야만 했다. 펜데믹이라는 전 지구적인 충격은 어찌 보면 우리에게 있어 덩어리가 큰 문제일 뿐, 아주 오래전부터 시간의 이면에 흐르던 어떠한 결론이 아니었을지도 생각해 본다. 인류는 지금의 삶을 유지시키는 대가로 언제나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 그리고 그 얼음 밑에는 외부의 약한 자극에도 반응할 준비가 되어있는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들어있다. 이건 인류에 이득이 될 수 있는 무언가 일 수도 있고 인류문명에 해악을 끼칠 무언가 일지도 모른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특정한 계기에 의해 이 무언가는 언젠가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 무언가였다. 그리고 2년동안 지켜봤듯이 이 무언가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던 순간부터 부터 모두의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어 상당히 긴 시간동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 이 바이러스를 해결하고 승리하리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바이러스가 생존을 위해 치명성을 스스로 낮췄고,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할 때까지 기다리는 형국이 되었다.


 과학잡지 스캡틱에서 읽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특집 기사가 문득 떠오른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코로나 바이러스의 경로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보균하고 있던 박쥐나 기타 야생 동물과의 접촉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박쥐는 인간의 평균 체온보다 더 높은 체온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체온은 바이러스가 살기 적합하면서도 박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병균은 동물의 몸에 공존할 수 있는 것이고 박쥐는 이러한 요인들로 인하여 코로나 바이러스를 몸에 지닌 채로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사실 또한 언급을 한다. 바이러스를 보균한 야생동물과 접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산림 파괴나 남획을 통한 접촉이 가장 크며 가능성 또한 높다고 언급한다.


 태초엔 인간의 적이 인간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언어를 알게 된 순간부터, 그리고 소통을 넘어 소유를 정의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의 언어가 생겨나던 순간부터 인간의 적은 인간이었다. 전 인류가 짊어지고 감당하고 있는 이 거대한 사건 속에서, 개인이 하던 모든 일들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개인이나 개인과 관련된 어떤 사회의 문제가 인류라는 전체가 공유하는 거대한 문제로 비약되는 순간, 인간의 목적을 상실한 행동의 뒤엔 무력감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며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길 기원하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나로서는 고요히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지키고 서 있을 뿐이다.    



 때로는 인생이 연극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일상의 사치라 여겨지는 예술은 이 세상에서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단지 나는 이 행위가 삶과 매우 닮아 있기에 여전히 이 일을 하며 남아 있다 연극을 할 수 없는 시대 속에서도 우린 무대에 섰고 쇼는 계속되었다. 삶의 무대에서 우린 진짜가 아닌 코로나 이전의 삶을 어설프게 연기하고 있다. 실제 일상은 매우 작아졌고 일상의 의미는 넓어졌다. 타인과의 접촉은 작아졌고 타인과의 관계의 개념은 넓고도 추상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우리의 삶은 더욱 입에서 입으로 넘어다니는 것보다 더욱 차가우면서도 세속적인 문자로 표현되어 가고 있으며, 불투명한 미래와 전망으로는 이해 될 수 없는 수치상의 세계에서 뜨는 아침 해를 맞이한다. 우리에 일상은 더 이상 사회적 관계로만 이루어져있지 않다. 우리가 겪는 문제점은 이미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흐름 속에 그 영향력을 주고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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