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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격리 중입니다.

한국 입국기.

작은 아이의 하이 스쿨 졸업식을 함께 하기 위해 한국에서 남편이 미국으로 들어왔었다.

4년의 고등학교 생활을 기특하게 잘 마친 아이의 졸업식을 큰 스타디움 관중석에서 지켜보며 벅차오르는 마음에 눈물이 흘렀다.

가족 두 명만이 입장이 가능한 반쪽 졸업식이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졸업식도 없었던 작년에 비하면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었다.

아빠가 한국에 있는 동안 아빠 대신 동생을 잘 챙겨 온 큰 아이가 함께 할 수 없어 아쉬움이 컸지만 하얀 졸업 가운을 입은 아이들 안에 서 있는 작은 아들이 참 자랑스러웠다.

그 많은 아이들 중에 ‘내 아들’만 보였다.

에고 이쁜 놈  


9월에 아이가 대학을 가기 전에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고자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해 일단 동네 드럭 스토어 Walgreens에서 출발 3일 전 drive-through로 하는 코로나 검사 신청을 했다.


예약한 시간에 도착하니 앞에 차가 여섯 대가 대기 중.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차 안에 있는 한 명 한 명 신원을 확인한 후 하나하나 검사 키트를 따로 건네주고 한 명씩 차례로 디렉션을 준다.

키트를 열고 면봉을 꺼내 1인치 이상 콧속으로 넣어 돌리고 반대쪽도 같은 면봉으로 넣어 돌려서 실린더에 넣고 뚜껑을 꼭 잠가 바스켓에 넣어라.

우리 세 식구 그렇게 콧 속이 찡해지는 검사를 하는 시간이 약 30분.

이렇게 길게 걸릴 일이냐며 기다리다 지쳐버린 아들이 한마디 했다.


결과가 나오는데 3일에서 5일 걸릴 거라는 얘기를 듣고 결과가 늦게 나와 비행기를 못 타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았는데 다행히 비행기 타기 하루 전날 밤 , negative 라고 이메일로 왔다.

뭐든 늦는 미국에서 나름 선방인 셈이었다.


출발하는 날, 검사증을 출력해서 큰 아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공항에 내렸다.

썸머 클래스에 이것저것 일이 있는 큰 아이는 이번 한국 방문은 스킵하기로 했다.

잘 지낼 테니 걱정 말라 안아주는 큰 아이.

“너는 잘 지내겠지만 네가 많이 보고 싶을 엄마가 걱정이지.”하니  “걱정 말고 잘 다녀오소” 하며 내 등을 두드려준다.

참 예쁘게 잘 자라 주는 아들이다.


텅 빈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평상시 같으면 북적북적해야 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 스토어들도 다 문을 닫았다.

그리고 늘 자리가 만석으로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는 날개 부분에 한 자리씩 건너서 승객들을 앉혀서 거의 좌석의 반은 빈 채로 출발했다.


한국 마트도 여러 군데고 한인 성당에 다니고 한국 방송 보기가 한국보다 더 쉬우니 내가 살던 한국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잘 못 느끼고 살다가 비행기를 타면 “아 내가 정말 멀리 떨어져 사는구나”하고 깨닫는다.

비행시간 열두 시간 반.

중간쯤 되면 아무 문이나 열고 그냥 내려 버리고 싶어 진다.

너무 긴 비행시간.

작은 아이가 대학을 가는 보스턴에서는 열네 시간이 걸린다니 걱정이 하나 더 늘어난다.


새벽 세시 반에 도착한 인천 공항.

탑승객이 적어서 입국 수속도 금방이다.

코로나 검사지 제출하고 자가격리 앱을 깔고 자가격리 앱 사용 설명을 듣고 입국 수속을 마쳤다.

짐도 금방 나오고 세관 신고도 할 게 없으니 다른 때보다 훨씬 빨리 공항을 나왔다.

근하신년 카드에서나 볼듯한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인천대교를 지나 남편이 살고 있는 판교 집에 도착했다.


도착한 날이 일요일이라 보건소에서도 연락이 없어 하루를

자가 격리 앱으로 체크만 하고 보냈다.

새벽 세시반에 시작한 일요일 하루가 길어도 너무 길었다.


보통은 새벽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하고 여섯 시쯤 공항을 빠져나와 판교에 도착해서 설렁탕 한 그릇 먼저 사 먹고 짐 풀고 친정 부모님께 인사 다녀오고 성당에도 다녀오고 쇼핑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니 하루가 금방 가고 시차 적응도 쉬운데 이번에는 낮잠을 실컷 자고 일어 나도 정오였다.

밖으로 나갈 수가 없으니 너무 긴 하루였다.

새삼 코로나가 미워지는 시간이었다.


월요일 아침.

담당 공무원들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고 오전에 분당구 보건소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부스에 들어가면 유리 반대쪽에서 검사해주시는 분이 실험실처럼 부스에 달린 긴 장갑을 끼고  내 코에 면봉을 넣어하는 검사로 어떤 이는 코를 통해 뇌를 건드리는 것 같은 경험을 또 어떤 이는 코를 통해 안구 뒤쪽을 만지는 경험을 했다는데 나는 그저 내 콧속이 엄청나게 깊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정도 였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월요일 오후 코로나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모든 것이 빠른 한국.

백신 접종도 빨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7월부터는 해외 백신 접종자들의 격리가 없어진다는데 영사관에서 허가증을 받아야 가능한 것 같다.

참 대책 없이 발표된 ‘대책’이라 뒷말이 많을 듯싶다.


이제 두 주간의 긴 자가 격리가 시작이 됐다.

운동을 해도 책을 읽어도 티브이를 봐도 참 시간이 안 간다.

정말 하루가 길다.


그래도 오랜만에 남편과 작은 아이와 셋이 좁은 집에서 오 골 오골 붙어있는 재미가 참 좋다.

아빠를 아주 좋아하는 작은 아이가 아빠 와의 시간을 만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좋다.

배달 음식들을 주문해 먹는 재미도 있고 택배가 파업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번개처럼 배송을 해주는 홈쇼핑에도 푹 빠져있다.


큰 아이와 함께 했더라면 완벽했을 시간.

영상 통화로 만나는 그리운 예쁜 큰 아들.


창살 없는 감옥에 두 주간의 감금을 ‘당하고’ 있다.

유혹이 가득한 바깥세상.

‘못’ 나가니 하고 ‘밖에서’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지는 느낌이다.

막상 격리가 끝나도 별로 할 일은 없겠지만 닫혀있는 문 안에서 마음만의 여행을 한다.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나가는 길에 ‘널려’ 있는 스타벅스가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다.

두 주 후 일요일 열두 시, 나는 스타벅스부터 가야 겠다.

아…  남편 집 1층에 있는 편의점 먼저 가봐야지.

남편 집 근처에는 예쁜 커피숖이 가득하고 맛집들도 많은데 나는 스타벅스와 편의점에 포커스를 맞춘다.

자가 격리가 사람을 참 소박해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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