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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긴 수다

아침의 커피.

오후의 녹차 라떼.


집에 왔어요.

어제 밤늦게 집에 와 오늘 아침에 예정돼 있던 미사 봉사를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일 년을 혼자 잘 지내 온 아들인 것을 알면서도 헤어짐은 여전히 힘들어 공항으로 가는 우버 창 밖으로 멀어지는 아들의 모습에 또 한 번 엉엉 울었다지요.

엄마한테는 아직 애기인 거니까요.


공항에 내려 마저 울 뻔하였으나 비행기가 기체 결함으로 갑자기 캔슬이 됐다며 나오는 방송에 당황하느라 울음은 우버 안에서 끝나버렸어요.


연결 편을 찾고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는 멘트.

한참 후 다시 나오는 멘트는 기쁘게도 연결 편을 찾아서 한두 시간 안에 다시 보딩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확실 한건 아니라고.

마침내 연결 편이 도착했는데 국제선 공항에서 시큐리티 체크를 해야 하니 더 기다리라는 안내.

그리고 연결 편이 왔지만 서비스 준비를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며 Thank you for your understanding and patience라고..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도).


여전히 신기한 광경은 아무도 화내거나 항의하지 않고 눈 마주치면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기 할 일들을 찾는 승객들의 모습이지요.  


그렇게 세 시간 가까이 딜레이가 돼서 늦은 밤에 집에 왔어요.

보스턴 공항에서부터 반달과 나란히 함께 샌프란까지 밤하늘을 날아왔습니다.

늦어지는 시간에 짜증이 나서 계류장을 내다보니 고장 난 비행기가 끌려가는 뒤로 예쁘게 석양이 지고 있었습니다.

천천히 짐들이 내려지고 비행기가 끌려가고 한참 후에 비행기가 새로 들어와 브리지와 연결이 되고 다시 짐들이 실리고 기내식 서비스 용품들이 실리고, 그리고 파일럿이 조종실에 앉아 체크하는 긴 과정들을 지켜보며 내 마음이 급하다고 해서 세상도 나와 함께 급하게 움직이는 건 아니로구나 하는 뻘 생각이 들었어요.

내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는 게 나를 위한 제일 나은 길이구나 하는 ‘깨다~름’을 보스턴 공항에서 얻었습니다.

 

저번 기숙사 룸메이트 윌리엄과 다시 같이 방을 쓰게 된 작은 아이.

윌리엄네 엄마가 아이들 방을 너무 예쁘게 꾸며 줬어요.

집처럼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데요.

자기들이 잘 살펴 줄 테니 작은 아이 걱정은 말라고, 앤드류도 자기네 아들이라고 말해주는데 너무너무 고마워 또 눈물이 찔끔.

아이가 외롭지 않아 너무 다행입니다.

큰 아이나 작은 아이나 베프 부모님들이 참 좋은 분들이세요.


9월은 순교자 성월이라 미사 전 기도로 124위 한국 순교 복자 호칭 기도를 바쳤습니다.

예전에 배티 성지에 갔을 때 순교자들이 고문받던 형틀과 고문받는 모형을 본 적이 있어요.

그걸 보고 옆에 있던 자매에게 “난 저 형틀만 보여줘도 바로 배교를 했을 것 같아”라고 말했던 기억도 나고요.

모진 고문 속에서도 하느님을 등지지 않았던 124위 순교 복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기도를 바치며 잠시 제 신앙의 가벼움에 대한 묵상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미사 중에 다시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복”을 빌었어요.

4316km 멀리 있는 작은 아들과

9065km 멀리 있는 짝지와

옆에 있지만 마음은 멀리 여자 친구에게 가 있는 큰 아들의 복을 빌었습니다.

9028km 떨어져 계신 부모님의 건강도 빌었습니다.

제 신앙은 부끄럽지만  “기복 신앙” 이거든요.


그래도 한분이신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서 부활하셨음을 믿고 있으니 전 그리스도인이기는 합니다.


#일요일 #일요일의긴수다 #순교자성월 #보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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