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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 soap.

4년 전의 글.

이번 크리스마스 반모임 때 반장님 싸모님(선물을 받았으니 싸모님이라 불러드리기로 ..땡큐 요안나)이 선물해준 hand soap. 핸들을 누를 때마다 흥겨운 캐럴음이 난다.


좁은 1층 화장실에 울리는 기분 좋은 캐럴음에 좋은 향기까지.

작은놈은 누를 때마다 손이 오그라드는 것 같다 툴툴거려서 옆에 다른 비누 놔주고 나 혼자 뽕뽕 눌러 손을 씻으며  흥겨운 음에 엉덩이를 흔들거리기도 한다.

이 작은 아이가 주는 경쾌함이 참 크다.


요새 시간이 날 때마다 동네 호수공원가를 걷다 온다.

사 년 가까이 차만 타고 돌아다니다가 (그동안 엘리자베스 파크가 그리 좋은 곳인지 몰랐다) 자유 도보를 시작하고 보니 걷는다는 일이 이리도 좋은 일이라는 걸 거의 반세기 만에 알아간다.

한국 살 때도 진정한 오너드라이버는 삼보 이상 걷지 않는다는 철칙을 가진 한 언니를 하늘처럼 보며 따랐기에 이제 시작한 ‘걷는 일’이 무지 새롭고 즐겁다.


호수가를 걷는 동안 제일 좋은 건 내가 걷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운전할 때 뒤차를 신경 쓰는 것처럼 다른 이들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최대한 속도를 빨리해서 걷다가 예쁜 풍경이 눈에 들어오면 속도를 줄인다.

빨리 걸을 땐 쓕쓕 뒤로 지나가던 풍경이 천천히 내 옆에 멈춘다. 내 걸음이 멈춰진 곳에 호수에 비친 석양이 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며 보던 풍경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아름답고...아날로그적이다.

그 풍경을 디지털화된 카메라는 담아내지 못한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

완급을 조절하며 산다면 내 옆에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놓치는 일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어얼리 어답터 남편이 한참 전에 사서 보내줬던 애플 이어폰. 전동칫솔모도 아니고 이게 모양이 뭐냐고  툴툴대며 서랍 속에 박아뒀던 그 무선 이어폰을 끼고 -남편아. 땡큐. 요거이 너무 좋은 거였네-음악을 최대한 크게 들으면서  빠르게 천천히 내 속도를 조절해가며 걷는 그 시간이 요즘의 내 힐링타임이다.  


다시 손비누 얘기로.

이 비누 윗면에 press라고 쓰여있다.

이걸 볼 때마다 pressure 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많은 pressure들이 나를 press 한다.

그때마다 짜증이나 원망 대신 pressure이 press 할 때 이렇게 나 스스로 즐거운 음악소리를 내면 나에게서도 이 비누처럼 좋은 향기거품이 나오지 않을까.

그러면 한 살 한 살 좀 더 곱게 나이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내게 새로 생긴 이웃 중에 몇 달 전 한국, 내가 살던 수지에서 이사 온 밝은 자매가 있다.

무척이나 낙천적인 사람이다.

20년 넘은 그린면허 소지자라는데 운전을 못한다.

그런 그녀에게 세 달 먼저 이곳에 와서 일을 하고 있는 그녀의 남편이 차를 사줬단다.

그 차로 매일 큰길도 못 나가고 동네 골목길을 돌아 돌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온다.

자기 차는 자전거보다도 천천히 다니지만 괜찮다며 자긴 할 수 있다고 늘 웃는 얼굴로 말하는 그녀를 보며 요즘 배우는 게 참 많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다


그녀는 이미 저 손비누처럼 받는 스트레스를 기분 좋은 소리로 바꾸어 좋은 향을 내고 있었다.


늘 좋은 사람들을 내게 주시는 하느님의 또 하나의 선물이다.  그래서 ‘또 한 번’ 감사 기도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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