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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다른, 나의 블로그 글

온라인 콘텐츠 도용 소설

by 김은경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이며, 등장인물과 설정은 모두 창작된 것입니다.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정신이 없었다. 아침부터 큰 아이가 준비물을 못 챙겼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고, 그래서 문방구에서 준비물을 사서 교문 앞까지 데려다주고 왔다. 바쁘게 나가는 바람에 핸드폰을 두고 갔더니 부재중이 5통이나 있었다. 이제는 남편이 중요한 서류를 집에 두고 갔다며 사무실로 가져다 달라는 것이 아닌가. 속으로 욕을 욕을 하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다행히 남편의 직장은 차로 30분. 아침부터 설친 탓에 뱃속은 꾸르륵꾸르륵 거린다.


출처 : 성수동 르셀 베이커리 소금빵


서류를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로 커피와 소금 빵을 사서 집에 도착했다. 향긋한 종이봉투를 열어 소금 빵을 입에 넣으려는 순간, 또 벨이 울린다. 학씨... 번호를 확인하니 친하게 지내는 학원 원장이다. 같은 프랜차이즈로 만나 처음에는 어색하게 인사하며 존대를 했지만, 나이가 같은 걸 알고는 어느새 말을 놓게 되었다. 하루에 1번 이상 전화하는 사이로 발전해, 이제는 친구처럼 편한 사이였기에 우물우물 씹어가며 전화를 받았다.


ㅡ 원장님~~ 아침 댓바람부터 웬일이래유?

ㅡ 너 이럴 때가 아니다. 지금 노트북 열어서 내가 말하는 학원 검색해 봐.

(우물우물) 왜? 무슨 일 있어?

ㅡ 0000 검색해서 그 학원 블로그 들어가 봐. 그리고 첫 번째 글 클릭해.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귀찮았지만 얼른 노트북을 켰다.


ㅡ 응. 클릭했어.


오잉?? 문장 구조, 문체, 말투까지 낯이 익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내가 오랜 시간 공들여 작성한 블로그 글과 거의 같았다. 차이점이라면 마지막 문장에 붙은 문구 하나.


"우리 학원은 이런 교육 철학으로 아이들을 키웁니다."


어이가 없었다. 글의 주인만 바뀌어 있을 뿐 내가 2주 전에 쓴 글이 아닌가.


ㅡ이거 어떻게 알게 됐어?

ㅡ00맘 카페에 학원 홍보 글이 올라와서 알게 됐지. 내가 키워드 등록해 놨거든. 낯짝도 두껍다. 니 글을 완전 베꼈어.

ㅡ그렇네...


코로나19 마스크 줄 서기 (출처 : 청담엄마의 일상 블로그)


나는 코로나 시기에 학원을 오픈했다. 내가 학원을 오픈할 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코로나가 올 테니 학원 오픈은 참으라고. 무서운 빌런의 등장을 몰랐기에 나는 용감하게 대출을 받았다. 그리고 등원하는 아이들은 없는데 매월 대출금과 상가 월세를 내야 했다. 그렇다. 나는 맘고생을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그 어려운 시기를 이겨냈던지라 지금의 경기 침체는 오히려 세발의 피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학원은 날이 갈수록 더욱 잘 되었다. 1호 점을 성공시킨 후 인근 동네에 2호 점도 오픈했다. 이제는 2호 점까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학원이 잘될 수 있었던 비결을 사람들이 묻는다. 바로 블로그다.


나는 사실 컴퓨터의 '' 자도 모르는 '컴알못 여자'다. 그런데도 "앞으로 블로그는 꼭 해야 합니다."라는 전문가의 말을 듣고 돈을 주고 배웠다. 지금도 5일마다 블로그에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소재가 없으면 동네 맛집, 아이들과 가 볼만한 관광지 등 학원의 주 고객인 어머니들이 검색할 만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멀리서도 검색으로 찾아올 만큼 입소문이 나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블로그를 보고 방송사의 요청으로 인터뷰도 했고, 꽤 이름 있는 전 과목 인강 사이트에서 강의 제의도 받았다. 블로그 '하루 방문자 수'도 점점 늘었고, '서로 이웃' 신청도 많아졌다. 비밀 댓글로 수업 문의뿐만 아니라 학원 운영 노하우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고 있다.


출처 : 916 디자인 블로그


그런데 내 블로그를 같은 과목 원장들이 많이 본다는 건 알았지만 저렇게 개념 없이 내용을 베낄 줄 누가 알았을까. 먹던 빵을 마저 욱여넣고, 0000 학원 블로그 글에 비밀 댓글을 남겼다.


ㅡ원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김유정 수학학원 원장입니다. 원장님의 글이 2주 전에 올린 제 글과 너무 비슷해서 글을 남깁니다. 블로그 글을 내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댓글 아래에 내 블로그 글 링크도 올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답장이 없다. 하루 종일 잠잠하더니 잠자리에 막 누우려는 순간 알림이 울렸다.


ㅡ원장님 죄송해요.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학원 오픈 전부터 알고 있었고, 제 교육관과 비슷해서 원장님의 블로그를 많이 참고하고 있었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글을 당분간은 내리기 어려울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00맘에 홍보 글로 블로그 글을 올린지라 이번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홍보 기간이 지나면 글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아량을 베풀자.


ㅡ네 원장님. 알겠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꾸준히 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글 하나 올릴 때마다 몇 시간씩 걸린다. 문장을 다듬고, 또 다듬는다. 바빠서 휘리릭 올릴 때도 있지만, 이후에 몇 번이나 글을 다시 읽으며 수정을 한다. 수업 사례를 넣고, 학부모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과 말투로 고친다. 글에 어울리는 사진을 찾고, 사진 크기도 신경 쓴다. 글씨체, 글자 크기, 이모티콘도 신경 쓰고, 글자색도 적절하게 넣는다. 글에 맞는 이미지도 직접 만들어서 메인 사진으로 설정하고, 우리 학원이 검색 상단에 뜰 수 있도록 키워드까지 고려한다. 이것은 일종의 고통이자 출산에 가깝다.


출처 : ^-^ 블로그


그렇게 완성한 글을 누군가 '복사 + 붙여넣기' 하나로 가져다 쓴다는 건, 내 시간을 도둑맞는 일이다. 출처를 밝히지 않고 퍼가거나, 자신이 직접 쓴 글인 양 가져가는 것은 내 노동을, 내 경험을, 내 철학을 가져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블로그는 공개된 공간이니까 내용을 가져다 써도 괜찮다고. 하지만 아니다. 블로그 글도 저작물이다. 창작자가 만든 고유한 콘텐츠이며, 함부로 복제하거나 가공해선 안 된다. 특히, 상업적 목적으로 무단 활용하는 것은 명백한 저작권 침해다. 자신의 학원을 홍보하는 글이야말로 가장 직접적인 상업 콘텐츠가 아닌가.








홍보 기간이 지나자 0000 학원 원장은 글을 내렸다. 도용당했던 날의 분노는 사라졌지만 그 이후로 글을 쓸 때마다 주저하게 된다. "또 누가 베끼지 않을까?" 하는 불신이 남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냥 인터넷 글인데,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하지만 이건 단지 글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예의에 관한 문제다.


창작자가 위축되지 않고, 정당하게 존중받는 세상! 그래야 더 좋은 콘텐츠가 넘치는 사회로 이어질 수 있다.


출처 : 일상기록탐험가 블로그


오늘도 노트북 앞에 앉았다. 커피를 호로록호로록 마셔가며 아이들 사진을 보니 웃음이 난다. 아이들과 매일 호흡하는 일이 힘들 때도 있지만 보람되고 즐거울 때가 더 많다. 감동을 받아서 글을 쓸 때도 있지만, 글을 쓰다 보니 아이들의 존재, 내게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가 더 진하게 밀려올 때도 있다. 6월의 공기는 무덥지만, 하늘은 파랗구나. 겁내지 말고 또 용기 있게 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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