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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만보 Jun 21. 2023

사소하지 않은 나의 슬픔

이상한 나라의 할머니-밥 먹다가 생각하는 죽음 

아주 오랜만에 딸과 함께 경산에 다녀왔다. 경산은 나의 멘토이신 박홍규 교수님이 하루종일 글 노동을 하고, 아내와 함께 텃밭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곳이다. 두 번째인 이번 방문에서 충주 마리스타 수도원 원장님인 도밍고 수사님, 영남대 백교수님도 만났다. 좋은 사람은 다 모인 셈이다. 만나고 나서 "기 빨렸다"라는 느낌이 드는 이들을 나는 정말 매우 싫어하는데, 이 자리에서 만나는 분들은 다 "선한 영"의 소유자라서 1도 피곤하지 않다. 


박 교수님의 찐팬인 우리가 모인 원래 목적은 "고희 축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우리가 뭔가를 할 틈도 없이 사모님과 교수님은 한상을 준비해주셨다. 두 분이 땀을 흘리며 준비하신 가마솥 곰탕(일명 털보표 곰탕. 교수님 수염 때문이다), 텃밭에서 나온 갖은 수확물, 직접 담근 된장, 묵은김치, 텃밭에서 나온 살구, 바질페스토, 삶은 완두콩, 비름나물, 깻잎졸임, 그리고 털보표 캡슐커피(사모님이 캡슐을 스틱 커피인 줄 알고 사오셨다는데, 뒤늦게 정체를 알고 당근에서 머신을 구입하셨단다)까지. 얼마나 알뜰하고 사랑이 넘치는 밥상이었는지 백 교수님은 (그날 저녁에 카톡으로) 눈물을 삼켰다고 털어놓았다. 


(사진 백승숙)


우리 이야기의 주제는 처음엔 "책"이었다. 책쓰기, 책만들기, 책팔기, 책읽기, 책읽는 사람들, 책 안 읽는 사람들... 그러다가 내가 요즘 병환 중인 엄마를 돌보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우리의 관심은 나이듦과 죽음으로 급발진했다. 마침 두 분이 전날 밤에 <나의 사소한 슬픔>이라는 영화(넷플 <빨간머리 앤>에서 앤 역을 맡았던 에이미도 나온다고 한다)를 보셨다면서, 영화 이야기를 조금 들려주셨다.     



인류 역사상 가장 당연한 사실 ‘우리 모두는 죽는다’ 

“그런데 왜 다들 죽으려고 난리지?” 

언니가 ‘자살시도’를 했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작가라면서 글 한 줄 쓰는 것도 힘겹고, 이혼 위기로 엉망진창인 동생도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다정한 남편에 해외순회 공연까지 다니는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인 자기가 도대체 왜? 아빠처럼 그렇게, ‘똑같이’ 죽고 싶었던 거야? 그러고도 정신 못 차리고 엄마, 형부 몰래 ‘스위스’로 데려다 달라고? 언니는 왜 죽고 싶은 걸까? 자살할 사람은 정해져 있는 걸까? 언니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시처럼, ‘나의 사소한 슬픔’을 그 누구에게도, 나에게조차 토해낼 수 없었던 걸까?

(출처: 다음 영화) 


이즈음의 엄마를 보면서 나는 10년 후가 될지 20년 후가 될지 장담하기 힘든 "거동마저 불편한" 나의 가까운 미래를 상상한다. 하지만, 실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내가 못 걷는다고? 내가 말을 잘 못 알아듣고 외계어 같은 소리로 말을 한다고? 내가 혼자 샤워하지 못한다고? 내가 밥을 먹을 때마다 이것저것 흘린다고? 내가 화장실에 혼자서 못 간다고?" 도무지 상상할 수 없다. "지금의 내가 저런 내가 된다고?!" 그래서일까, 잠든 엄마 옆에 자리를 깔고 누우면 정말 이상하게도 잠이 쉬이 오지 않는다. 아주 잔잔한 슬픔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도리어 내 일 같지 않은 슬픔이 밀려들었다 빠져나갔다 한다.    


엄마의 저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 되는 걸까, 그러면 그때 내 옆에는 누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결론은 늘 같은 지점을 향한다. "내 의지로, 평소처럼, 자다가 세상과 작별하고 싶어" 누군들 그런 마음이 없겠는가. "교수님, 저는 그래서 우리 동서랑 돈을 모아서 스위스 가려구요. 존엄사." 그러자 옆자리 수사님이 거드신다. "가톨릭에선 존엄사란 말을 안 써요" 아, 그렇겠구나. 하필 그 자리엔 (딸을 빼고) 모두가 비슷한 생의 여정을 지나는 중인 이들이 모인 터. 우리는 우리의 남은 슬픔을, 예견되는 슬픔을 어떻게 안고 살아갈 것인가. 


준비하면 좀 나아질까, 그러나 슬픔만큼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나의 사소한 슬픔"은 "절대 사소하지 않은 나의 슬픔"을 말하는 반어법일 것이다. 결코 단련되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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