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옆으로 이사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일상엔 큰 변화가 없다. 오직 아버지의 몫이었던 어머니 간병을 딸과 나누어 지는 것밖에는 말이다. 이제 만 한 달, 어머니야 하루종일 방에만 계시니까 공간의 변화에 민감하지 않지만, 아버지는 다르다. 요즘 아버지는 주변을 산책하거나 차를 살살 몰고 나가 길을 익히는 중이다. 이사온 처음 주말인가, 아버지가 빨간불 파란불 무시하고 막 달리는 바람에 기겁을 한 뒤로 "할아버지 운전 위험해" 하고 잔소리 몇 번 했더니 요즘 좀 의기소침해지셨다. 그래도 절대 운전대를 놓을 생각은 없으시단다.
아버지는 운전을 좋아한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만 해도 아버지는 서울-부산, 서울-마산, 서울-강원도를 하루에 오고갔을 만큼 운전을 잘하셨고 건강하셨다. 그 덕분에 나는 지금은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을 말그린 포니(초의 현대 포니다) , 피아트(이건 이탈리아 산인데 아부지가 이걸 왜 샀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언젠가 물어봐야겠다), 당시로선 유일했던 무개차인 '폼 나는' 짚차 등등 이것저것 다양한 차종을 타볼 수 있었다. 그때 사진 중엔 유난히 아버지가 자동차 옆에 서서 포즈를 취한 게 많다.
아버지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건 수영이다. 아버지는 양정고에 다닐 때 1500미터 수영선수로 활약했다. 한동안 (지금은 없어진) 장충수영장을 운영하시기도 했다. "장마철의 한강도 45도로 건너갔어" 할 만큼 아버지의 수영부심은 대단하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가장 멋진 모습은 푸른 동해 물살을 가르며 멀리 멀리 나아갈 때다. 그런데...
이틀 전, 아버지에게 뭔가 즐거운 소일거리를 드리고 싶어서 자유수영 월정권을 끊어드렸다. 지팡이에 의지하긴 해도 건강관리를 잘해온 덕에 아무도 "곧 아흔"으로는 보지 않는다. 수영복, 물안경, 수영모에 이것들을 넣을 민트색 이쁜 가방까지 풀세트로 장만해서 회원권이랑 함께 드렸다.
"아버지, 수영장 바닥 걸을 때 조심하셔요."
"아버지, 너무 많이 하지 마세요."
"아버지, 운전 조심하세요."
아버지 귀가를 기다리는 시간은, 겨우 2시간 남짓인데도, 정말 조마조마했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아버지가 돌아왔다. "오랜만에 수영하니까 너무 좋았다"고 하시면서 "손녀딸이랑 같이 갔으면 창피할 뻔했어!"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어, 무슨 일이지?
아버지는 (왕년의 선수답게) 준비운동을 착착, 멋지게 하고, 입수하셨단다. 그리고 보란듯 멋지게 자유영을 시작했는데, 이게 웬걸, 몸이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거다. 아버지는 너무 놀라서, 얼른 평영을 시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몸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는 거다. 오직 두 팔만 물을 가를 뿐, 두 다리는 여전히 수면 아래서 휘적대었다고 한다. 너무나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 않아서, 그리고 엄마 간병하는 12년 동안 근육 손실이 너무 많이 되어서, 아버지의 몸은 물에 뜨지 않는 몸이 된 것이다. 하는 수없이 아버지는 강습용 보드를 가져다가 발차기부터 연습하셨다고 한다.
"아령도 들고 근육 운동을 해야겠어."
아버지의 아침 맞이가 조금 밝아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간병생활에 지친 아버지는 이제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는 단 2시간의 힘으로 활기를 되찾는 중이다.
"내일은 20분 더 하고 올게!"
아버지는 곧 잠수함 신세를 벗어나 수영선수의 포지션을 되찾을 거다. 다시 한번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실 거고, 멀지 않은 날 동해에 모시고 가면 예전처럼 바다를 누비실 거다. 꼭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