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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지 Apr 20. 2020

'쿨병' 시누이  

남동생이 결혼했다

남동생이 서른다섯을 넘겼을 때, 나는 그 애가 결혼을 안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나에게 말했다. 결혼과 육아의 현실이 어떤 것인지 기혼 친구들에게 익히 들어 안다고,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을 이루려면 얼마나 많은 경제적, 정신적 고충을 치러야 하는지 안다고 했다. '원래 여자는 스물여섯에 결혼하는 거야'라는 부모님 말씀에 따라 눈 가려진 경주마처럼 달려 결혼에 골인한 나와는 달리, 남동생은 부모님 등쌀에 굴하지 않고 비혼 생활을 지속했다. 나는 내심 그 애를 부러워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참 현명해. 자기 인생 즐기며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그러던 동생이 지난해 결혼을 선언했다. 어떻게 만났는지 얼마나 오래 사귀었는지 연애담을 들을 겨를도 없이 결혼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커플은 바빴다. 식장과 '스드메'를 정하고 세간을 고르느라 밥 먹을 새도 없이 발품을 팔았다. 십수 년 전 결혼해 자기 가정을 꾸린 누나(=나)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기뻐하고 축하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면 되었다. '시누이' 될 준비.     


아이들 어릴 동네 엄마들끼리 모여 시집 이야기 배틀을 시작하면 아라비안 나이트 저리 가라였다. 친정과 다른 시집 문화에는 각색과 연출과 과장이 더해졌다. 이어지는 추임새는 방청객 수준. 명절 지나고 만나면 험담 수위는 더 올라갔다. 건너 건너 아는 집 이야기까지 나오니, 돌아보면 그 얘기만 다 모아도 '대한민국 시집 망언 채록집' 정도는 낼 수 있었을 듯. 하지만 나와 하소연을 나누던 지인들은 이제 다들 결혼 이십 년 차를 바라본다. 시집 이야기도 안 한다. 아이들이 십 대를 훌쩍 넘겼으니 키운 만큼 더 키우면 곧 우리가 시어머니 될 각이다.   


입덧은 '니 나약한 정신력 탓'이라 했다는 누구네 시모, 며느리 물건을 훔쳤다던 누구네 시부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들, 다 잊었다. 명절에 만나면 인사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는 누구네 시누올케 이야기도 잊었다. 드라마에 나올 법한 강렬한 디테일을 오래 기억하는 건 정신건강에 해로우니까. 대신 내 남동생이나 내 아들이 결혼하면 올케나 며느리에게 말을 조심하겠다고, 불편한 상황은 만들지 않겠다고 때 이른 다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드디어 내가 시누이가 되다니! 그동안 생각했던 시누이상(像)을 실천하기로 했다.  


첫 번째, 올케에게 불필요한 연락을 하지 않겠다. ‘불필요한’이라는 단어가 모호하지만, 적어도 동생 와이프와 빨리 친해지려고 애쓰지는 않을 것이다. 가끔 인사 전화 정도는 할 수 있겠다. 평소 나는 의아했다. 아들이 결혼하면 시부모는 아들에게 연락하는 대신 며느리에게 연락해 아들의 안부를 묻는다. 부부는 일상을 대리하는 관지만(남편 위임장 들고 여기저기 다녀봤는데 법적으로 그렇다), 시부모에게 남편 안부 전하려고 결혼 여자는 없다. 궁금한 게 있다면 아들에게 직접 연락하시는 게 낫다. 남동생도 마찬가지. 그의 안부가 궁금하면 직접 연락하는 게 맞다.

 

시집에서는 은연중 며느리에게 집안의 ‘윤활유’ 역할을 기대한다. 시부모, 남편의 형제와 좋은 관계를 맺는 걸 넘어 생일, 제사, 휴가를 미리 계획하는 등의 이벤트를 챙겨주길 바란다. 무뚝뚝하고 정 없는 아들에게 못 받았던 효도를 며느리가 대신해 주셨으면 바라시는 건지. 며느리는 대개 친정 일까지 챙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결혼한 여자는 바쁘다. 아들 일은 아들에게, 남동생 일은 남동생에게, 그게 며느리와 올케를 돕는 방법이다.


두 번째, 명절에는 올케를 만나지 않겠다. 나의 친정은 차례를 모시니 명절이면 올케는 분명 내 부모님과 하루 이틀을 함께 보낼 것이다. 그거면 됐지, 남동생과 올케가 쉬어야 할 연휴에 나는 끼고 싶지 않다. 그럼 언제 만나냐고? 부모님 생신에 만나거나 따로 날을 잡으면 되지, 굳이 피차 며느리 노릇하느라 피곤하고 번잡스러운 명절에 보고 싶지는 않다. 사실 내 꿈은 명절에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도 안 만나는 것이다. 내 꿈에 한 발짝 다가가기 위해, 올케가 아무리 나를 보고 싶다 한들 명절에는 만남에 응하지 않을 계획이다!


남동생이 결혼한 지 곧 일 년인데 난 아직도 올케에게 말을 못 놓고 있다. 엄마는 내 성격이 이상하다고 했다. 올케에게 존대하고 싶고, 카톡은 하지만 연락처는 안 받고 싶다고 하는 나보고 ‘쿨병’ 걸렸냐고 했다. 낯 가리고 예의 차리는 성격 탓이든 쿨병 때문이든 간에 나는 1,2년은 올케를 되도록 안 만나고 싶다. 한동안은 동생 커플이 연애할 때처럼 지냈으면 좋겠다. 아니 연애할 때보다 더 행복하고 오붓한 나날을 보냈으면 좋겠다. 길고 긴, 꿀이 뚝뚝 떨어지는, 세상에 단 둘만 있는 듯한 신혼이었으면 좋겠다.




Photo by Anthony DELANOIX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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