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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하는 토끼 Jul 19. 2020

명상은


생전 처음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였다. 바로 다음날 한의원에 가야했다. 요령 없이 한 자세로 일을 계속했더니 허리가 아팠다. 도수치료를 받는데 한의사 선생님께서 허리 근육이 많이 뭉쳤다고 했다. 뭉친 곳을 저격해 누르시는데 너무 아프니깐 웃음이 나왔다. 선생님께서 당황해하시는 틈을 타 질문을 했다.      


“선생님, 근데 근육은 왜 뭉치는 거예요?”

“긴장을 많이 줘서 그래요.”

“아.. 근데 근력 운동할 때도 긴장을 많이 주잖아요. 그거랑은 무슨 차이예요?”

휴식의 차이죠적당히 쉬면서 긴장을 주면 근육이 길러지고 쉼 없이 계속 긴장 주면 경직이 돼요.”      

짧은 대화에서 명상을 설명할 절묘한 비유를 발견했다.      






운동과 노동의 공통점은 힘을 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택적으로 쉴 수 있는 운동은 끝나고 활력을, 그렇지 않은 노동은 피로를 남긴다. 우리의 마음도 똑같다. 한 가지 마음 자세에 계속 힘이 들어가면 경직과 고통이 유발된다. 그래서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자세를 바꾸지 못하고  과민하거나 둔감한 반응이 나간다.      


경직된 마음 구조는 무의식에서 작동되기 때문에 선택적으로 쉬기 어렵다. 무의식은 말 그대로 의식의 통제권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착한 아이 자세를 무의식적으로 취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날아오는 펀치에도 친절한 미소로 맞아준다. 그래서 똑같이 착함을 쓰더라도 의식적으로 쓸 때는 뿌듯함이, 무의식적으로 쓸 때는 피해의식이 남는다.  






명상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도 ‘명상은’ 하고 운을 띄우면 비움과 휴식을 떠올린다. 맞다. 명상은 쉬는 것이다하지만 '무엇으로부터'의 휴식인지 알아야 한다. 몸의 아픈 부위를 알고 정확히 그 부분을 쉬어 주 듯, 긴장된 마음 근육으로부터 쉬어 주여야 한다. 그 휴식이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자신의 자세를 자각할 기회를 준다.      


초월 심리학계의 아인슈타인이라고 불리는 켄 윌버는 통합 명상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깊은 의식 차원을 경험하더라도 자신의 무의식에 숨은 지도를 볼 수 없다. 마음 챙김 할 무의식적 대상을 명확히 알고 그것을 통합할 때 성장을 할 수 있다유명한 명상가들에게서 정신적 미성숙이 드러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나의 명상 선생님도 오랫동안 다양한 수행을 하시며 많은 절정 경험을 체험하셨다. 우리나라의 명상 대가로부터 깨달음의 인가를 받으시고도 누군가를 가르칠 확신이 들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때 심리를 공부하면서 자신의 무의식을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온전한 확신이 들었다고 하셨다.      



     




주위에서 종종 “너무 산만해서 명상을 하기 힘들다.”는 말을 듣는다. 그 말속에 명상은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있는 듯하다. 사실 평온하기 힘들 때 명상하는 것이 명상을 가장 잘하는 것이다. 


내 마음이 멈출 수 없이 노동을 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 잠깐만 멈춰보자.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몸에 힘을 빼면 마음의 힘도 같이 빠진다. 들숨에 몸의 긴장을 알아차리고 날숨에 힘을 뺀다. 그리고 스쳐가는 생각과 감정을 판단 없이 그저 지켜보자. 그 관찰에서 내 마음 자세를 보여줄 퍼즐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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