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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일 없이 달리기 Sep 15. 2023

정리의 기술

내 몸 사용 설명서

 *[별일 없이 달리기 magazine]

평안한 달리기를 추구하며 ‘달리기와 일상’에 대한 주제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나는 29살을 맞이하자마자 갑작스럽게 독립을 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아홉수였을까? 전셋집을 알아보고 계약을 하는 것까지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져야만 했고, 나 혼자서 일을 처리해야 해서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마지막날까지도 전세대출이 나오지 않아서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잔금일 오전까지 대출이 안 나와서 부동산에서 대납을 해주고, 오후에 실행된 대출로 이사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첫 독립을 향한 여정은 순탄한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결론적으로 당시 시세대비 좋은 집도 얻었기도 했고, 무엇보다 정말 '어른'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경험이 되었던 것 같다.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던 첫 독립의 여정의 시작을 지나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해졌을 무렵 깜짝 놀랐던 부분이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아마 독립을 해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대부분을 공감을 할 것이다) 첫째는 돈 나갈 때가 정말 다양하다는 것(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둘째로는 치워도 끝이 없는 살림살이들이다.

 돈이야 구체적인 '숫자'이니 더 벌거나 아끼면 해결책이 어느 정도 서는 문제였지만 정리에 대한 해결책은 명확하게 답이 서지 않았다. 남들처럼 살림 꿀템도 사보고 짐들을 안 보이는 곳에 처박아둘 수 있는 리빙박스도 적잖이 사봤다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자취를 시작한 지 1년 여가 지났을 즈음에는 물건을 정돈하는 것보단 버리는 것이 정리라는 생각에 쓰지 않는 물건들을 과감히 버리기 시작했다. "언젠간 쓰겠지"하는 미련이 집안과 내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짐을 정리할 때에는 나름의 확실한 기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두 가지 기준을 만들었다.  먼저 "과거 6개월 동안(혹은 1년) 이 제품을 사용한 적이 있는가?" 그리고 "향후 6개월 동안(혹은 1년) 구체적으로 사용할 계획이 있는가"이다. 이 두 가지 질문모두 "No"라면 과감히 정리 리스트에 올리는 편이다.

 물건을 버리면 버릴수록 마음은 홀가분해졌다. 요즘에도 1년에 한두 번은 날을 잡아 정리를 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의 삶이 단조로워지고 통제가 가능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상쾌해진다.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는 삶이 이런 것일까?


 달리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짐이 는다. 내가 추구하는 달리기는 '별일 없이 달리기'인지만 삼천포로 빠져 불필요한 소비를 늘리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신발 바꿔 실력향상을 기대한다거나, 보충제를 먹어 신체의 기능을 향상하고자 하는 욕구가 그런 것 들이다. 물론 이런 과정도 달리기를 즐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취미는 취미다. 취미에 너무 계산적 이게 되면 취미가 아닌 일이 된다. 구매욕구나 수집욕구는 식욕만큼이나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가 아닐까? 그래서인지 나는 취미에서만큼 삼천포로 빠지는 것이 매우 유쾌한 방법의 놀이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특히 몸에 좋은걸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기능성 러닝화를 사본다던지, 몸에 좋은 보충제를 사는 소비패턴이 두드러진다는 점이 나의 소비 특징인 것 같다. 나는 매일 각종 영양제를 섭취하고 있는데, 건강을 위해 먹는 영향제 종류만 서너 가지에다가 섭취하는 알약 수는 거의 열 알은 족히 넘는다. "비타민B는 활력과 체력증진에 좋아요", "오메가 3은 혈압 조절에 도움이 되어요" 세상에 몸에 좋은 게 뭐 이리도 많은 걸까? 그리고 이리 간편하기까지 하다니. 우리 세대는 얼마나 오래 살지를 걱정해야 하는 세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돈을 벌어야 하는지가 중요한 세대라는 것이 간접체감이 된다.


 하지만 결국 몸에도 정리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나의 몸은 영양 과잉공급여서 문제가 생겼지 영양실조로 트러블을 겪고 있지는 않다. 나의 '별일 없이 달리기'에 가장 중요한 건 체중을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이라는 걸 나는 인정한다. 열 평도 되지 않는 원룸에 양문형 대형 냉장고를 넣고 그 안에 식료품을 가득 채운 꼴이 내 몸의 상태가 아닐까? 이런 내 꼴이 조금 우습기도 하다. 1~2주일 정도는 물만 먹는 것이 좋은 음식과 영양제를 섭취하는 것보다 내 몸을 정리할 시간을 준다는 의미에서 내 몸뚱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만 같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실제로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결국 내 몸에 잘해주려고 했던 행동들이 실질적으로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사실 우리가 몸에게 해주어야 할 건 '잘해주는 것'이 아닌 '못해주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내가 먹는 영양제로 내 몸을 잘 챙겨주기보다는 정크푸드, 음주 등 일반적으로 먹어선 안될 음식들을 먹지 최대한 먹지 않는 것이 나의 달리기 생활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최근 이런 생각을 갖고 있을 무렵 내 생각을 다시 한번 견고히 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잘 지내요? ㅋㅋ"

"나 결혼함~"

"OO 씨랑 같이 한번 보려고 하는데 △△씨도 시간 돼요?"

약 3년 전 같이 일을 했던 직장 동료 C 씨였다. 나랑 같이 일한 기간은 1년이 조금 넘었고, 좋은 사람이어서 당시에 서로 잘 지내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친하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사이였다. 서로 각별한 사이가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C 씨가 이직을 하고 나서 우리는 3년간 제대로 된 문자도 서로 주고받지 않았다.

 내 옹졸한 마음이 들통날까 봐 두렵지만 솔직한 고백을 해보자면, 그 카톡을 보고 조금 괘씸한 마음이 들던 게 사실이다. 3년 만에 나타나서 하는 처음 마디가 청첩장 얘기라니.. 내 귀에는 그 말이 '나의 결혼을 축하해 줘~'라는 순수한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평소에 서로 안부를 묻는 문자 한 두통만 주고받았어도 보다 가볍고 진실된 마음으로 축하를 해주지 않았을까. 3년 만에 나타나 얼마나 좋은 식사를 대접하는지가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다.

 나는 새해가 되면 평소에 바쁜단 핑계로 연락을 하지 못한 지인들에게 안부를 먼저 묻는다. 좋은 선물을 주거나 직접 만나서 밥 한 끼 하지는 못하더라도 가끔 이렇게 안부라도 묻는 것이 예의이고 서로의 추억을 다시 한번 상기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당신이 내 인생에서 그저 거쳐간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이런 식으로라도 간접전달하고 싶은 의미가 컸다. (사실 C씨도 새해 안부 인사의 대상이었다지만, 연락이 매년 일방적이었다는 것이 섭섭했나 보다.)


나는 복잡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집정리를 하듯이 *정리를 해온 것이 아닐까. 그리고 지인들의 친분을 유지하는데 있어서는 잘해주려기보다 못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이 아닐까?

 반대로 나 또한 얼마나 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정리당해 왔을까라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사로잡자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 몸으로부터도 정리를 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인간관계의 정리 : 인간관계에 있어서 정리라는 표현이 너무 매정하게 들리지만, 친한 정도에 따라 그룹핑을 한다는 정도로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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