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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상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해발고도 5,643m 칼라파타르를 향한 히말라야 트레킹


이제 최종 목적지인 '칼라파타르'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의 목적지는 해발고도 4,910m에 위치한 '로부체'라는 마을이며, 바로 내일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의 꽃 '칼라파타르(5,643m)에 오를 예정이다.

아직까지는 믿기지 않는다.
벌써 이 길었던 여정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해발고도 5,000미터가 되면 공기 중의 산소 농도는 해수면에 비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물며, 그보다 높은 칼라파타르는 산소 농도가 50% 미만이기에 고산병에 더욱더 유의해야 한다.

아침으로 간단히 죽을 주문 해서 먹고, 다른 친구들 보다 조금 더 일찍 혼자 출발했다.

오늘은 누구보다도 더 천천히 걸을 예정이기에...


새벽에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시 밖을 나왔을 때부터 내리기 시작했던 눈은 아침에 출발할 때가 되니 온 세상을 하얗게 덮었다.



불과 엊그제만 해도 '남체 바자르' 부근에서는 낮에 반팔만 입고 올랐었는데, 어느새 꽁꽁 싸매지 않으면 안 될 날씨가 되었다.


어제 뒷산에 오르던 길과는 다른 루트로 올라 언덕에 오르는 데만 30분가량 걸렸다.
흩날리는 진눈깨비와 짙게 깔린 구름들로 사방이 하얗게 가려졌다.
그 사이로 조금씩 모습이 보이는 가파른 설산들.
내가 현재 히말라야를 걷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케 하는 광경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잠시 멈춰서 사진을 좀 찍고 싶었으나, 그럴 여력이 되지 않았다.
한걸음 한걸음 걷는 데만도 빨라지는 심장 박동수와 목까지 차오르는 숨.
지금 이 순간 내게 중요한 건 사진보다도 안전하게 빠른 시간 내에 목적지에 도착해서 쉬는 것이었다.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 오래 있다 보니,
고도가 낮은 곳에서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지금 한국 땅을 밟고 숨을 쉰다면, 어떤 느낌일까?

항상 당연시했던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다시금 느낀다.

생명체가 살기 힘든 이 곳에서조차 무리를 지어 다니는 조그마한 새들을 보면 참 신기하다.
왜 굳이 이곳에서 사는 걸까?
얼마든지 산소가 풍부한 저지대로 날아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히말라야 중에서도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에베레스트를 자유로히 넘나드는 생명체는 지구 상에서 '인도 기러기'가 유일하다고 한다.
이따금씩 무리를 지어 에베레스트를 넘어 비행하는 모습이 다큐로 방영되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선사한다.

느린 걸음걸이로 걷다 보니 나를 앞질러 간 사람들이 몇인지 나보다 늦게 출발했던 친구들도 어느새 저 멀리 나보다 앞서 가고 있었다.


출발한 지 약 3시간 만에 중간 마을인 '두글라'가 저 멀리 보인다.
고작 4km 밖에 안 하는 거리를 3시간이나 걸려서 오다니..



중간 마을인 ‘두글아’에 닿기 위해서는 얼어붙은 계곡을 건너야 했다. 계곡을 건너니 표지판 하나가 보였다.
오늘 목적지인 '로부체' 까지는 약 3km만 가면 된다고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3시간이란다.
그도 그럴게, 두글라 뒤편에는 바라만 봐도 고산병이 올 것 같은 높은 언덕이 있었다.

로부체에 가기 전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롯지에 들어갔다.
점심으로 네팔 전통 음식인 '달밧'을 주문했다.


양도 많았고, 맛도 나쁘지 않았으며 부족하다 싶으면 리필해서 얼마든지 더 받아서 먹을 수 있다.

오후 1시쯤 돼서야 '로부체'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눈이 많이 왔고,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설맹이 올 것처럼 눈이 부셨다.


언덕을 올라가는 데만 1시간은 족히 걸렸다.
올라가면서 몇 번을 쉬며 올라갔는지...

언덕 위에는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다 목숨을 잃은 셰르파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져 있었다.

지금은 상업등반이 되어 비싼 입산료와 가이드, 포터 비용 등 부대비용을 지불하면 누구든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돈만 대면 아무나 오를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누가 당신을 직접 끌고 올라가는 게 아닌 당신의 두 다리로 올라가야 하고, 중간에 고산병이 오거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내려올 수도 있다.


돈이 썩어 날 정도로 많거나 누군가 나를 후원해주지 않는다면, 내 돈을 내고 오르고 싶지는 않다.


오래 쉬고 싶어도 추위 때문에 짧게 많이 쉴 수밖에 없다.



쿰부 빙하를 건너야 하는데 그다지 꽁꽁 언 것 같지가 않았다.


설마, 깨지거나 빠지지는 않겠지..?




조심스레 쿰부 빙하를 건넌 뒤, 무사히 해발고도 4,910m 로부체에 닿을 수 있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도착한 순간, 행복감이 밀려왔다.
고산병 증세 없이 무사히 이곳까지 올라왔다.
이제 이 길었던 여정도 내일이면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본래 10박 11일을 일정으로 두었던 터라,
8일에 걸쳐 올랐다가 3일에 걸쳐 내려올 여정이었다.

그러나 첫날부터 예기치 못한 비행기 취소로 일정이 9박 10일이 되어 꽤나 타이트한 일정이 되었다.
오르는 일정은 그대로이나, 8일에 걸쳐 올랐던 길을 이틀 내로 하산을 할 계획으로 변경되었다.

내일 최종 목적지인 칼라파타르에 올랐다가 로부체로 다시 돌아와 페리체까지 내려갈 계획을 세웠다.

그러려면, 새벽 2시에 출발해야 했는데 내 계획을 들은 호주 친구 한 명이 극구 말렸다.

해가 뜨기 전 해발고도 5,000m는 상상 이상으로 추울 것이고, 불빛 하나 없이 어두운 길을 가이드 없이 가면 틀림없이 길을 잃을 거라고...

새벽 6시에 다 같이 올라가는 게 훨씬 안전할 거라고

결국엔 내 계획을 철회하고 다 같이 새벽 6시에 출발하는 일정으로 가기로 했다.


로부체의 롯지의 식당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중앙에 놓인 따뜻한 난로가 추위를 녹여주고 있었다.


이곳까지 닿은 저 모든 사람들은 도전을 좋아하는 자들이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한계를 이겨내어 얻는 성취감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들.

그렇기에 더 큰 성취감을 얻기 위해 끝없이 도전하다 이곳까지 발길이 닿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도 가득한 곳이다.

히말라야라는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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