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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파타르 정상에서 바라본 에베레스트

해발고도 5,643m 칼라파타르를 향한 히말라야 트레킹


뼈까지 시릴 정도의 새벽 추위에 잠에서 깼다.
이곳은 알람이 따로 필요 없는 곳이다.
극한의 추위와 턱없이 부족한 산소에 새벽에 매 시간마다 눈이 저절로 떠진다.

오전 5시.
에베레스트에 가기 전 마지막 마을, 고락셉(5,160m)으로 향하기 위해 일어났다.
드디어 오늘 이 길었던 여정의 하이라이트인 칼라파타르(5,643m)에 오르는 날이다.

드디어 오늘이 왔구나!!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고산증세도 없고, 단지 추위에 얼어붙은 몸 빼고는 모든 게 완벽했다.
식당으로 가서 미리 주문해놓았던 죽을 먹었다.

호주 친구들 중 두 명은 몸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나중에 출발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해가 뜨기 전, 해발고도 4,910m의 마을은 아직 모든 게 얼어붙어있었고, 그 사이로 일찍이 출발하는 트레커들로 눈 사이로 흔적이 남아있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방한 의류를 잔뜩 껴입었으나 히말라야의 새벽 추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런 추위는 군대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추위였다.
손과 발은 꽁꽁 얼어붙었고, 입김마저 얼어붙는 느낌.
이 길을 걷는 모든 이의 코 끝엔 추위에 콧물이 맺혀있었고, 그 누구도 그걸 알아차리진 못했다.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는 건, 모두가 알기에 부끄러움도 없었다.



고락셉을 가는 길에 만난 일출.
하늘은 진작에 밝아왔으나, 이곳에 햇빛이 들어오기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렸다.
주변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기에 늦게 해가 뜨고 일찍 해가 진다.
해가 뜨기 전과 후의 체감온도는 극명하게 대비될 정도로 차이가 났고 높은 설산의 봉우리부터 밝게 비추어오는 햇빛은 빠르게 골짜기 깊숙한 곳까지 밝혀왔다.



로부체에서 고락셉으로 가는 길에는 쿰부 빙하를 건너야 했고 누군가가 지나간 발자국을 따라서 가면 되었기에 길을 찾는 건 그리 힘들진 않았다.

해발고도는 5천 미터를 넘어선지는 오래였다.
해발고도 5천 미터가 넘어서면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땅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 잡초들 조차 보이지가 않았다.

이곳이야말로 내가 어렸을 적 티비에서나 보던 히말라야였다.
아니, 그보다 더 삭막하고 황량해서 사막이 아님에도 사막과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목적지를 향해 걷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골짜기 사이로 매섭게 불어오는 찬바람과 수많은 돌무더기와 바위들, 깊고 움푹히 밟힐 정도로 쌓인 눈들 뿐이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참 많은 생각이 들곤 하는데,
이곳은 예외였다.

한 걸음마다 걸음걸이에 집중하고 호흡에 집중하며, 살기 위해서 천천히 걸어 올랐다.

이 거대하고 위대함마저 느껴지는 히말라야 위에서는,
거만함과 자만심, 허영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 조차도 절로 겸손을 배우게 될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자신의 한계를 넘기 위해,
감히 신들의 땅이라 불리는 곳에 다가서려는,
도전하려는 사람들만이 있는,

이곳이 진짜 히말라야였다.



카메라는 진작에 안 꺼낸 지 오래였고,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사진을 찍지도 못했을 것이다.


수많은 바윗덩이들과 그 사이에 쌓은 눈을 밟으며 오르내리기를 수차례.
로부체에서 출발한 지 약 3시간 만에 해발고도 5,160m에 위치한 고락셉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락셉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술에 취한 듯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외국인 여성 한 명과 그녀를 부축해주고 있는 외국인 남성 한 명.

거의 걷질 못하고, 눈은 반쯤 풀려있고 말도 못 하는 상태로 보였다.

고산병이었다.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 힘들었다.

어쩌다 저 지경이 될 때까지 계속 올라온 건지, 올라올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다.

상태가 굉장히 심각해 보였고, 계속 여기에 머무르다간 정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걸어내려 가기에는 너무 높이 올라왔고, 걸어 내려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아마, 저 여자에게는 지금 상황이 기억 조차 안 날 것이다.

호주 친구 중 한 명이 올라오면서 고산병 증상이 있다고 호소했다.
그가 이 광경을 보고 완전히 겁에 질렸다.
다행히 그는 두통 증세만 있었고, 휴식을 취하고 다시 내려가면 나아질 증상이었다.

셰르파 중 한 명이 헬기를 불렀다.
헬기가 아무리 비싸더라도 목숨 값보다는 못하다.
다만 저 여자는 상태가 호전되어 눈을 떴을 때, 말도 안 되는 헬기 값과 병원비에 화들짝 놀라겠지만 말이다.

아찔하다.
내가 저 상태가 되었을 수도 있고, 누구나 저런 증세를 겪을 수 있다.
만약, 내가 딩보체에서 하루 쉬지 않고 계속 무리해서 올라왔다면, 내가 겪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정말 감사히도 아무런 고산증세 없이 최종 목적지인 '칼라파타르' 앞까지 왔다.
같이 올라왔던 친구들은 모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간다고 하고, 칼라파타르에 오르는 이는 나 혼자였다.

고락셉 마을에서는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칼라파타르에 오르는 길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에 오르는 길이다.

칼라파타르는 고도 약 500m를 더 올라가야 하며, 2시간 이상이 걸리는 길이고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는 비교적 평지에 걸리는 시간도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누군가에겐 끝이 될 장소.
누군가에겐 시작점이 되는 장소.
그곳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이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산 허가증, 즉 퍼밋이 필요한데 이 가격만도 천만 원이 넘기에 우리 같은 트레커는 그 앞까지만 가고 돌아와야 한다.
또한 그곳에서는 에베레스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내 목적지가 아니었다.

칼라파타르(5,643m).

나의 최종 목적지.
정면으로 푸모리(7,161m), 오른편엔 에베레스트와 롯체의 우뚝 솟은 히말라야 14좌의 위엄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

홀로 칼라파타르에 오르기 위해 롯지에서 나왔다.



눈앞에 보이는 다소 작아 보이는(?) 언덕이 바로 칼라파타르이다.



친절하게 칼라파타르로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도 있다.
눈 앞에서 본 칼라파타르로 가는 언덕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음.. 한 시간이면 올라갈 수 있을 거 같은데??


라고 했던 생각은 오르기 시작한 지 5분도 채 안돼서 철회했다.


혹시 모를 고산병에 대비해 타이레놀 한 알을 삼켰다.
타이레놀은 혈중 산소농도를 높여주어 고산병 증세를 예방하는데 좋다.
다만, 부상 시 피가 나면 피가 잘 멎지 않는 부작용이 있다.


마을에서 정면으로 보였던 언덕 꼭대기는 칼라파타르가 아니었다.
그 뒤에 더 높은 봉우리가 하나 더 있었고, 그곳이 칼라파타르였다.

나보다 늦게 오르기 시작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나를 추월해 올라갔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오르리라..

오르면서 몇 번이고 혼자서 되뇌었다.
빨리 올라가는 게 아닌 무사히 정상까지 무사히 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발아래만 보며 걷다가 문득 주변을 둘러보면 말도 안 되는 장관이 펼쳐졌다.
선글라스를 썼음에도 너무도 밝게 빛나는 설산들.
에베레스트의 봉우리와 로체의 봉우리가 보이며 내가 칼라파타르 정상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리 멀지 않아 보이는 칼라파타르 정상.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이미 본 풍경만도 정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만하고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이미 정상에 서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다시 한 발자국씩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씩 오르다 보니,

고락셉에서 출발한 지 정확히 3시간 만에!
해발고도 5,643m 칼라파타르 정상에 닿을 수 있었다.



바로 등 뒤에 우뚝 솟아있는 에베레스트와 롯체 봉우리.
이곳에 닿기까지 걸린 8일이라는 시간과 고산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내가 들인 노력들과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스스로 했던 걱정과 불안들.

그 모든 게 씻겨져 내려가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해냈다! 정말 해냈다!!


믿기지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봉우리가 바로 눈 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높고 가파른 설산들이 주는 광대한 파노라마가.

지금 나는 현실에 있는 것인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거세게 불어오는 찬 바람에 오래 있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오늘 출발했던 로부체 마을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빨리 내려가야 했다.

내려가는 길은 생각 이상으로 더 가파르고 위험했다.
내가 이리도 가파른 길을 올라왔던가..
3시간에 걸쳐 올라왔던 길을 45분 만에 내려왔다.
몇 번이고 발목을 접질릴뻔했다.

올라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끝이 안 보이는 내리막길이었다. 무사히 칼라파타르에 내려와 고락셉 마을에 도착했다.

고산병 증세를 가지고 있던 호주 친구는 나와 함께 로부체로 내려가기 위해 롯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따뜻한 차를 마시며 쉬어서 아까 이곳에 도착했을 때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 한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다녀온 네덜란드에서 온 친구도 롯지에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가기 위해 떠났고, 마지막 인사라도 하기 위해 잠시 기다렸다.

아침에 봤던 고산병 증세가 온 외국인 여성은 이미 헬기에 실려 카트만두로 이송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도착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돌아온 친구들.



모두 가이드나 포터 없이 길 중간중간에 만나 함께 올랐던 친구들.
혼자 올랐다면 더욱 고되고 외로웠을 길을 함께 였기에 덜 힘들었고 외롭지 않았다.

기적 같은 우연이 겹쳐 만나게 되는 게 인연인 것 같다.
이 지구의 정 반대의 나라에서 살던 사람이 같은 시간대에 전혀 다른 나라에서 만나게 되어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함께 동행을 하게 된다는 게..
기약이 없다면 아마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인연들.
그렇게 그냥 흘러 보내기에는 너무도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

언젠가는 다시 닿기를 바라며...



호주 친구와 네덜란드 친구 세 명이서 로부체로 가기 위해 하산을 시작했다.


해가 산 너머로 지기는 했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무사히 로부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목표로 했던 목적지까지는 이미 도달했고, 남은 건 하산뿐이었다.

다만, 8일을 걸려 올라왔던 이 길을 2일 이내로 내려가야 한다.

3일 뒤에 카트만두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예약해놓은 상태였고, 바로 그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비행기표도 예약되어있는 상태였다.

2일 내로 내려가더라도 날씨가 안 따라주면 카트만두에 못 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마저도 놓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날씨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그 부분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하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목적은 달성했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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