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이야기
4시 버스정류장.
깜깜하다. 마음먹은 대로 하면 눈뜨자마자 나가는 거다. 발이 안 떨어진다. 무섭고 추운 시간.
해가 어슴프레 뜨려는 순간이 되어서야 따스한 안도의 숨이 쉬어진다.
그땐 운동이나 플로깅 지금은 출근.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이름은 출근이라 짓지만 더 큰 이유는 낭독독서를 위해서다. 너무 늦으면 제시간인 5시에 도착하지 못한다. 도착 후 이프랜드 접속. 그동안 식초 떨군 물 한잔을 떠놓고 허브화분에게 인사하고 그들의 갈증을 풀어준다.
5시 알람이 울린다. 자리에 앉을 시간.
가게문은 단단히 닫아두고 최대한 소음을 막아본다.
그래도 트럭이나 작업차량들이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나는 날카로운 소리를 막아내지는 못한다. 멤버분들께 늘 미안한 굉음이다.
언제나처럼 톨스토이의 인생 독본을 시작으로 뒤이어 두 번째분이 그날의 책을 돌아가며 한 꼭지 혹은 한 장씩 낭독.
하루도 빠짐없는 낭독독서 일 년 된 모임이다. 리더분의 열정 없인 쉽지 않은 일 년. 멤버분들의 한결같은 마음과 배려 아님 어려웠을 일년.
얼마 전까진 걸어오거나 첫차가 다니는 5:30분 지나 버스에 올랐다. 그게 첫차라는 건 착각이었다.
당연히 버스 없는 시간이려니 하고
눈뜨면 옷 입고 대로변으로 뛰어가 택시를 잡으려고 했다. 그렇게 택시는 두어 번 탔었나.
처음 5시 맞춰 출근할 땐 큰길로 나서 횡단보도 앞에서 지나는 택시가 없나 살핀다. 길에 뿌리는 돈이 아까워 탈수 있으면 타고 아님 말고 심정으로.
없다. 콜로 부르면 천 원에서 몇천 원을 더 내야 한다.
그러다 발견.
어슴프레 정류장에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겁쟁이.
타자. 그냥. 아무거나 집어타.
가게까지 조금 걸어가지 뭐.
웬걸!
한 사람이 아니라 열명은 될듯한 아줌마(내가 50대가 되었으니 이제 아줌마라 부르는 그분들은 60대쯤이 아니, 그이상인 분들도 계신 듯) 분들이 배낭을 메고 기다리고 있다.
‘절에 다니는 분들 단체탑승 버스?’
그런데 버스안내전광판에 불이 켜져 있는 게 아닌가.
N버스들만 간간히 다니는 줄 알았더니 270번 273번 271번….. 그 첫차가 네시 조금 넘으면 늙은 우릴 태우고 달린다.
앉을자리는커녕 서있는 분들이 열명은 족히 넘을듯하다.
“형님! 일루 와!”
버스정류장 앞 횡단보도를 건너며 하시는 인사하는 소리가 생각난다. 저분들 언제부터 형님이었을까?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같은 버스를 타게 되면서 형님이 되고 동생이 된 걸까?
이 버스엔 각종 음식냄새도 난다.
식사를 못하신 그분들 배낭 속에서 나는 냄새인듯하다.
“오늘 수박을 넣어서 더 빵빵하다니까”
“아구 형님 여기 앉어! 비싼 수박 얻어 먹을라믄 경로우대 혀야 혀~” 매일의 고단함을 실없는 우스갯소리로 이겨내시나. 지혜로우신 분들. 속으로 킥킥 거린다.
아무도 나다니지 않을 거라 생각한 이 머릿속 돌단지를 어머니들이 깨 주었다. 그분들이 먼저 내리신다. 서대문 몇 분. 광화문 몇 분. 종로 1가 우르르. 곁들여 나도. 우르르. 한분 두 분. 거대하고 높은 빌딩이 한 한분 삼켜버린다. 그런데 행복한 듯 깔깔대며 들어가신다. “형님은 난간만 닦어. 내가 엎질께.” 이렇게.
왜 그럴까? 새벽출근에 저렇게 기쁘고 신날까? 저분들. ‘헬’어쩌구라고 여기저기서 떠들어도 어쨌든 상향곡선을 타고 있던 이나라. 이렇게라도 먹고살게 된 것은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몸을 끌고 일어나 열심히 억척스럽게 살아온 저분들. 그 팔다리를 휘저으며 새벽출근 하는 뒷모습을 보고 자라온 자식들.
그 이유 아닐까.
생계 위해 한몫 단단히 해내는 저 발. (신호등 꺼질세라 머리는 앞으로 그리고 아래로, 발은 그 머리를 못 따라가니 뛰기는 뛰어가는데 앞으로 고꾸라질 듯 위태롭고 괴이하다. 나도 휘적휘적) 그 발이, 휘젓는 손이. 지친 자식을 세워주며 버티게 하는 늙은 엄마의 힘이 아닌가 한다.
입에 풀칠이 시급함, 삶의 무료함, 병자를 간호하는 절실함 힘든 자식에 기대지 않으려는 어쩌면 그 자식에게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은 사랑이 이유일 수 있겠지만.
강한 척하며 버티는 분들이 조금은 표 내며 살면 좋겠다. 강한 척 센 척 억척을 부리는 모습 안쓰럽다.
출근하는 새벽시간 시답잖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에서 춤을 춘다.
흉흉한 밤길이 사람이 무섭다는 세상.
그런게 다 무어냐며 자식 낳아키우던 깡다구로 깜깜한 새벽공기를 휘젓고, 사람냄새 음식냄새 물씬 풍기는 버스 속 풍경이 좋아진다.
가슴은 뜨끈해지고,
귀는 그분들의 농으로 구수하다.
버스 손잡이를 꽉 잡은 거칠고 굵은 손 마디를 보면서 눈이 뜨거워진다.
몇 달 전부터 쓰던 글 서랍에 닫아두었다가 마지막버스를 타면서 정리.
오늘.
그곳으로 향하는 마지막 새벽버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