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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밍버드 May 05. 2021

직업이 뭐예요?

굶어죽기 딱좋은 프리랜서입니다

열심히 살아야 돼, 다들 그러니까


중학교 때만 하더라도 정말 막연히 27살 즈음에는 내가 어렵지 않게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잡고 그림을 그리면서 드라마에 나오는 전문직 여성처럼 혼자서 오피스텔을 잘 꾸며놓고 살 줄 알았다. 아니 그냥 그런 줄 알았던 정도가 아니라 정말 자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어렸지만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었고, 또래보다 현실적으로 생각할 줄 알았고 독립적이니까 하는 나에 대한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던 시기였으니까.


그러다가 고등학교 무렵 집안의 상황이 안 좋아지고, 삼 남매에서 첫째 딸로 감당해야 하는 기대와 스트레스 거기다가 몸이 안 좋아져 수술을 하는 바람에 다른 친구들이 화실 가고 레슨 가는 시기에 나는 뼈가 안 붙어서 1년 가까이 학교 수업만 겨우 듣고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1년이 뭐라고, 몸이 더 중요하지 하는 말이 0.1초 만에 나오지만 그때의 나는 입시 경쟁에서 1년 동안 제외된다는 생각에 갇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에 마구 화풀이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조바심이 들었고, 어느 정도 회복하자마자 앞만 보는 경주마처럼 공부하고 그림만 그렸다. 열 시까지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새벽 한 시까지 과외 혹은 인강을 듣고, 새벽 네시까지 공부하고 2시간 자고 학교를 갔다. 그런 생활을 1년 동안 지속하면서도 나는 한 번도 이런 가학적인 노력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아이들이 그 정도의 노력은 하니까, 그 속에서 건강을 챙기고 속 편히 산다는 것이 오히려 별종처럼 보이는 분위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얻은 결과에 대비 쓸데없이 에너지를 과도하게 낭비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시절에 얻은 교훈도 많고 추억도 많지만, 에너지를 조금 아껴서 나를 위해 썼다면 내가 다른 선택들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나의 첫 학년 필름 < 착하게 살지 않기로 했다> 중


노력도 가끔은 배신하더라


어찌어찌해서 대학도 들어가게 되고, 혼자서 돈을 벌어서 써보는 게 나름의 로망이었던 나는 두 곳의 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영어 과외까지 하면서, 고등학생 때와 별반 다를 것 없이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 그야말로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수남(이정현 분)처럼 살았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일을 하지 않는 날은 없었다. 일요일은 내가 유일하게 과제를 하고 학교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산 결과 나는 그래도 운이 좋게 졸업 후 바로 광고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첫 사회생활인만큼 나는 잘하고 싶었다. 죽어도 요즘 애들 같다는 둥 여자라서 그렇다는 둥의 소리가 듣기 싫어서 더 열심히 했다.


 그러나 나의 열심은 그들 눈에는 아무런 존재감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때부터였다. 열심히 산다고 인생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지만, 여태 부어놓은 적금처럼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 아까워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몸부림치기 시작한 시기가 시작되었다. 아직도  그때 일하다가 어이없고 화나는 상황이 문득문득 떠오르면서 치가 떨릴 정도다.  


한 번은 중요한 피티 프로젝트 때문에 일주일 내내 야근을 했는데, 그때 나는 이제 갓 1년 차도 안된 신입이지만, 어쩌다 보니 나보다 나이가 많은 후임이 2명이나 있어 팀 막내처럼 힘들다 소리도 못하고 위에서 치이고 아래에서 치이는 상황이었다. 나의 기억으로는 위에서는 말도 안 되는 기획을 통과시키면서 백업으로 들어갔던 내가 디자인도 하고 애니메이션도 하는 기이한 일의 분담을 하게 되었고, 일주일 통틀어서, 하루가 아니라 정말 일주일을 통틀어서 5시간밖에 못 자면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한 번은 내가 손목이 너무 아파서 선배한테 "손목이 아파서 더는 못 그리겠어요"라고 힘든 티를 내게 되었고, 순간 선배는 나를 보며 싸늘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후 그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회식 자리에서 나는 그 선배에게서 내가 배가 불렀다는 둥, 절실하지 않아서 핑계를 댔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죄송하지 않은데 죄송하다고 해야 했다.


이런 일들이 업계의 관행처럼 굳어져서 비일비재하다 보니, 처음 입사할 때 남다른 포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는 설렘은 정말 순식간에 사라지고, 점심시간마다 근처 병원에서 비타민 주사, 마늘 주사 온갖 주사들을 맞으며 겨우 버텨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 20대 중반도 되지 않은 내가 항상 병원을 달고 살고, 주변 사람들하고 약속을 매번 파투내고, 가족들과 있다가도 선배의 전화 한 통에 당장 택시를 타고 회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 많아지다 보니, 인간관계도 자연히 좁아지고, 그러다 보니 점점 이 생활에서 벗어날 길 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내가 그때의 나의 모습을 보았다면, 노력을 한다고 보상을 받는 건 당연한 게 아니라고, 그러니 누가 너를 보상해주기 전에 너 자신을 좀 더 알뜰히 돌보면서 살라고 할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나는 제 버릇 개 못주고 여기저기 일을 많이 벌리면서 살지만 적어도 그때처럼 남들 기준의 열심히 아닌 내가 하고 싶은 만큼이라는 자기 만족도를 우선순위로 놓고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살면서 하는 모든 노력은 나를 위해서라는 간단한 이치를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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