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대한 나의 마지막 글임에도 나의 불안은 적정 유지 중이다. 어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이 불안과 그 증세는 가끔씩 나의 행동을 멈칫거리게 할 뿐, 크게 삶을 뒤흔들고 있지는 않다. 거칠게 멱살잡이 하듯 내 삶을 끌고 온 불안. 이제 그 불안이 적응된 것일까. 아니면 마치 도파민 중독에 걸린 현대인처럼 나는 불안에 중독된 것일까.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가 주는 떨림조차 무감각해진 지금 나의 모습은 괜찮을 것일까.
분명한 사실은 1초 뒤면 과거가 되어 버리는 이기적이고 공평한 시간 앞에서 인생이나 시간 등을 낭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껏 써온 글들에서 불안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주장하였지만, 지금에 와서 나의 생각을 뒤엎는 꼴이 되었다. 뒤엎게 되면 뒤엎어야지.
불안에 떨며 보낸 나의 삶이 낭비라고 말한다면 조금은 억울하다. 다만, 내가 나 스스로 낭비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은 더 자신 있게, 더 당당하게 살았어도 되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솟구쳐 오르는 불안이라는 감정에 올라타 나를 숨기기 급급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이다.
현재의 시간을 살기에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 모두 부담스럽다. 과거는 일종의 트라우마로, 미래는 미지에 대한 불안함으로 똑딱 거리며 지나가는 이 현재의 나에게 압박을 가한다. 그렇게 현재를 뒤흔드는 무서운 놈들은 반성을 하기에도, 후회를 하기에도, 한 발자국 나아가기에도 힘들게 한다. 훌륭한 자기 계발서나 교양서적들은 자신이 제일 중요하고 과감히 시도하라고 한 목소리를 내지만, 삶은 그렇게 단순하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불안을 끝내려 한다는 말은 내 불안이 사라지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안타깝게도 모든 상황에서 불안은 존재할 것이고, 나를 심하게 괴롭힐 것이다. 그렇다면 불안과 함께 살아가야 하며, 나의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의 모습은 불안이 이끌어 온 것이 맞다. 하지만 이제 그 불안이라는 에너지를 원동력에서 빼려고 한다. 나의 모습은 이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모습을 나의 삶에서 표현하고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불안이 그것을 막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불안은 오늘부로 종료이다. 도파민처럼 불안에 중독되어 살아온 나의 삶은 여기서 끝이다. 나에게 불안은 이제 가면이고 위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