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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뉴 Nov 06. 2024

인도네시아에서의 밤

상처 위에 덮이는 아름다움

  얼마 전, 추석을 맞이하여 오랜만에 해외로 휴가를 가게 되었다. 이 여행도 상당히 극적이었다. 대학 동기인 형이 사정으로 인해 인도네시아에 있는 가족들에게로 돌아가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떠나보내기 너무 아쉬운 마음에 인도네시아에 간다고 했더니 그 형이 오라고 했다. 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 자리에서 바로 티켓팅을 해버렸다. 해외라고는 미국, 일본 밖에 안 가본 촌놈이 어떻게 한국 사람들도 거의 없는 ‘메단’이라는 도시를 선택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나중에 인도네시아 여행기를 쓸 기회가 생기면 좋을 정도로 에피소드도 많고, 배운 것도 많은 참 좋은 여행이었다. 그 좋은 여정 가운데에서 도착한 날의 밤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여행의 시작도 극적이었지만, 나의 마음도 상당히 극적이었다. 오랜 기간, 어디를 떠나지 못했다. 굳이 떠나야 좋은 삶이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만, 나는 그것을 ‘낭만’이라고 답하겠다. 번뜩이는 생각이 들거나 잘 안 풀릴 때면, 나만의 바다도 자주 찾았었다. 그와 더불어 제주도도 상당히 많이 찾았었다. 그렇게 훌쩍 떠나던 용기와 내 모습을 잃은 지 꽤 되었다. 그 좋아하던 카메라에도 손을 뗀 후였다. 앞뒤가 꽉 막혀버린 마음은 힘껏 흔든 콜라병 같은 상태가 되었다. 콜라병은 가만히 두면 좀 가라앉기라도 하지,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결국 터져버리던가, 다른 모습으로 변환된다.      


  표현도 안 되고 가늠도 잘 안 될 테지만, 무척이나 괴로운 하루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럴 때에 인도네시아로 향하게 되었다. 쿠알라나무 공항에 도착해서 맞이한 메단의 냄새는 썩 좋지 않았다. 당시 한국의 날씨가 비정상적으로 더워서 오히려 메단의 날씨는 더 시원했다. 상대적일 뿐 더운 건 똑같다. 쿠알라룸푸르에서 환승할 때부터 이미 혼이 나가서 이 메단이라는 놈이 참 고생시킨다 했다. 덕분에 일단 첫인상은 불합격이다. 마중 나온 형을 만나 토바 호수로 내려갔다. 장장 네 시간을 가야 하는 피곤한 여정이었다.   


  


 


  운전해 주시는 아방과 동기 형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어렵게 토바호수에 도착했다. 배를 타고 넘어가야 하는 우리의 도착지는 나에겐 신비의 섬처럼 느껴졌다. 출항 전 배 앞으로 뛰어든 아이들은 돈을 달라며 소리를 질렀다. 여기저기서 돈을 던져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잠시나마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 행복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거대한 호수를 건너면서 둘러본 높은 산은 괜히 날 반기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 순간 왠지 이번 여행이 나의 인생에서 인상 깊은 사건으로 남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바탁족들이 살던 동네여서 호텔 건물도 바탁 양식으로 지어졌다. 커튼을 열면 토바호수가 펼쳐지는 아름다운 호텔에서 멋진 밤을 맞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해가 빨리 떨어졌다. 빈땅을 마시며 호수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대화가 오고 가는 중에도 나는 다른 마음이었다. 나를 훑어보아야 했다.      




  그동안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난 상처들을 보았다. 어디서부터 막힌 것인지 찾아 들어갔다. 이곳저곳 내시경 하듯 살펴본 나의 마음 상태는 이미 위험단계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로기, 번-아웃 등으로 표현되는 일종의 우울감은 왜곡된 시선을 갖게 한다.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발현되는 그 증상의 끝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운이 좋게도 나는 그 끝에서 발걸음을 돌려 이 아름다운 호수를 보고 있을 수 있었다. 바다처럼 파도가 밀려오는 호수 끝 이 멋진 방에서 나는 프리다 칼로의 그림이 떠올랐다. 그녀의 마지막 작품, 수박 정물화에 새겨진 문구가 떠올랐다. “viva la vida". 역설로 가득한 그녀의 인생 끝자락에 외친 ‘인생이여, 영원하라’는 나의 마음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그녀의 그림이 오버랩되면서 느꼈던 감정은 순간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래, 이것도 인생이고, 아름다운 것이지.’     



  열흘의 여정 중 첫날, 나를 본 경험은 가장 아름다운 밤이 되었다. 그리고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했다. 아름다움은 이곳저곳에 난 생채기들 위로 덮였다.     

 

  커튼 밖 창문 틈에 비치는 달과 그 위에 반짝이는 호수, 주위를 밝히고 있는 적당한 조명, 작은 오두막에서 저마다 시간을 즐기고 있는 또 다른 관광객들, 그리고 다시 나에게로 시선이 멈춰졌다. 그때 이 여행의 이유를 정확히 깨달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상당히 극적으로 오게 된 이 여행, 조금만 더 있었으면 곧 폭발했을 것 같은 나를 샅샅이 살피기에 아주 적합한 여행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돌아와 이 글을 쓰는 내게 다시 묻는다면, 그런 여행이 되었다. 이 행복한 기억은 오래갈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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