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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연 May 02. 2024

이곳저곳 걷기: 대구와 경주 그리고 서울

나를 위해 사는 게 어려운 이들에게





나무의 가지는 곧 나무의 혈관 하나하나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에 입학한 우리에게 선생님은 '나무와 대화하기' 과제를 내주셨고, 스무 살의 나는 나무 옆에 앉아 나무가 말 걸어주기를 기다렸다(과제를 원망하면서). 의아한 마음처럼 나무는 먼저 말 걸지 않았고, 기다림에 지친 내가 먼저 제 몸을 만지고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부는 바람에 몸을 이리저리 움직일 뿐, 내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는 학기가 끝나고도 계속되었다. 나는 틈만 나면 나무를 향해 말 걸었고, 언젠가는 대답해 주겠지 하며 오기를 부렸다. 그러다 지쳐 벤치에 털썩 앉았는데, 문득 나무와 대화하기는 곧 나와 대화하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는 우리 주변에 있지만, 나무와 대화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숲으로 가야 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부지런히 움직이는 개미와 벌레들, 빽빽한 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에 조용히 반사되는 거미줄과 톡톡 소리 내며 집을 짓는 새들. 언젠가 나는 사람이 많이 지나지 않는 곳에 앉아 그것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말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파란 하늘과 푸른 잎


말을 시작한다는 건 과거를 돌아본다는 일이고, 미처 자라지 못한 어린 내 마음 한 부분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이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피부를 스치는 바람을 느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가 내는 소리를 들으며. 언젠가의 나를 떠올렸다. 지난 시간 속의 나는 밝은 아이였다. 낯을 가려도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였고,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책에 귀를 쫑긋하던 꼬마였다. 몇 번의 만남과 헤어짐이 상처를 남길 때에도 또 다른 만남을 기대했다. 상처받기 싫다는 이유로 먼저 누군가를 떠나면서도, 언젠가 만날 나의 짝꿍을 기다렸다. 가까워지고 싶은 이와 멀어지는 날들이 반복되며 어린 나는 무기력을 학습했다. 말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과 가족이라는 이유로 내 존재를 억압하려는 아빠에게 질려버렸다. 그럴 때마다 또 다른 세상을 꿈꿨다. 아무것도 펼쳐지지 않아 자유만이 가득할 그곳을. 아무것도 없이 그저 암흑뿐인 그 세계를.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어느새 나무는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내 이야기가 재미있니?"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것도 내 몸 밖으로 내보내고 싶지 않았다. 마음 깊이 묻어둔 그것을 물에 풀어 아주 진흙탕을 만들어버리고 싶었다. 


지난 시간에는 상처와 더불어 죄책감도 묻어 있었다. 그것들은 매일 밤 나를 흔들 어깨 우는 감각이 되어 잠 못 들게 했다. 잘못이 나를 꽉 붙잡고 함께 진창 속으로 걸어가자고 했다. 온몸에 오물을 바르고 놓아버리자고. 그것들을 잊어버리자고. 그럴 때면 눈을 뜬다. 잠에 들었다가도 눈을 번쩍 뜨고는 감지 않는다. 시계를 바라보고 천장을 바라보고 텅 빈 침대를 바라본다. 나는 끌려가지 않았다, 안도하며. 아무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되새김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대구의 붉은 노을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바람 또한 여전히 나무를 간지럽힌다. 배롱나무를 간지럽히면 온몸을 부르르 떤다던데, 그 나무는 간지럼을 탄다던데. 차분해진 마음으로 나무를 바라본다. 울창한 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 눈이 시려도 가늘게 눈 뜨며 흔들리는 나무의 혈관을 바라본다. 그 안으로 타고 흐를 나무의 피를 생각한다.


풀내음. 제초기에 잘려나가는 풀이 내는 냄새. 한때 나는 그 냄새를 좋아했는데, 풀의 입장에서 그 냄새는 자신의 피 냄새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내가 가진 잔혹성, 그 안에 든 이기적인 마음. 그런 걸 생각할 때면 내가 싫어진다.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없어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나보다 덜 가진 이에게 마음을 나누지 않아 내게 없는 마음까지도 나눠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나를 꿈꾸고, 그러지 않음에 실망한다.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음에도 선뜻 나서지 않는 나에게 나는 고개를 젓는다.


경주 대릉원의 풍경


선생님은 이팝나무를 좋아하셨을까. 올봄 유독 이팝나무를 많이 보며 그것이 예쁘다고 느꼈는데, 선생님도 그러셨으려나. 이제는 연락 조차 하지 않는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그의 얼굴을 떠올린다. 곧 퇴직을 앞둔 나이임에도 마음 가득 청년이셨던 선생님을. 예술과 문학이 가진 힘을 믿고 한평생 살아온 선생님을.


선생님이 가진 부분을 훔쳐다 내 것으로 만들며 나를 돌아본다, 나를 생각하고, 나를 위해 본다. 나무는 여전히 말이 없고, 나는 몇 년째 나무와 대화하지 못하지만, 말 걸기를 멈추지 않는다.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그들을 빤히 바라보며 언젠가는 너도 날 궁금해하겠지, 괜한 오기를 부린다. 


나무가 나를 바라볼 때까지, 나를 바라보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오직 나만을 위한 순간이라는 것도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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