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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oreal May 21. 2022

일곱 살 배기도 고민이 있다니까요.

귀엽다 여기고 지나치기엔 함께 나눌 거리가 많은...

  얼마 전 한 학급의 수업장학에 들어가서 유아들이 가진 ‘고민’을 듣게 되었다. 사실 유치원에서는 ‘고민’이란 말보다는 ‘문제’라는 표현이 일반적인데, 유아들이 고민을 말하고 서로 상담해주는 ‘고민상담소’ 놀이를 한다니까 낯설게 느껴졌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고민(苦悶)’이란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움’이다. 단어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이 지났음에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나 상황을 두고 ‘고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반면에 ‘문제(問題)’는 ‘해답을 요구하는 물음, 해결하기 어렵거나 난처한 대상이나 일’을 뜻한다. 함께 나눌 가치가 있는 주제를 선택하고 친구들과 함께 공유하여 해결하는데 초점을 둔다면 ‘고민’보다는 ‘문제’라는 용어가 더 적합했을 것 같다.


  담임교사는 유아들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친구들에게 다양한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데 수업의 의미를 두고 있었다. 담임교사는 미리 유아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적어내도록 했고, 나에게도 종이를 내주기에 나도 고민을 적어 갔다. '아침마다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서 우는 동생들이 있어서 고민이에요. 어떻게 하면 기분 좋게 유치원에 들어올 수 있을까요?' 그 고민이 내가 가진 고민 중에서 '가장 지독하게 어려운' 고민은 아니지만 유아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수업이 시작되자 TV 화면에 차례차례 유아의 고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곱 살 유아들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을까. 최신 핫 아이템인 포켓몬 빵을 사서 띠부띠부씰을 가지고 싶은데 포켓몬빵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엄마와 다른 방에서 자는 것이 무섭다는 이야기, 오빠가 놀려서 화가 난다는 이야기, 장수풍뎅이와 같이 자고 싶은데 엄마가 날개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같이 잘 수 없다고 사육통을 다른 방에 두었다는 이야기 등이 있었다.


  그렇게 일곱 살 유아들의 수업을 참관하다가 한 아이가 나를 지목하여 상담을 요청하였고, 나는 갑작스레 상담자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상담자라기보다는 '무릎팍 도사'에 가까웠다. 첫 번째로 장수풍뎅이 암컷이 아파서 계속 보지 못해서 고민이라는 유아와 상담을 했다. 장수풍뎅이가 어디가 아픈지 물었더니 엄마가 병원에 갔다고 그랬는데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아마도 아파서 하늘나라로 갔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어쩌면 유아의 엄마가 야속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여기면서도 아이에게 "다음엔 엄마랑 장수풍뎅이가 있는 병원에 꼭 가봐."라고 짓궂게 말해주었다.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그 순간을 모면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의 사고를 따라가며 함께 이야기하며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장수풍뎅이를 데리고 자고 싶다는 유아에게 말했다. 장수풍뎅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알겠지만 정말 사랑한다면 장수풍뎅이가 밤동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 주고, 대신 사랑하는 장수풍뎅이를 크게 그려 풍선 같은 곳에 붙여 쿠션처럼 만들어서 데리고 자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수풍뎅이를 사랑하는 일곱 살 아이의 간절한 마음을 이런 방법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우선 시도해보겠다고 했다. 사실 그 순간도 나는 장수풍뎅이를 사랑한다면 그 쿠션은 그냥 그림만 붙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프로젝트 과정을 통해 좀 더 정교해지고 아이가 알고 있는 장수풍뎅이에 대한 기억이 온전히 담겼으면 좋겠다고 머릿속으로 상상의 톱니바퀴를 돌리고 있었다.

  유아들의 고민 중에는 누군가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으로 충분한 것도 있고, 다른 유아들의 유사한 경험이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것도 있다. 충족되기 어려운 욕구,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분리에 대한 불안함, 일상적인 관계 중에 상처받는 일에 대한 내용들도 포함되어있어서 충분히 유아들 수준에서 가질 수 있는 고민이었다.

장수풍뎅이와 같이 자고 싶은 밤. 그러기엔 우린 너무 달라. ^^;;

  다음날 담임교사에게 유아들의 고민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물어보았다. 포켓몬 빵의 띠부띠부씰을 가지고 싶다는 유아에게 맘 좋은(?) 친구는 포켓몬빵을 사서 띠부띠부씰을 많이 모아서 준다고 했고, 혼자 자는 것이 무서운 아이는 인형을 안고 자기로 했고, 내가 상담한 유아들은 모두 내가 제시한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고 한다. 유아들의 고민을 귀엽다고 생각하고 끝낼 수도 있지만 실제적인 변화를 통해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일말의 책임감을 느꼈다. 그래서 별 건 아니지만 다음날, 터지기 쉬운 풍선 대신 파쇄된 종이조각이 담긴 뭉치를 전해주었다. 장수풍뎅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생명력을 가질 수 있길 기대하면서.


그런데 유아들은 내가 가져간 고민에 대해 뭐라고 조언을 해주었을까?


나 : 아침마다 우는 동생들이 어떻게 하면 기분 좋게 유치원에 들어올 수 있을까?

유아: 그럼 선물을 주고 들어가게 해요.

나 : 그럼 울지 않고 씩씩하게 들어가는 친구들에게는 선물을 안 주고, 우는 친구들에게 선물을 주면 어떻게 하지? 이상한 것 같은데.

유아: 그럼... 다 줘요.


나:... 원감 선생님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아닌데? 그 많은 선물을 매일매일 주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유아 :!!!!!


작별의 시간을 지나온 일곱 살 배기의 팁

  그렇게 나의 고민은 미궁에 빠졌다. ^.^ 사실 5월이 되어 우는 유아들이 현저히 줄었다. 그만큼 유치원에 적응이 잘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겠지만 가끔 엄마에게 매달려 서글프게 우는 유아를 보면 안타깝고 복잡한 마음이 든다. 나는 이미 작별의 시간을 지나온,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곱 살 배기에게서 팁을 얻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마도 이건 나의 다음 숙제로 남겨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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