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내돈내짠', 즉 내돈 내고 내가 짠 타이중 학교 여행기이다. 1월 16일부터 23일까지 7박8일 동안 대만 타이중에 머물렀다. 타이중은 대만의 지방도시로 우리나라로 치면 대전쯤 되는 곳이다. 후회없이 보내겠다는 욕심으로 타이트하게 일정을 짜서 하루 2만보를 걸었다. 길을 지나치다가도 나의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학교'였다. 아무래도 여행자의 시선이니 주로 외관과 분위기를 읽는 정도이겠지만, 동시대 다른 나라의 학교 모습을 공유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본다.
첫번째 학교는 타이중 서구 제5시장 근처에 있는 충효국민초등학교 부설 유치원이다. 가슴에 별과 사랑, 안전표시를 달고, 새싹을 연상하게 하는 아이의 이미지가 친근하게 느껴진다. 자유롭게 놀이하는 아이의 이미지로 건물 외벽을 꾸민 것을 보니 아이들은 본래 놀이를 해야 한다는데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것인가 싶다. 이러한 아이의 자유분방함은 교실 현장 속에서도 살아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교사일 적 자유로움을 사랑하면서도 통제의 유혹 사이에 갈등했던 때가 오버랩됐다.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이 초등학교 부설 유치원은 바깥 공간에 낮은 언덕과 미끄럼틀 형태의 놀이터가 있고, 그물망이 있는 구름다리, 시소가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유치원 심볼일 텐데, 이것을 디자인하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거쳤을지 상상해본다. 내가 아는 유치원 원장선생님은 마크 결정을 위해 디자이너와 17번의 수정과정을 거쳤다. 그 지루한 과정을 거쳐 나온 심볼은 정말 막강했다. ^^;; 나는 솔직히 수정횟수를 원장선생님이 세고 있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그 완벽함이란 ㅡ.ㅡ;,)
타이중 충효국민초등학교 및 초등학교 부설유치원의 모습(위) 부설유치원 외벽 및 놀이터(아래) 다음은 타이중의 우펑구에 있는 타이중 시민 밍타이고등학교이다. 임헌당박물관단지가 유명해서 찾아갔는데, 의외로 박물관은 학교내에 있었다. 남편과 주로 무봉임가래원(연못)을 구경하고 박물관단지는 들어가지 않았다. 실상은 연못보다 학교길이 좋았다. 운동장 트랙을 따라 서있는 나무가 마치 거대한 파라솔처럼 연결되어 아이들을 보호해줄 것만 같았다. 영화 한편은 찍을 만한 풍경이다.
이 길을 걸으며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비가 오는 날은 이 곳에서 어떤 소리를 듣게 될까? 마음이 울적한 날 이 길을 걸으면 우울함이 좀 가라앉을까? 한참 나무를 쳐다보아도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정도 규모의 아름다운 등교길은 누군가의 큰 계획 덕분이다. 이 길에 녹아있을 아이들의 추억이, 사연이 문득 궁금해졌다. 영화 한편 찍어도 좋을 풍경이다.
많은 학교 건물을 보면 건물에 설계자의 뜻을 남기기가 쉽지 않다. 남겼다 하더라도 전달되지 않으니 살아가는 구성원이 알아차려야 한다. 사실상, 대부분은 알아차릴 필요도 못 느낀다. 업무와 학업과 같이 결과를 내며 하루를 살아내다보면 내가 많은 시간 보내는 공간의 의미를 돌아보는 건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오래 입을 옷을 고를 때에 한참을 고민하듯이, 학교건물을 설계할 때도 그래야 한다. 후대를 거쳐 사용할 학교라면 당시 교육트랜드나 관리자의 취향에 따라 고정된 시설을 배치하는데 좀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타이중 시립 밍타이 고등학교 교내 트랙(왼쪽) 등교길(오른쪽) 타이중 시립 밍타이 고등학교 등교길(왼쪽) 학교 건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나무(오른쪽) 무봉임가래원: 오리떼가 노는 작은 연못(왼쪽) 무봉임가화원 임헌당박물관단지(오른쪽) 우리나라에서도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궁전같은 유치원이나 큰 규모의 도시 학교를 타이중 시내에서도 볼 수 있다. 특이하게 플래카드나 홍보를 위한 액정을 교문앞에 설치해놓은 경우가 많았다. 타이중도 학교가 실적을 거두고 어느 한 분야에 특화된 곳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중요한 듯했다. 아무래도 노인 인구가 많고 출산율이 낮은 나라라서 학생 유치가 중요한 건가 짐작해본다. 대동국초등학교는 건물의 웅장함과 높이가 끝도 없다. 고개가 꺾일 때까지 쳐다보다보면 옆에 또 거대한 건물이 연이어있다. 도심에 있는 학교는 아무래도 규모가 클 수밖에 없다. 일자리때문에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다보니 학생도 자연히 많을 수밖에 없고, 학교 높이도, 울타리도 점점 높아진다. 더군다나 바로 옆에 육교가 있고 외부로 노출될 염려가 있다보니 담벼락 근처에도 CCTV가 보인다. 아이들 놀이하는 소리를 듣고 자석에 끌린 듯 고개가 빠지게 쳐다보다가 담벼락에 가로막혀 애석해하며 육교를 건넜다. 학교 전체 정경은 더욱 거대하다.
동화속 궁전을 연상시키는 타이중 시립 카파유치원(왼쪽), 음악콩쿨 리코더 수상 플래카드가 붙은 타이중 시립 상국민중학교(오른쪽) 중심지 광산 SOGO 백화점과 자연사 박물관 근처에 있는 타이중 충밍 중고등학교. 진입로가 대학교 같은 느낌. 타이중 문화산업창의단지 근처 대동국초등학교유치원. 육교에서 찍은 모습.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나라를 가든 학교 외관만으로도 이 학교가 부촌에 있는 것인지, 산촌에 있는 것인지 느낄 수 있다. 하루는 날을 잡아 아리산 국가삼림유원지를 갔는데, 그 곳은 약간 뻥을 섞어 2000년이 넘는 나무도 있고(실제로는 800년 넘는 신목들이 있다고 말함) 산의 높이가 우리나라 한라산(1,950m)보다 높은 2,274m이다. 대만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많다는 이 이 곳을 가려면 하루 한 나절을 잡아야 하고, 교통편이 타이중에서는 꽤 까다로워 여행사에 일일 투어를 신청했다. 비틀비틀 좁은 산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한참을 하고 도착하여 한참을 올라가면 발길이 닿는 곳마다 악악~소리가 나게 높고 신묘한 나무가 가득한 곳이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 학교가 있다. 아리산 향림 국민소학.
아리산 신목을 따라 걸으면 나오는 아리산 향림 국민소학. 타이중에서 가장 높은 학교 놀라운 것은 지금도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근방에 사는 아이들이겠지만, 얼마전에 놀다 들어간 것처럼 탈것 기구가 한쪽 벽에 기대어있다. 예전에는 많은 아이들이 다녔을 것 같은 이 큰 규모의 학교가 지금은 페인트질이 벗겨지고 노쇠한 장병처럼 아리산 꼭대기에 서 있다. '뭔가 고장났다고 하면 누가 여기까지 와서 고쳐주지?' 생각이 들었다. 이 곳의 아이들은 불편함에 예민하지 않고, 천천히 배워나가는 것을 알 것 같다. 또한편 배움에 대한 사람의 열망은 이렇게 큰 것인가, 그래서 이 깊은 산 속에도 학교가 필요했나 싶었다. 이름 그대로 향림(香林)국민소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세상 어딘가 향기처럼 퍼져나갔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니 대만 아리산 트레킹 코스를 걷다가 도착하는 그 어느 여행자라도 이 낡아가는 아리산 향림소학의 외관을 본다면 이 학교에서 자라날 아이들을 위해 축원이라도 해주면 좋겠다.
이 외에도 많은 학교들을 보았지만, 주요하게 기억나는 학교는 저 정도였다. 같은 시간 다른 장소 우리의 후대가 자라고 있다. 같은 연령의 아이들이 도심지에서도 배우고, 아리산에서도 배우고 있다. 타이중에서 돌아와서 개원하고 17년이 되어 이젠 파파할머니가 되어가는, 내가 근무하는 단설유치원을 돌아보았다. 홍삼을 뽑아먹은 것도 아닌데(실제로는 1일 2만보를 걸어다녀 발이 터져나갈 것 같았음), 눈과 마음으로 담은 기운이 사그러지기 전에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시종일관 유치원 공간을 바꾸고 청소하고, 정리했다. 어차피 하드웨어를 바꿀 수 없다면 재구조화라고 해야 할 것 아닌가 싶었다. 내가 근무하는 유치원이 아이들에게 어떤 공간이 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