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3년 전에 쓴 글이다. 서랍 안에만 꽁꽁 넣어뒀다가 꺼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교사의 삶에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지만), 관리자의 삶은 더더욱 관심 밖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관리자는 모든 상황을 이겨내고 감내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한마디로 음지에 있는 셈이다. 나는 수줍게, 그러나 조심스럽게 조금씩 원감의 세계를 꺼내보려고 한다. 시간이 지나고보니 스스로의 검열을 거쳐 이야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관리자의 세계에 대한 이해의 눈길을 바라며 이 글을 꺼내본다.
처음 원감으로 발령받은 꿈나무였을 때, 나는 '좋은' 원감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떨리고 희망에 부풀었던 마음은 8월에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8월까지 기존 학교에서 담임교사로 재직 중이었기에 9월 중간발령을 받은 나는 방학 없이 원감 겸임 발령자로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9월 초 유치원 개원을 위한 행정처리와 물품 준비, 인력 채용 등의 과정들이 8월에 숨 가쁘게 돌아갔다. 나는 교사도 아니고 원감도 아닌 어정쩡한 모양새로 어떤 일이든 먹어치울 준비가 되어있는 몬스터처럼 일을 해야 했다.
퇴근 후에도 언제 어디서나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모바일 핫스팟을 켜놓고 노트북과 연결해서 자료를 확인하고 정리했다. 고3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는 차량 안에서도 블루투스는 계속 돌아가고 업무전화를 하고, 생전 알지도 못하는 급식 비품 구입 계획을 검토했다. 신규교사 발령이 나더라도 그들은 업무포털 권한이 없기 때문에 원장 선생님과 밤 12시 가까이 카톡을 주고받고, 업무포털 원격 서비스(EVPN)를 통해 기안 상신과 결재가 계속 이루어졌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려보면 숨이 턱턱 막히고 울컥한다. 원장 선생님이 대부분 도와주셨지만 왜 그 시기에 나는 그토록 답답하고 억울하고, 괴로웠는지... 그때, 왜 외로웠는지, 힘들었는지 실은 안다. '승진'을 한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그다음에는 뭐가 있는지 잘 몰랐기 때문에 그에 따른 책임이나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에 대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마음이 터질 것 같던 어느 날, 시간을 짜내어 참으로 오랜만에 타로점을 보았다. 타로점을 봐주는 분이 말했다. 지금만 참으라고, 그러면 곧 좋아질 거라고. 너무 뻔한 말이었는데, 그때 정말 아이처럼 안도가 되었다. 타로카드의 그림만 봐도 딱딱 예측 가능한 긍정적인 희망들이 보이지 않았더라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약이란 말과 뭐가 다를까 싶었지만, 어쨌든 그 후로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비록 긴장을 하면서도 눈을 반짝거리며 뜨거운 여름의 대기를 가르듯이 신규교사들이 웃어댄다. 아직 시멘트 상태로 완성되지 않은 유치원 건물을 보면서도 즐겁게 웃을 수 있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낯섬과 동시에 걱정이 되었다. 유치원 규모가 큰 만큼 모든 교사들이 정규 교사로 배치되지 못하고, 결원에 대해서 절차에 따라 채용을 해야 한다. 다른 유치원도 상황은 다르지 않아서, 비슷한 시기에 채용을 하다 보니 이마저도 경쟁이다.
실제로 지원자들이 많아야 서류 절차, 면접전형을 통해 좋은 기간제 교사를 선별할 수 있는데, 지원자가 적으면 아쉬운 대로 채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유아특수교사를 채용하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 따기'다. 어쩌다가 유아특수교사 자격증을 갖춘 사람이 지원했다 하더라도 면접 당일날 나타나지 않거나 합격통보를 받은 뒤에도 거주지와 근거리에 있는 유치원을 선택하여 합격을 포기하겠다고 연락하기도 한다.
영양교사는 또 어떠한가. 영양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영양교사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으로 자격조건이 까다로워졌고, 자격을 갖춘 기간제 교사를 구하지 못해 엄청 애를 먹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시간강사로 영양사를 채용하여 한 학기 운영을 하고 난 뒤, 다음해 정식 영양교사가 유치원에 발령받았을 때 나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난 느낌이었다. 직원들이 내게 축하인사를 할 정도였다.
축구로 보면 플레이 역할이 있을 텐데, 나는 무작정 우리팀이 승리하길(?) 바라며 이쪽 저쪽 뛰는 선수 같았다.
교사와 원감 사이, '음'과 '양'(3년전 그림)
업무분장표에 나와있는 원감의 역할은 다양하다. 유치원 교육과정 운영 관리, 교원인사 및 복무관리, 민원업무, 유아관리, 발령대장 관리, 계약제 교원 임용, 청렴교육, 인사위원회, 다면평가 등이 주요 업무 내용이다. 원감은 원장을 보좌하고, 유치원 교육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라고 뭉뚱그려 생각해왔다.축구로 보면 플레이 역할이 있을 텐데, 나는 무작정 우리팀이 승리하길(?) 바라며 이쪽 저쪽 뛰는 선수 같았다.그동안 선배 원장 선생님, 원감 선생님들은 어떻게 보이지 않게 그 역할들을 해냈던 것인지 놀랄 때가 있다.
원감자격을 받고 발령이 나기까지 오랫동안 연수를 받았지만 현장의 여건에 따라 원감의 어려움은 다르고 해결방식도 다르다. 초반에는 연수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낭만적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현장에서 실현하지 못할 때, 패배감이 쌓였다. 그러나 2년이 지나고 보니 알겠다. 학급의 수도 다르고, 함께 하는 동료교사의 경험치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다. 교사일 때, 다양한 수업사례가 있듯이 원감으로서 하루하루 쌓아가면서 상황에 맞게 문제를 개선하고 해결하는 사례가 있을 뿐이다.
만일 선배들로부터 그런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다면, 최선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장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기여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이제는 내가 겪은 이 경험들이 후배 원감 선생님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가끔은 일을 멈추고 생각해본다. 이런 고민과 성찰이 모여 우리 교육 현장을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기를 조심스레 희망해본다. 어려움 속에서도 관리자의 긍지와 보람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