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일 Jul 03. 2021

아침 운동을 하면서 얻은 것들

운동을 해야 하는 몇 가지 이유

운동하고 나오면 펼쳐지는 아침

아침 운동, 이유가 필요해 


아침에 운동을 한다고 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대부분 감탄에 가깝다. '어떻게 그렇게 해?', 신기한 말투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미라클 모닝'이 유행이기에 내 루틴은 기행(奇行)이 되지 않았다. 미라클 모닝이라는 유행이 설파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딱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남들 다 한다고 오전에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사실.


몇 년 간 유지하던 저녁 운동을 오전으로 옮긴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운동 시간이 불규칙해서.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피치 못하게 야근을 해야 할 때가 더러 있는데, 대체로 하루를 시작함과 동시에 야근의 기운을 감지한다. 운동을 못하게 되는 날이 길어질수록 예민해지고 불안해지는 운동 중독자에게는 치명적인 생활인 셈이다. 일주일에 두 번, 많으면 세 번 정도를 운동하지만 한 번 할 때마다 무리하게 운동을 하거나 만족감을 얻을 때까지 몸을 혹사시켜야 했다.


아침을 여는 방법은 간단하다. 평소 일어나던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는 것. 아침은 거르고, 샤워는 헬스장에서 한다. 출근에 필요한 일련의 준비과정이 줄어 1시간 이상의 여유가 생긴다. 몸을 쓰기 전, 부랴부랴 스트레칭을 하고 45분 정도 근력 운동을 한다. 유산소 운동을 하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생활 속에서 하루 1만 보 가량을 걷기에 아쉬움을 달랜다. 일주일에 세 번 하는 것도 감개무량했던 한 달 전과 비교해 몸만 괜찮다면 일주일에 다섯 번까지 운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출근해서 일을 해야 하기에 무리한 강도로는 하지 않기 때문에 몸의 피로도는 전보다 덜한 것 같다. 덧붙여 야근을 할 때면 운동을 해야 한다는 마음의 짐이 나를 불안하고 괴롭게 만들었는데, 아침에 운동을 하고 오니 비교적 야근하는 마음도 가볍다.


아침 운동을 하게 된 두 번째 이유는 '저녁의 삶'을 위해서다. 작년까지 주짓수와 근력운동을 병행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평일에 낼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전혀 없다는 데에 있었다. 물론 운동을 하는 것이 '자기 되기'의 일환이긴 하지만, 내 정신을 육체에 고정시켜놓는 일 외에 실현 가능한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사이드 프로젝트에서의 다음 행보라든가, 독립을 한다면 하고 싶은 것들이라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러다 보니 그런 활동들은 주말에 콤팩트 하게 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계속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다고 느껴졌다. 무엇보다 운동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운동만을 위해 살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에게 아쉽기도 한 참이었다.


아침운동을 시작한 6월에는 평일 중 이틀을 회사 지원금으로 강의를 듣기도 했고, 약속도 그럭저럭 잦았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해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운동 없는 저녁이 마음의 짐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곧 아침 운동이 성공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1시간 일찍 일어나는 만큼 잠에 드는 시간도 빨라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만족스럽다.






운동을 권하는 몇가지 이유


나는 대표적인 '운동 전도사'다. '보기 좋은' 몸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꾸준하고 성실하게 운동하려 노력한다. 중학교 때까지는 운동이 너무 싫었지만, 고등학교에 들어서 무작정 달려 살을 빼는 데 성공한 이후로 운동에 재미가 들렸다. 그 이후 20대에 들어 주짓수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내 삶의 선택지와 스펙트럼이 더 넓어졌다(지금은 부상과 눈 때문에 하지 못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근육을 키우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좋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운동이 가지는 의미와 그것이 바꿀 수 있는 삶의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먼저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데에서 운동의 이유를 말하고 싶다. 마음은 수없이 많은 가루가 용해되어 있는 액체 같은 것이라서, 조금이라도 온도가 떨어지거나 멈추면 녹아있던 것들이 아래로 침전된다. 나는 그것을 우울이라고 부른다. 운동은 그런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어주고, 저어줌으로써 침전된 것들이 다시 부유하며 마음에 녹아들게 한다. 삶에서 가장 우울했던 날들에도 나는 운동을 했으며, 적어도 운동할 때와 그 후에 찾아오던 잠깐의 평화는 무겁고 어두운 마음을 변방으로 몰아내버리곤 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마음이 때론 몸을 움직이기도 한다. 운동을 하기 싫지만, 졸리지만, 그럼에도 나를 운동 장소로 데려가는 것은 운동하기로 마음먹은 내 마음이니까.


운동은 내 한계를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다. 사람은 한계에 부딪혔을 때 가장 솔직하니까. 그리고 그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극복하며 자신의 한계를 넓혀간다. 나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 자꾸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만하면 됐다'든가, '지금 힘을 아껴놔야 한다'든가, '오늘은 무리하지 말자'는 식의 어두운 생각들이 자꾸 떠오른다. 임계점에 가까워질수록 그 생각은 강해진다. 그렇게 한계를 넓혀가면 어떤 것이 좋으냐고? 삶의 선택지가 늘어난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체력이 좋은 사람의 장점으로 남들보다 오래 깨어있을 수 있다는 점을 꼽는데, 운동하는 시간을 빼면 남들과 다를 것 없다는 비아냥에도 나는 체력이 좋은 사람은 질 좋은 각성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곤 한다.


마지막으로 운동은 우리를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무거운 바벨을 들면서 딴생각을 하진 않는다. 잠시 긴장을 놓는 순간 온몸이 삐그덕 대며 부상이 따른다. 그저 내 앞에 놓인 것을 들거나, 이기기 위해 여기에 정신을 모은다. 운동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오는 게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망중한(忙中閑)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