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지'에 대하여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현대인에겐 너무나 익숙하다. 영국에서 탄생한 경험주의의 초석을 다진 인물 프랜시스 베이컨의 격언이다. 관찰과 실험이 바탕인 경험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영국은 세계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는 것의 힘은 물론 강력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그 말인즉 앎과 모름의 경계를 바로 알아야만 무엇을 알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눈치가 빠른 이라면 이 대목에서 철학자 한 명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듯하다. 바로 철학자들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다. 그가 주장한 ‘무지의 지’는 다른 무엇보다도 강력한 지식과 탐구의 원천이었다. 무지의 지는 메타인지, 자기 객관화 등 다양한 단어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기나긴 암흑의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가 시작됨에 따라 인간은 신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신에게 의지하며 세상 모든 진리를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해왔던 유럽인들은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시도했다.
그들은 위대한 성인의 말처럼 자신들이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이제 아무것도 모르는 이 세상은 무한한 호기심과 탐구의 영역이 되었다. 탐험하고 관찰하고 실험하기 시작하자 자연이 수학의 언어로 쓰여 있으며 모든 만물은 탐구의 대상임을 깨닫게 되었다.
여기에 중요한 교훈이 있다. 대부분의 우리는 자신의 무지를 회피한다. 그러나 회피해선 안 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불편하고 어렵다. 고통과 마주해야 하며 큰 용기를 가져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당당해진다면, ‘무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춘다면 나와 타인과 세상을 한층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앎과 모름의 경계를 깨닫는 건 한 인간으로써 매우 기본적이면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진리다. 그걸 깨달을 때 인간은 진보한다. 그렇기에 오늘도 나를 돌아보려 애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무엇이든 알면 알수록 오히려 세상은 더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말 우리가 아는 단 하나의 사실은 ‘내가 모른다는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