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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팔 Jun 25. 2024

사랑아, 영화해!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사적이고 자전적인' 리뷰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포스터

영화 없이 살 수 있어요?


 찬실은 영화 PD다. 아니 PD였다. 항상 같이 작업하던 영화감독이 과음으로 죽은 후(영화 하는 분들 술은 적당히 마십시다!) 찬실의 인생에서 영화도 같이 죽어버린다. 찬실에겐 영화가 삶 그 자체였기에, 영화가 없어지자 찬실은 삶을 잃은 듯 괴로워한다. 내 인생 이제... 뭘로 채워야 하지?

영화 장례식 


  영화는 내 삶에서도 한 번 아주 제대로 죽었었다. 영화를 위해 사로라! 를 외치며 거지가 되어도 당연히 영화하며 살 것이라던 젊은 패기는 진즉에 죽었다. 내 안에서 영화가 죽었을 때의 기억은 거의 없다. 아마 너무 괴로워서 잊었다. 그 후로 나는 찬실이가 돈을 벌기 위해 소피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듯 텅 빈 삶을 끌고 가기 위해 이것저것 들쑤시고 다녔다. 아직까지 그러고 있다. 영화가 없는 삶은 없다고 외치던 내게 영화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건 나를 부정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외면했다. 사실 원래부터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다고. 영화관 가서 영화 보면 하루가 다 가서 별로야. 영화관도 안 가고, 재밌는 영화가 없다고 하며 영화를 보지도 않았다. 누구나 보는 상업 영화 정도는 주변 사람들과의 원활한 대화를 위해 일 년에 한두 번쯤 챙겨본 것 같다. 이렇게 영화를 부정했던 나처럼 찬실은 자신의 영화와 관련된 모든 책과 DVD들을 내다 버리려고 한다. 집주인 할머니(윤여정)는 "그래. 버려야 다시 채우지."라 말씀하셨지만, 찬실은 결국 영화를 버리지 못한다.


 갑자기 나타난 난닝구 바람의 장국영(!)이 옆에서 계속 영화를 버리지 말라고 외치는 말에 흔들렸기 때문일까? 귀신으로 나타난 장국영은 찬실이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배우이다. 그는 찬실이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상한다. 귀신 국영은 찬실에게 자신에 대해서 계속 계속 생각해 보라고 조언한다. 

 장국영에 의해 자신이 처음 영화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영화를 다시 떠올린 뒤, 찬실은 자신의 삶과 스스로에 대해 더 제대로 알고 싶어 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바로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었다!(참된 영화인답다.)

그래, 인생을 알고 싶은 자, 영화를 하라!!... 는 아니고. 각자 마음속에 눌러둔 사랑하는 일을 하라! 계속계속 고민하고, 마음속의 장국영을 불러와라!


내 장국영은 누구세요?


 영화과에 입학한 지 딱 십 년이 되는 올해, 2024년. 난 다시 영화를 사랑한다.

집주인 할머니가 '버려야 다시 채우지.'라고 말했어도 찬실은 영화를 버리지 못했지만, 난 졸업 후 영화를 제대로 갖다 버렸었다. 텅 비우고 나니 다시 채워졌다. 밤을 새워 좋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고민을 하거나, 시나리오를 쓰거나, 영화 스텝으로 일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이제 더 이상 영화가 내 삶의 전부가 아닐지라도 난 영화를 사랑한다. 예전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찬실은 '동경 이야기'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심심하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영에게 실망한다. '놀란'영화나 좋아하는 당신에겐 돼지목에 진주목걸이라는 날카로운 말까지 하며! 영화과에 재학하던 시절 나도 그랬다. (놀란 영화는 그때도 좋아했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예술 영화를 진정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아무도 이해 못 하는 것에서 나만의 뜻을 찾고 분석하며 '나는 예술가다!'를 외쳤던 시절... 지금은 사실 그런 영화를 좋아하진 않는다. 보긴 보지만, 가끔 존다. 영화과에 입학한 지 10년이 된 30살의 내가 생각하는 영화는 인생이다. 내 인생의 전부가 영화인 것이 아니라, 영화 속에 인생이 있다. 다양한 인생들, 폭넓은 감정들, 사랑스러운 인물들... 이 모든 것을 사랑한다. 이야기가 담겨있기에 사랑스럽고, 위로가 되어주고,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가족 같은 나의 영화야! 사랑해!

 근데 내가 이렇게 다시 영화야 사랑해 외치게 해 준 나의 장국영은.... 누구였을까?


찬실이는 뭔 복이 많을까


  영화는 찬실과 같이 영화를 하던 사람들이 그녀의 집에 놀러 오면서 끝이 난다. 같이 일하던 영화감독이 죽어서 직업도 잃고, 집도 없고, 돈도 없는 찬실이 도대체 무슨 복이 많다는 걸까! 궁금했었는데, 엔딩 장면을 보고 확실히 느꼈다. '저희랑 계속 영화 찍으실 거죠?'라고 묻는 사람들. 좋은 사람들이 그녀의 곁에 항상 있다는 것이 찬실의 복이다. 영화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이고, 사람들과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영화는 사람이었고, 그런 좋은 사람들이 항상 찬실의 곁에 있었다. 다시 말해 찬실의 곁에는 항상 영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찬실이는 참 복도 많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 40이 넘도록 사랑하는 영화하며 살 수 있는 찬실의 삶은 복덩어리로 가득 차있다. 




부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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